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 주일 - 다해
제 1 독서 탈출기 17,8-13
탈출기(단어 ‘exodus’는 ‘출발’의 의미)는 다섯 율법(토라)서 가운데 두 번째의 책이다. 이 책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후손들이 받은 고난에 대해 말하고, 모세의 탄생과 교육, 그의 미디안 땅으로의 도주, 그리고 시나이 산(호렙)에서 타는 나무안에서 하느님과의 대면,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와 파라오 와의 항변, 이집트의 전염병, 과월절의 설정, 홍해를 건넘, 시나이 산에서의 십계명을 받음, 금송아지 사건과 사십년간 광야 사막에서의 방황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후손들이 홍해를 건너 시나이 산에 이르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이 3개월 동안 백성들은 목마름을 불평했던 것이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명하도록(그는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쳤다) 하였고 백성들이 마실 물이 흘러 나왔다. 구약성서에는 기록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의 구전이 이 바위가 그들의 40년간 방랑생활 동안 그들을 따라 다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고린토 전서 10:4에는 ‘따라오는 바위’로 기록어 있다. 만약 바오로께서 “만약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나는 결코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더라면 이 서간의 말씀이 얼마나 다르게 기록되었을까?.
오늘 독서는 바위 사건 바로 뒤에 일어난 이야기들이고, 왜 우리가(사제들과 성령기도회원들이) 팔을 벌려 기도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8/[그 때에], 아말렉족이 몰려와
아말렉은 사람이 아니라 에사우 혈통의 유목민으로 적혀 있다(창세기 36:12). 야곱이 에사우와 싸웠던 것처럼 그들 후손들도 서로 운명적으로 싸우게 된다. 아말렉족들은 이집트와 아라비아 사이의 무역(대상) 행로를 지배하였다.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이것이 최근에 독립한 유대인들의 첫 번째 군인 활동이다.
9/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여호수아에 대한 성서의 첫 번째 언급이다. 여호수아는 훗날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후계자가 된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장정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
이는 여호수아의 신앙(행위를 동반하는)을 요구한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보고 있는 동안 싸울 것이다.
10/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랄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나중에 최고 사제가 된다.
후르.
모세와 동시대의 인물이고 후에 모세가 없을 때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람이다. 이렇게 탈출기의 초기 전승에서 나오는 탁월한 인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이상하다.
11/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12/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모세의 손이 올라 있을 때만이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다. 이는 모세가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중개자임을 확정해 주고 있다.
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주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
모세가 하느님과 유대인 사이의 중재자였지만, 그는 백성들의 협력을 요청한다. 이는 교황님, 주교님들과 사제들을 도울 우리의 책임을 보여주고 있다.
13/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의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제 2 독서 티모테오 후서 3,14-4:2
티모테오는 에페소의 주교임을 기억하라. 이 주교는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해 있었고 바오로는 교회의 사목자로써 그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자신의 가르침을 모든 교우들에게 전하도록 청하고, 티모테오가 그리스도의 전사처럼 싸우고, 오직 주인만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걱정으로, 승리만을 열망하여 노력하는 운동가처럼,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준비하는 남편처럼 노동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의 동반자가 되고 그분과 함께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가도록 바오로의 모범을 기억해야 한다.
14/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빨리 일어서라. 옳지 못한 길로 인도하는 그릇된 교사들을 대적하여라.
15/또한 어려서부터,
티모시는 바오로로부터 배웠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유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5살이 되면 의무적으로 율법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해야 한다.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말한다; 신약성경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으며 기록된 성경들도 거의 350년이 지나서도 성경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진실한 가르침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배경안에서 읽을 때 이해할 수 있다.
16/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여기에 두 가지 요점들을 만들 수 있다: (1) 저자는 영감을 받지 않은 문구(문자적으로, 하느님의 숨결이 깃들지 않은) 는 상상하지도 못한다는 것. (2) 본문은 오직 성경만이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단지 필요한 것만을 주시지 않고 너무도 많은 것을 풍요롭게 주고 계시는 분이시다. 전승도 여기서 성경과 일치하여 같은 목적을 가진 매우 유익한 것이다. 제 1독서에서 확인된 것처럼, 어떤 신약의 전승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다(마리아의 승천과 원죄 없는 잉태가 그 두 가지 예이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고 누가 반문한다면 당신은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가?" 라고 답변할 수 있다. " 사실 데살로니카 후서 2:15에서는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ㅣ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테살로니카 후서 2:15). 이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이 편지로 쓰여지지 않았고,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기록된 성경과 마찬가지로 기록되지 않은 말씀들도 역시 신앙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통들도 가치 있는 믿음으로 존중하자. 그것이 전통이냐? 더 이상 찾지 말라.” [성 요한 크리소스톰( A.D. 398-404),테살로니카 후서 4,2의 설교].
진실의 삼각대[3발의 걸상] (Dr. Alan Schreck)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 성경. 전승. 교회의 교도권
4:1/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예수님 앞에서,
바오로는 두 증인을 부르고 있다 : 하느님과 예수님이다. 신명기 17:6에는 삶과 죽음의 귀로에 처했을 때 두 증인을 요구 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십시오,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설교를 열심히 하도록 격려한다. 이는 예외적인 것 처사이다. 옛날 사람들은 보통 ‘적당한 때에’ 연설을 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시간표를 갖고 계시며 하느님의 말씀은 계절 안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복음 루가 18,1-8
이 주간에 우리는 기도에 관한 두 가지 비유중 하나를 듣는다(두 번째 것은 다음 주일에 들을 것이다). “종말이 언제 어떻게 올 것인가?”하는 질문이 가끔 예수님에게 주어져 왔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견딤으로써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늘 대답하셧다.
18:1/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독서의 마지막 절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기도의 항구성만을 말하지 않고 하느님께 충성이 기도의 동기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2/“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자를 잃은 여자는 힘이 없었다.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그 여인은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가졌기에 매우 끈질기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안에 확고히 머물러야 한다: 신앙과 기도는 함께 가는 것이다.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적대자는 아마 부유하고 세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과부는 너무나 가난하여 판관이나 그의 조력자들에게 뇌물을 줄 수 없었고 이 법무관들은 세력있는 시민들을 멀리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4/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약자와 강자의 논쟁을 통하여 두 가지 교훈을 그려볼 수 있다 : (1) 만약 미약한 과부의 끈질긴 호소가 결실을 맺게 된다면,,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항구한 기도가 얼마나 더 많은 성취를 누리게 될 것인가? (2) 만약 한 부당한 재판관이 과부의 호소에 굴복한다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들어 주시겠는가?
7/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parousia(주님의 재림)는 늦으질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히 올 것이고, 순식간에 그리고 온전히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올 것이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이 질문은 박해받은 하느님의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변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변호할 것이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재림이 지체됨에 따라 긴 시간 동안 주님께 충실하게 남아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종말이 올 때까지 당신 교회안에 남아 계실 것을 약속하셨다.(마태 28:20); 교회는 그러므로 진실된 신앙의 길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이가 믿음 안에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러는 그들 자신에게 맞추어진 믿음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을 지키야 하고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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