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33 레지오의 선서문에 대하여 (교본 제15장 : 141-143면)

레지오의 초창기 회합에서 단원들은 수련기와 선서식에 대해 결의하였다. 곧 수도회의 수련기와 허원식을 모방해서 예비 단원의 수련 기간을 3개월로 정하고 정규 단원이 되려면 반드시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선서문을 읽는 선서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레지오의 선서문은 정규 레지오 단원으로 등록되기 위해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성령께 봉헌하는 기도문으로 이 선서문은 성령과 마리아, 사도직 정신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지닌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지은 봉헌문을 모방해서 프랭크 더프가 만들었는데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 체계 안에 선서 제도가 있어야 하며, 그 선서는 반드시 성모님을 통해 성령께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은총의 전달자는 성모님이시지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었다.

선서문의 첫 구절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저(성명과 세례명)는 오늘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등록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합당한 봉사를 드릴 만한 능력이 없사오니 저에게 오시어 저를 당신으로 채워 주소서."이다. 이처럼 모든 레지오 단원은 예수님 탄생 예고 때에 마리아께서 "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응답한 것을 본받아 성령께 봉헌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성령은 모든 은총과 거룩함의 근원이시고 영성 생활의 원동력이시다. 단원들의 성화와 사도직 활동에서 성령 신심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레지오는 회합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성령께 대한 기도부터 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어떠한 사도직 활동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 레지오 단원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사도직 활동을 수행한다. 성령께 봉헌한 레지오 단원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내실(內實)을 기하고 밖으로는 선행, 봉사와 선교 활동을 한다. 곧 행동이 따르는 믿음을 실천한다.

그러므로 레지오의 선서문을 알지 못하면 레지오의 성령 신심뿐 아니라 레지오의 사도직과 영성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쉬에넨스 추기경은 "레지오 선서문은 성령과 성모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두 사랑의 계약임을 드러낸다. 곧 성령은 우리 쪽으로 내려오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성모님은 하느님께 올라가는 인간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는 사도신경 구절처럼 두 사랑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계약의 매듭이다"라고 하였다.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나이다. ......당신의 권능으로 저를 감싸주시고 제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성모님의 사랑과 뜻에 일치하게 해 주소서."라고 성령께 선서를 한 모든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본받아 은총을 베푸시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성모님처럼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개인 성화와 사도직 활동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사목'지 게재 최경용신부 훈화 발췌>

훈화34 레지오의 상급단원에 대하여(교본 144-146,149-150면)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개인 성화를 중요시하여 레지오의 목적에 개인 성화를 포함시켰다. 그는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를 저술하였으며 단원들 모두가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개인 성화를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한데, 특히 그는 성무일도와 뗏세라에 있는 기도를 중요시하였다. 그는 성무일도를 하느님과의 순수한 친교로 여겼고 여행할 때에도 성무일도서를 꼭 가지고 다녔다. 그는 또한 미사 참례와 영성체를 개인 성화의 지름길로 여기고 하루 일과의 추진력으로 삼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매일 실천하였다.

프랭크 더프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레지오 조직 체계에 일반 단원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두 등급의 단원 제도를 두었다. 이 제도를 라틴어로 쁘레또리움과 아듀또리움라고 부른다. 쁘레또리움은 고대 로마 군단의 친위대이며 정예 부대인데 레지오에서는 일반 행동 단원보다 더 높은 등급의 행동 단원 제도이다. 아듀또리움은 협력, 조력, 협조, 구조, 보조를 뜻하며 레지오에서는 일반 협조 단원보다 더 높은 등급의 협조 단원 제도이다. 쁘레또리움 단원을 쁘레또리안(Praetorian), 아듀또리움 단원을 아듀또리안(Adjutorian)이라고 한다.

