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 주일 - 다해

 

 

 

 

 

제1독서 느헤미야기8,2-4ㄱ.5-6.8-10

 

 

느헤미야서는 역사서로서 유다민족의 발전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책이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유다 민족이 폐허가 된 성전과 예루살렘을 떠나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 유배생활을(BC 587년)하면서도 시온과 솔로몬 궁전의 영화로웠던 지난날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BC 539(48년후)에 페르샤 왕 키로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하였다. 제1세기의 역사가인 프라비우스 요셉푸스(Flabius Jsephus)는 유다인들이 키로스왕에게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 예언서를 어떻게 보여주었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이사44:28,45:1)

 

키로스왕은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야훼 하느님께서 비밀의 환시를 통해 여러 대국의 왕으로 뽑아 세운 키로스는 나의 뜻에 따라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백성을 자기 나라에 돌려보내고 나의 성전을 재건토록 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성전이 파괴되기 140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이었다. 따라서 키로스 왕은 예언서를 읽으며 하느님의 놀라운 힘을 느끼게 되었고 예언의 말씀을 이루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바빌론에 억류되어 있는 유다의 지도자를 불러 즉시 본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도시와 하느님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일렀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유다 부근의 여러 통치자들에게 명령하여 성전 건립에 필요한 금과 은, 그리고 희생 제물로 쓰여 질 동물까지도 거두어 유다인들에게 보내도록 지시하였다.

 

이사야 예언서에 큰 감명을 받은 키로스왕은 칙령을 내려 BC 53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귀환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유다인들은 즉시 귀국하여 성전 재건에 힘을 모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사마리아인들의 반발로 재건 사업은 중단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을 성전재건 사업에 제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이 재건사업은 다리우스1세 치하 기원전 520년에 가서야 재개되었고 제루바벨, 하께와 즈가리아 예언자들의 관여로 4년 후에 성전은 완공되었으나 사마리아 인들의 계속적인 반발로 40년이 넘도록 예루살렘 성벽은 세워지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다.

 

느헤미아는 기원 전 445년에서 433년 사이 사회복구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활동한 지도자였다. 에즈라는 유배 이후 신앙의 복원과 민족사회의 개혁에 힘썼고 느헤미아는 주변 도시들의 끊임없는 반발을 억압하고 안정되고 확고한 나라를 재건하는데 공헌한 바가 크다.

 

에즈라와 느헤미아 법전은 70인 역 번역 성서에 따라 하나의 경전으로 합동 편찬되었고 제2외경으로 불리고 전에는 제1외경(오늘날 제1위경 번역)으로 번역되어 불렸다.

 

오늘의 독서는 에즈라가 백성들에게 율법서를 읽어주는 내용이다.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그 법전은 모세의 율법서(Torah)이며 성서에서 첫번 다섯 권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유다인들의 초기 역사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행에 따른 축복과 징벌에 대하여 쓰여져 있다.

 

 

그는물 문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믿나이다. 진정으로 나는 믿나이다’라 하며 그들이 들은 바를 경건한 마음으로 꼭 지키기로 하느님과 약속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이 계약을 어겼을 때 받게 될 징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울고 있었다.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공동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새롭게 하는 의식으로 나타났다. 계약은 계약의 당사자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눔으로 체결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성약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으리라.

 

 

 

 

제2독서 고린토전서 12: 12~30

 

지난주에 우리는 성령의 선물에 관하여 들었다. 이 모든 것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나와 똑같이 공동유익을 위하여 쓰도록 주어진 것이다. 오늘 날 우리는 바오로 사도께서 가르치시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여러 기관으로 구성되는 인체와 비교해 본다.

 

 

형제 여러분,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몸엔 여러 장기가 있다. 어떤 부분은 다른 장기보다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듯이 교회의 구성도 역시 같습니다. 그러나 각 부분은 예외 없이 모두가 똑같이 필요하며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하나의 신비를 통하여 하나의 과제가 이루어졌듯이 세상에 들어 온 죽음으로 인하여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유대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밀란의 성 암브로시오(AD 381) 성령 1,3,45)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성서 말씀은 이 독서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사람의 몸에 많은 지체가 필요하듯 교회를 각 개인이 받은 다양한 영적 선물이 필요하다. 몸의 여러 지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듯이 교회 공동 유익을 위하여 여러 가지 성령의 선물이 필요하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만일 교회 공동체에서 모두가 똑같은 역할만 한다면 그 공동체에는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를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역할을 잘해 나갈 때 공동체는 훌륭히 성장해 나갈 수 있다. (The Ambrosiaster (AD 366~384)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

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 신자들은 각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을 볼때 남녀의 성기는 귀나 코 보다 더 조심스럽게 가리워져 있다. 이것은 창조주의 배려로 본능적으로 정숙함을 찾아야 하는 인간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14절의 말씀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을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 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 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성령의 은사를 받은 첫 번 세 사람이 다른 이들보다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순서대로 이름이 부쳐졌다.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성직자의 교계제도를 만들었고 기본적인 세 가지의 직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 도 주교를 돌봄

    예언자성약을 검토하며 예언은 공동체에게 주는 영향에 따라 그 뜻을 밝힌다.

