사순 제 1주일 - 다해
알림: 성인 교리 반(R.C.I.A.)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부활전야 미사에서 세례성사를 받을 사람들은 오늘 "예비자 선발 예식" 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부활절까지 그들은 뽑힌 사람들이라고 불리게 된다.
알림: 아래의 해설 중에서 밑 줄 친 성경부분은 직접 찾아서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서문 사순 시기는 원래 초기 교회 때에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초대시기부터 구원의 역사에 관한 기술은 세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하느님과의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 계약은 하느님이 사람과 맺은 계약을 넘어선다. 구약성서의 계약(구약)은 하느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성교회는 부활의 전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의 과정을 되새기고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가르치기 위하여 구약 성경을 통하여 주신 계약들을 기억한다.
사순 시기는 옛 부터 교육하는 시기였고, 인류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신 행위들을 회상하는 시기였고, 하느님과 그의 자녀를 사이에 맺어진 계약, 그리고 우리의 맏형인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하여 깊이 묵상해야 하는 시기였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보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사순 시기 동안의 서간경들은 연중의 다른 시기와는 달리, 한 해 동안 “계약 이야기를 전하는”데 다른 독서들과 같은 맥락 안에 일치하고 있다.
제1 독서 신명기 26,4-10
오늘의 구약 성경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의 믿음을 회상하게 한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셨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이야기에서, 우리의 역사에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이루어진 유다인의 역사와 신약성경과 더불어 이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역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역사를 되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과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우리를 돌보아 주셨고 또 지금 어떻게 우리를 돌보고 계시는지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께 행하신 구원의 이야기를 회상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이 믿음이 사도신경에서 “나는 믿나이다”라고 표현된다. 이러한 믿음의 표현으로부터 인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돌보아 오신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저는 당신의 세계에서 역사를 만드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의롭고 사랑이신 하느님이시고 모든 창조물들을 당신과 함께 온전하고 하나가 되도록 부르고 계심을 믿고 살아가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던 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하느님(나의 아버지)이시고 저는 당신 백성에 속한 사람 (당신의 자녀)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랍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왔다.
아람은 노아의 첫째 아들인 쉠의 아들이었다. “아람”이라는 단어는 높다, 높은 지대라는 뜻이고 그 고장의 말대로 팔레스타인 동북부로부터 유프라테스까지 펼쳐진 고원지대를 말한다. 그곳은 대개는 시리아와 희랍과 로마제국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해당한다. 야곱(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초대 역사 안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여기에서 그를 이름 대신에 “방황하는 아람인”이라 부름은 일찍이 있었던 이스라엘의 비참한 처지와 약속 땅에서의 정착을 대조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야곱의 자손들을 아람이라 부를 수 있다. 그의 부인들(리아와 라헬)이 아람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여기에서 “그”가 아니라 “우리”로 바꾸어 말함에 주의하라. 여기서 인칭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히브리인들은 공통의 역사적 유산과 전통을 지니고 있다. 내 아버지가 이스라엘이었으니 나도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행동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문용어로 과월절이다. 출애급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전에 희생제물을 바쳐야 했고 제물의 피가 뿌려져야 했고, 고기는 구어서 먹어야 했고,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했다. 과월절 축제(누룩 없이 만든 빵)는 매년 기념하도록 되었다(탈출 12:42-51).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축제(추수의 햇곡식, 과월절 이후 50일)와 관련이 있다(탈출 13:1-13참조).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 드려야 한다.
오늘 1독서에 뒤따르는 11절에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너희 집에 주신 온갖 좋은 것을 먹으며 즐겨라. 너희뿐 아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제위인과 떠돌이도 함께 즐기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가족 축제가 열릴 것이고 여기서 모두가 하느님과의 계약 갱신을 거행하며 기쁨을 나눌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계약 갱신식에 기쁘게 참여해야 한다. 성찬전례를 그에 해당되는 역사적 이야기와 믿음, 주님의 이름으로 한 행위들로 거행해야 한다. 성찬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믿음과 계약과 행위 없이는 성찬전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것이 성찬전례를 올바른 상황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주중에 불쑥 던져진 고립된 행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공통 역사와 믿음, 영원히 “당신은 나의 주님, 우리는 당신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의 가족 식사 안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행사이다.
제 2독서 로마서 10:8-3
제 1독서에서 이스라엘의 옛 믿음을 들었듯이, 2독서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신앙고백을 듣는다.
8 의로움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신명기 30:14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입으로 고백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신앙을 입으로 고백해야 하고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초대 팔레스티나 교회의 신경(세례가 아니라면)이다(1고린 12:3; 필립 2:11 참조).