이러한 두 부류의 상급 단원이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할 신심 행위는 다음과 같다. (1) 뗏세라(Tessera)에 있는 모든 기도를 매일 바친다. (2) 매일 미사참례와 영성체를 한다. (3) 교회에서 공인된 성무일도(레지오의 성모 소일과 포함)를 매일 바치는 것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레지오 단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은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와 사도직에 참여하는 일이다. 단원들에게 쁘레또리움과 아듀또리움의 자격을 주는 것은 그들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미사와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숭고한 희생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교회의 중심 전례이다. 그리고 성무일도는 교회가 바치는 공동체 기도로서 시편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레지오 현황에 따르면 행동 단원 29만여 명 중 쁘레또리안은 1만2천여 명, 아듀또리안은 5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상급 단원은 일반 단원보다 좀 더 신심 행위를 많이 하는 것밖에 다른 점이 없으므로 일주일에 한두 번 의무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단원은 개인 성화에 힘써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좀 더 기도를 많이 하는 상급 단원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 영적 지도자와 단장은 상급 단원 제도를 강조하고 많은 상급 단원 확보에 노력해야 하며, 특히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 아듀또리안이 되도록 권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일 미사와 영성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으며 추가로 묵주기도가 포함된 뗏세라의 기도만 바치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레지오와 유대를 맺는다면 그들의 기도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 레지오를 끌어 줄 것이다.

<'사목'지 게재 최경용신부 훈화 발췌>



훈화33 협조단원에 대하여 (교본 147-148,150-159면)

협조 단원은 행동 단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지만 레지오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로써 레지오에 협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행동 단원이 레지오의 전투 부대원이라면 협조 단원은 레지오의 보급 부대원이나 예비군에 해당된다. 협조 단원은 전세계의 영혼을 대상으로 펼치는 레지오의 싸움과 구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봉사한다.

협조 단원 자격에는 신분, 나이, 지역의 제한이 없다. 사제나 수도자 또는 평신도 모두가 레지오의 협조 단원이 될 자격이 있다. 협조 단원 후보자의 이름은 3개월의 수련 기간 동안 임시 명부에 올렸다가 수련이 끝나면 정식으로 일반 협조 단원 명부에 기재됨으로써 자격을 얻게 된다.

협조 단원이 매일 의무적으로 해야 할 기도는 뗏세라에 있는 모든 기도문이다. 곧 성령 호도(呼禱)와 기도, 묵주기도 5단과 그 뒤를 잇는 호도 그리고 까떼나와 마침기도이다. 이 기도는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바칠 수 있다. 이미 어떤 지향을 두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협조 단원이 되었다고 해서 추가로 묵주기도를 더 바칠 의무는 없다.

협조 단원의 기도는 자신이 소속된 쁘레시디움이나 세계 레지오를 위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지향과 영광을 위해 바친다. 레지오의 모후께서는 협조 단원의 기도를 받아 레지오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서 배려하실 것이다. 협조 단원은 "티없으신 마리아,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여, 저에게 허락된 기도와 수고와 고통을 바치오니 당신 뜻대로 쓰시옵소서."와 같은 기도로써 성모님께 매일 자신을 봉헌함이 바람직하다.

협조 단원은 레지오의 날개와 같아서 협조 단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레지오는 그만큼 넓고 큰 날개를 갖게 되며, 그들이 바치는 힘찬 기도의 날개짓으로 레지오는 초자연적인 이상과 더 큰 봉사를 향해 높이 치솟아 오른다. 레지오의 협조 단원이 되면 은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전에는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던 신자들이 협조 단원이 됨으로써 자발적으로 묵주기도를 포함한 뗏세라의 모든 기도를 매일 바친다. 병원의 입원 환자나 사회 복지 기관에 수용된 신자들이 협조 단원이 됨으로써 삶의 활기를 되찾게 된다.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협조 단원이 되면서부터 자신들도 교회에 쓸모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행동 단원은 주변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다른 단체 회원들까지도 협조 단원이 되도록 협조 단원 모집에 힘써야 한다. 협조 단원이 적으면 레지오의 전투 능력은 약해진다. 우리나라의 레지오 현황을 보면 협조단원 숫자가 행동 단원보다 훨씬 적다. 적어도 행동 단원마다 한 명씩의 협조 단원이 있어야 균형을 이루고 전투 능력도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협조 단원 모집도 중요하지만 협조 단원 돌봄도 중요하다. 레지오는 협조 단원들의 기도와 레지오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돌보아야 한다. 주회에서 단장은 반드시 단원들에게 협조 단원 모집과 돌봄을 확인해야 한다.