    교 사(설교사)- 신비스런 구원사안에서 차지하는 계시의 뜻을 실제로 사목방침과 교서로서 명백히 한다.

 

교계제도는 성스러운 통치체제이고 세속적인 정치체제와는 다르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타락하여 전제화 되지 않도록 하며 이 제도를 통하여 교회 구성원들을 위한 봉사를 통해 공동선을 이루려고 한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들을 교회의 으뜸으로 내세웠다. 베드로 사도가 유다에게 다른 사람이 그 주교직을 수행하게 하라.고 한 말을 보면 그들은 주교일 수도 있다(사도1:20).  예언직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앞날에 관하여 예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를 해석하고 뜻을 해명하는 것이다. 사도들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들도 예언자라 불리었다. 아무 덕행이 없는 가야파스 같은 악인도 세도를 과시하면서 예언을 할 수 있었다. (요한 11:49~51)

 

설교자들은 회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이 제도는 현재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Ambroister AD 366~384), 바오로 13서간 주석문)

 

 

 

 

복음 루카 1,1-4; 4,14-21

 

루카는 안티옥 출신의 시리아인으로서 의사였으며 공무를 많이 한 사람이어서 희랍어에 능통하였다. 본래는 사도가 아니었다. 개종한 이교도였으며(대략 AD 40) 바오로 사도의 제자였다. 바오로 사도의 2차 전도여행(AD 49~53)에서 트로아스에서 필립비까지 동행했다가 거기에 수년 머물고 있다가 바오로 사도의 3차 전도여행의 후반기에 그와 다시 동행하게 되었다. (53~58) 바오로 사도가 가이사르에서 투옥 당했을 때 그곳에 같이 있었으며 가이사르에서 로마에 이르는 위험한 여행에도 동행하였고 또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첫 번째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함께 있었다.

 

성 루카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의 복음서 서문의 자료에 언급할 때 최초의 목격 증인과 말씀의 대행자를 포함하였는데 이 중에서 가장 뚜렷한 증인은 성모님이었다. 특히 제1장에 쓰여 진 내용의 대부분은 그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음서에서 루카만이 서문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서문은 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으며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관하여 쓴 복음서이고 저술하기 이전에 벌써 백성들에게 선포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루카의 목적은 단순한 역사적인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류구원사업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들에 대하여 논급하고 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성 루카는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고 이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테오필리우스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이 사람에 관해서 잘 알려진 것은 없으나 루카복음사가가 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그에게 써서 보냈는데 여기에 단 한번 그의 이름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구술로서 가르친 바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공생활의 시작이다. 갈릴래아로 돌아오시기 직전에 세례를 받으셨으며(루카3:21~22) 이어서 광야로 나가 유혹을 받으셨다.(루카4:1~13)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께서 예수님위에 내리셨고 성령이 충만하시어 그 인도하심에 따라 광야로 나가셨다.(루카4:1) 따라서 악령을 만나셨어도 성령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와 계시다는 소식이 온 지방을 두루 펴져 나갔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설교사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획에 때하여 전도할 권한을 가지셨다.

 

 

가르치시며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예배와 훈육장소에서 공공연히 가르치셨다. 하느님께서 옛적에 언약하신 바를 이어받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그는 어렸을 때 자라나셨던 곳 나자렛으로 오셨다.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1세기 시절의 안식일 회당 예배는 시편을 읊고 쉐먀(Shema)의 낭송과 18조항의 축복, 율법과 예언서 중에서의 독서, 이에 대한 설교, 제관장의 축복과 민수기6:24~27을 통한 사제의 강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루카 복음 사가의 약속과 실행에 관한 신학을 접하게 된다. 그 대목은 이사야서 61"1~2이었다. 예언자는 사람들을 모든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원자가 나타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를 통하여 사람들이 받을 축복에 대한 말씀이다.

가난한 자라 함은 세속적인 면이 아니고 하느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가난하고 겸허함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재물이나 재능에 기대하지 않고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을 칭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해방을 영신적인 뜻에서 말하는 것인데 즉 죄로 말미암은 맹목과 핍박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빠짐없이 삶의 터전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너그러이 포용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헐벗고 고난 받는 창조주를 알아보는 것이다. 교회는 권능을 다하여 가난한 이들이 바라는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이다.

(Vaticna II, Lumen Gentium 8)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 수 있는 은총의 해를 선포한다.   레위기 25:10. 구세주께서 이루어주실 구원과 해방의 시대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구원의 약속이 실현된다고 하는 것이 루카 복음서의 주제이다. 기다림은 이제 끝났고 우리의 구세주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