미음으로 믿으면
내적 믿음이 요구된다.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이끌 믿음이 요구된다. 또 이 믿음이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거도 잊지 말자.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성부의 행위이시다. 독서의 첫 부분에 신명기에서 인용한 “말씀이 그대들 가까이에 있다.” 라는 구절이 있다. -- 예수님이 말씀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는 희생이란 망상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이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의로움 - 하느님 안에서 만들어진 의로움이다. 모든 고소로부터의 무죄, 만들어진 순결이다(선언된 순결이 아니다).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전체의 과정이다. 믿음에서 출발하고, 지상에서의 사랑에 찬 그리스도교적 삶의 모든 것, 그리고 천국에서의 완성에 다다르는 구원의 과정이다. 개신교 측에서는 이 첫 단계 -- 노아의 구원의 방주처럼 -- 에만 들어서면 구원된다고 생각하며 구원의 전체 과정을 보지 못한다. 의로움에 이르는 믿음은, 가톨릭에서는 세 가지 신덕(믿음, 희망, 사랑) 중의 하나이기에, 믿음은 지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다. Luther에게 있어서 믿음은 그리스도를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받아 드리는 것이었다. 가톨릭인들은 개신교인들 보다 구원이란 단어를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믿음이란 단어를 좀 좁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할 때 이점을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하고 말 합니다.
이사야 28:16에서 인용.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 같은 신앙을 통하여 새로움에 이르게 될 수 있다.
같은 주님께 모든 사람의 주범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총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부활하신 주님이시다(로마 9:5; 필립 2:9-11). 구약 성경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신실하고 경건한 이스라엘인임을 의미하였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라 번역되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 2:32에서 인용
복음-루가 4:1-13
지금까지 우리는 옛 이스라엘의 믿음과 초기 팔레스타인 교회의 믿음을 들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유혹에 대하여 듣게 된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막에서 타락 시킨 세 가지 유혹과 같다. 그들은 만나를 먹고도 불평하였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으며, 또 하느님을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혹을 받을 때 마다 그들이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던가를 보여주고 계신다.
4: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 오셨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신 후 즉시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성령께서 유혹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유혹을 받는 동안 예수님을 지켜 준 힘이시다.
광야로 가시어
유다 지방의 사막일 것이다. 정확한 장소는 모른다. 루가 8:29과 11:24에 보면 사막은 마귀가 지배하는 장소이다.
2 40일 동안
40이라는 숫자는 많은 변화 즉 변천을 뜻하는 숫자이다. 40일간 홍수가 계속되었고, 40년 동안 이집트에서 약속된 땅으로 행진하였고, 40일 동안 사적인 삶에서 공생활로 건너감을 준비하셨고, 40일 동안을 거쳐 부활에서 승천에 이르셨다.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지 않아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였고 예수님도 그처럼 단식하셨다.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와 9절에서 예수님은 사탄으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셨다; 예수님의 세례(루가 3:22)와 하느님의 아들, 아담(루가 3:38)과 관련된다.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신명기 6:13의 말씀이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 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었다.
세상의 모든 왕국을 한 번에 보여 줄 만큼 높은 산은 없다. 아마도 환시였을 것이다.
악마는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요한 복음 사가는 세상은 악마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요한 12:31; 14:30; 16:11, 루가 22:53; 사도 26:18).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요.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
신명기 6:13, 10:20, 탈출기 23:24의 말씀이다.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예수님은 그의 사명인 탈출을 예루살렘에서 완성하신다. 사탄은 유다를 예루살렘에서 포섭하고(루카 23:3); 암흑의 세력이 예루살렘 안에서 판을 치고 있다(루가 22:53). 루카의 의하면, 예수님의 모든 직무가 예루살렘에 이르는 여정으로 표현된다.. 우리의 여정은 천상 예루살렘이다(묵시 21:2).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사탄은 시편 91:11을 인용하고 있다.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사탄은 시편 91:12를 인용하고 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신명기 6:16을 인용하신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 분에게서 물러갔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통하여 많은 유혹을 받으시는데 악의 세력들은 그가 누구인지(루가 4:41, 8“29)를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결국은 그들을 정복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순명의 믿음으로 유혹을 이겨 내시고 인류를 악마의 손아귀에서 풀어내실 것이다.
맺는 말:
사탄은 어떤 그리스도인보다도 성경을 잘 알고 있으며 하느님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네 꼬임 수에 이용하려고 한다. 성경은 어떤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도록 개인적 구절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가족이 형성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언제나 성령과 저자가 의도하는 문맥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때에는 앞과 뒤에 있는 다섯 구절도 읽더라도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탄이 인용한 성경 말씀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탄이 인용한 말씀이 아닌 다른 성경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음을 주시하라. 성경 말씀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개인적 인용은 매우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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