<'사목'지 게재 최경용신부 훈화 발췌>

훈화36 사순절(사순시기)의 의미와 단원의 삶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교회는 40일 동안 재를 지키게 된다. 성서 속의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신. 구약에서 보면 첫째는, 창세기 6, 7장에 나타난 노아의 홍수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멸하고자 노아를 제외하고는 40주야의 큰비로써 벌하신 사실이 있다. 둘째는,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주께서 만나를 내려 먹여 주신 사실이다(출애굽기 16:15-35). 셋째는, 모세가 주님의 명대로 시나이 산에 올라가 십계판을 받기 전에 40주야를 그 산에서 엄하게 재를 지켰다(출애굽기 24장). 넷째는, 예언자 엘리야가 살아날 가망이 없어서 호렙산에 피해 가다가 지쳐서 어느 싸리나무 덤불 아래 드러누워 잤을 때,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어라"하며 흔들어 깨우기에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불에 달군 돌에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있어 먹고 마시고는 또 갔다. 다시 같은 말을 듣고 또 먹고 마시고 한 다음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다달아 거기서 주님을 뵈온 일이 있다(열왕기 상 19:1-8). 다섯째는, 예언자 요나가 주께 죄악의 도시 니느웨로 보냄을 받아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고 한, 즉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통회보속하여 용서함을 받은 사실이 있다 (요나 3장 참조). 여섯째는, 예수님 자신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40주야를 단식하셨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후 승천전 40일간 지상에 머무셨다.

위의 몇 가지 사실에 나타난 40이란 숫자는 그만큼 오랜 기간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 공통되는 점은, 그 기간은 결코 복된 기간이 아닌, 도리어 슬프고 근신 절제하며 속죄하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 40일 동안 말을 적게 하고 단식, 금육식, 기도, 그리고 영적 독서, 그리고 우리 사회와 세계가 주님의 자비를 받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도 산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의 빵을 우리는 목말라 해야 하고 이것을 먹어야 엘리야처럼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끝까지 갈 수가 있다. 그래서 사순절 40일 동안 매일 다른 성경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아가 몸담았던 배, 모세가 머물고 있었던 산, 엘리야가 가던 길, 그리고 예수님이 단식하시던 광야를 상징하는 이 세상을 예수님처럼,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 같은 조건에서 성령께 인도되어 살아갈 것이다.

사순절 동안 참회와 속죄로 하느님과 가까워지려는 마음과 행동이 중요하다. 나 자신부터 새로워져 변화된 삶을 살아야겠다. 간부부터 쇄신되고 정화되어 단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순절동안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하느님이 내 마음에 오실 수 있도록 하여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하자. 속죄, 희생, 봉사하는 삶을 사는 간부와 단원들이 되자.

[주바라기] 및 레지오 훈화자료 발췌 편집




훈화37 아치에스 행사에 대하여 (교본 p260)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단원들은 해마다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해야 한다. 개인 및 단체 봉헌으로 이루어지는 이 봉헌식은 3월 25일을 전후해서 개최하는데, 이를 아치에스(the Acies)라 부른다. 아치에스는 라틴어인데 '전투 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레지오 단원들이 단체로 레지오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대한 충성을 새로이 다짐하고, 성모님으로부터 앞으로 한 해 동안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울 힘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모이는 의식을 가리키기에 적당한 말이다.

아치에스는 레지오에서 가장 크고 중심을 이루는 연례 행사이므로, 모든 단원이 빠짐없이 이 행사에 참석해야 함은 강조되어 마땅하다.

아치에스 봉헌식을 통하여 단원들은 개인 및 단체로서 성모님께 대한 충성을 새롭게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단원이 능히 참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참한다면, 그는 레지오 정신이 아주 희박하거나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단원을 레지오에서는 필요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의식은 성가로 시작하며, 이어서 시작 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친다. 그 다음 사제가 성모님께 대한 봉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론을 한다. 강론이 끝나면 성모상을 향하여 봉헌 행진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영적 지도자들이 한 줄로 나가고, 이어서 단원들이 역시 한 줄로 그 뒤를 따른다. 단원 수가 많을 때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나갈 수도 있다. 벡실리움 앞에 이르면 각 단원(또는 짝을 이룬 두 단원)은 멈추어 선다. 그리고 벡실리움의 깃대를 잡고 개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한다.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나이다."
아치에스의 특징은 질서와 엄숙한 분위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단원들이 제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사제가 단원들을 대표하여 성모님께 대한 봉헌 기도문을 다시 한 번 큰소리로 바친다. 이어서 단원 모두가 일어서서 까떼나를 바친다. 그 다음, 가능하면, 성체 강복 예절을 가진 후 마침 기도와 성가로써 아치에스를 마친다.




훈화38 단원 양성을 위한 도제 제도에 대하여 (교본 105-107면)

본당마다 거의 복사단(服事團)이 있다. 복사 단원들은 둘씩 짝지어 제대 복사를 한다. 대개 둘 중에 한 명은 복사를 잘하는 고참이고 한 명은 아직 서투른 신참이다. 처음부터 복사를 잘하는 학생은 없다. 실습을 통해 고참이 신참을 지도해 주면 비로소 신참 혼자서도 복사를 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양성 방법을 도제(徒第) 제도라고 한다.
병원의 의사도 실습을 통해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레지오 마리애에서도 단원 양성 방법으로 도제 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어떤 직종이나 기능 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쓰이는 이상적인 훈련 방식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대장장이, 도공(陶工)에 이 제도가 적용되었다.
도제는 실습으로써 스승의 지도를 받는 수공업의 수련공을 의미한다. 도제 제도란 중세기에 수공업의 기능 후계자를 양성하던 방법으로 오랜 기간 제자가 스승 밑에서 수련하여 숙련공이 되면 독립하여 영업을 하며 그 역시 수련공을 두어 기능을 전수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제자 양성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줄곧 따라 다니도록 하면서 당신의 구원 사업을 배우도록 하셨다. 그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함으로써 실습하도록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레지오 활동에서도 이러한 예수님의 양성 방식을 본떠 고참 단원과 신참 단원을 짝지어 준다. 신참 단원들은 레지오 정신이 투철하고 활동 경험이 많은 간부들이나 고참 단원들과 짝지어 활동하게 됨으로써 활동 요령과 방법, 레지오 정신 등을 배우고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근래에는 도제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둘씩 짝지어 활동 배당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점은 시정되어야 한다. 쁘레시디움의 평가 기준의 하나는 도제 제도 실시 여부이다. 조별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조별 활동 보고가 제대로 실시되는 쁘레시디움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다. 교본의 말대로 "지루한 강의 대신 스승이 제자에게 활동거리를 내놓고, 시범을 통하여 활동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실제로 함께 해 나가면서 드러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제자는 스스로 그 활동을 계속해서 수행하는 가운데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유능한 단원을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레지오 교육을 실시할 때도 이론만 주입시키는 강의식 교육이 되어서는 도제 제도에 부합하지 못한다. 강의를 하게 된다면 활동과 실천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레지오의 도제 제도는 이론과 실제가 결부된 심리학적 방식을 사용한다.
레지오의 도제 제도는 주 회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주 회합은 레지오의 단원 양성 학교이다. 쁘레시디움에서 새 단원이 레지오의 규율과 규칙을 배우며 주회 출석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도와 공부를 하고 활동 보고 요령을 배우는 것도 도제 제도에 따른 단원 양성 방법이다.
도제 제도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성화 방법이고 유능한 단원으로 양성시키는 이상적인 교육 방법이다. 따라서 둘씩 짝지어 활동하고 보고하도록 하는 이 제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39 개인 성화의 목적과 방법에 대하여 (교본 108-109면)

레지오 단원은 성화(聖化)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개인 성화는 자신의 구원이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찌 남을 구원하겠는가? 개인 성화는 레지오의 목적인 동시에 으뜸가는 실천 방법이고 활동 수단이다. 단원 자신이 성화되지 않고서는 값있는 활동을 하기 어렵다. 단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총을 전달할 때에는 자신이 지닌 은총만큼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의 전체적 목적은 성화의 모델이신 성모님을 통해 단원들을 성화하여 그들이 그리스도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을 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통하여 성령으로 가득차고 온 누리를 새롭게 하는 성령의 권능을 행사하는 데 도구로 써 주시도록 간청하면서 단원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개인 성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방법은 기도와 성사이다. 레지오 단원은 까떼나와 묵주기도를 매일 바쳐야 할 것이다. 아침, 저녁 기도와 묵상, 성서 봉독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피정도 중요시하고 성체 신심을 가져 평일 미사에도 자주 참례하고 영성체 해야 할 것이다.
단원들은 먼저 성모님의 성덕을 본받아야 한다. 성모님께서는 개인 성화의 표본이시다. 성모님께서는 여러 가지 덕으로써 개인 성화를 이루셨다. 성모님의 덕은 겸손, 순명, 온유, 기도, 고행, 순결, 인내, 지혜, 사랑, 믿음 등이다. 이러한 덕은 바로 레지오의 정신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정신을 지녀야 한다.

단원들은 또한 레지오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의 성덕도 본받아야 한다. 프랭크 더프는 성인(聖人)이 되고 싶어서 봉사 활동과 더불어 개인 성화에 주력했다. 그가 영적 성장을 하게 된 계기는 영적 독서와 봉쇄 피정이었다. 그는 특히 성인전을 즐겨 읽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성인들의 사랑은 그에게 성인이 되고자 하는 원의를 새겨 주었다. 1916년 27세에 그는 처녀작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Can we be Saint?)를 출판하였다. 그는 이 소책자에서 "성인이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자신의 일상 의무를 특별히 잘 이행하는 사람"(8면)이라고 하면서 완덕에 이르는 여러 가지 의견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예수회 신부를 영적 지도자로 삼아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를 받았다.

그는 또한 25세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미사 참례를 했고 만년에는 매일 두 번 미사 참례를 했다. 그는 성체 조배도 자주 하고 바쁜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시간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가르멜 수도회 제3회원이 되어 성모 소(小)성무일도를 바치다가 후에 완전한 성무일도를 날마다 바쳤다. 그는 이처럼 거룩한 생활을 했으므로 시복(諡福)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에델 퀸(Edel Quinn)도 프랭크 더프를 본받아 아프리카에서 레지오 선교사로서 성덕을 닦았다. 그녀는 1994년 12월에 가경자(可敬者:Venerable)로 선포되었다.

레지오 단원은 이러한 분들을 본받아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고 개인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0 레지오의 상훈(常訓)에 대하여 (교본 167면)

가정에서 가족을 위한 교훈으로서 가훈(家訓)이 있듯이 레지오에서는 단원들을 위한 상훈(常訓)이 있다. 상훈은 레지오 단원이 항상 지켜야 하는 복무 규정이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단원들에게 레지오의 규율과 복무 규정을 준수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단장은 매월 첫 주회에서 서기의 회의록에 서명한 다음 앉은 채로 상훈을 낭독한다. 상훈은 매우 중요하므로 활동 계획표 안에 함께 적어 넣거나 별도로 간직하여, 낭독할 때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훈은 세계 최초의 쁘레시디움과 꾸리아 단장을 역임한 엘리사벳 커완(Elizabeth Kirwan)이 만들었다. 최연장자인 그녀는 레지오 단원들을 아주 엄하게 다루었다. 처음에는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는 단장들을 위해 복무 규정과 지침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레지오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 발전하게 되자 레지오를 잘 모르는 신입 단원들에게 레지오의 상훈을 알려 줄 필요가 대두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낭독되고 있는 네 가지 조목의 상훈이 작성된 것이다.

레지오의 상훈은 교본 제33장 '레지오 단원의 의무'(288-316면 참조) 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무를 발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하여, 자신이 한 활동에 대하여 알맞고 또렷한 보고를 한다."
단원이 주회에 출석하는 것은 으뜸가는 의무로서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해야 한다. 그리고 회합에서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도 활동을 잘 하기 위한 것이므로 단원들은 반드시 주간에 2시간 이상의 활동 의무를 채운 다음 주회에서 알맞고 또렷한 목소리로 보고해야 한다.
"둘째, 까떼나를 매일 바친다."
고리 또는 사슬이라는 뜻을 지닌 까떼나(Catena)는 단원과 단원, 단원과 성모님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 기도이다. 고리 기도에서 고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단원들은 날마다 까떼나를 바쳐야 한다.
"셋째, 믿음의 정신으로 성모님과 일치하여, 실질적이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수행하며, 그 활동 대상자와 동료 단원들 안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금 뵙고 섬기시듯이 한다."
이 상훈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와 관계되는 내용이다. 각 단원은 레지오 활동을 함께 하는 동료 단원들과 활동 대상자를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로 여겨 마치 성모님이 모성애로써 머리이신 당신 아드님 그리스도를 뵙고 섬기시듯이 보살피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회합에서 토의된 사항이나 레지오 활동과 관련하여 알게 된 모든 일에 대하여 반드시 비밀을 지킨다."
레지오 단원은 회합에서나 활동과 관련하여 알게 된 좋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사 기밀을 누설하는 배신 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1 활동 보고에 대하여 (교본 169-173면)

쁘레시디움 회합 순서와 진행에서 활동 보고 시간이 가장 길다. 보고를 하다가 시간이 모자랄 것에 대비하여 활동 보고를 계속할 수 있는 시간까지 배려해 놓았다. 그런데 주회합에 참석해 보면 활동 보고에 소요된 시간이 시작 기도에 소요된 시간보다 짧은 경우가 종종 있다. 보고할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원들은 한결같이 형식적인 보고를 하고 단장은 한꺼번에 모든 단원의 보고를 받아 버린다. 그리하여 전체 회합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넘지 못한다. 이러한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활동 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쁘레시디움은 활력을 잃고 만다.

활동 보고는 회합의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서 마치 중추 신경처럼 회합 전체 분위기를 밝고 명랑하게 만들기도 하고 썰렁하고 활기 없게 만들기도 한다. 활동 보고의 목적은 두 시간 이상의 주간 활동 체험을 서로 나누고 단원의 복무 상태를 확인하며 활동에 대한 흥미를 돋우고 회합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활동 보고에 익숙해지면 용기와 발표력이 생길 뿐만 아니라 원활한 활동 수행 방법과 활동 보고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활동 보고를 할 때에는 먼저 활동 대상자의 인적 사항을 밝히면서 육하 원칙에 의거하여 조리 있게 발표해야 한다. 판에 박은 듯한 표현은 활동 체험을 나누지 못하고 활동에 관한 흥미나 정보를 주지 못한다. 따라서 보고할 때에는 어떤 정신으로, 어떤 활동을, 어떤 방법으로 시도했고, 어떤 결과였는지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소요된 시간은 얼마이고 달성하지 못한 활동은 무엇이며 아직 접촉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지 등의 내용도 보고해야 한다.

활동 보고는 예수님의 방법을 본떠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구두로 보고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한 다음 구두로 활동 보고를 받으셨다. 조별 활동 보고는 한 사람이 보고한 다음 보충하고 수정할 사항에 대해 다른 한 사람이 보고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두 명이 함께 활동하기 곤란할 때는 단장 계획서에 조별로 두 명의 이름을 적고 각자가 자신의 활동을 보고한다. 활동 보고는 단장이 배당하고 지시한 활동에 대한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활동이 아니므로 단장의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활동 보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고 방식은 먼저 성모상을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성(姓)과 세례명을 밝힌 다음 "보고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가능한 한 레지오 활동 수첩에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하여 단장과 단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보고한다. 활동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활동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보고할 것이 아니라 사유를 밝히고 "분발하겠습니다."라고 덧붙여야 할 것이다. 활동도 없고 해명도 하지 않는다면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인상을 풍겨 동료 단원들에게 좋지 못한 본보기만을 남기게 된다. 반면에 모범적인 활동을 한 단원에게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단원들에게는 모범적인 보고를 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성모님께서 보고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를 상상하면서 좋은 보고를 하려고 힘쓰는 단원은 어느 면에서나 불성실한 보고를 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2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신심행위

1.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
구약성서에는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고 신약에서도 짤막하고 드물다. 따라서 성서를 통해 '역사적 마리아'를 알아내기는 힘들며 다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과 그 위치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성서에서의 마리아는 복음선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돼 그 어머니로서 언급되며 또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고 따르는 참된 신앙인 의 모범으로 드러난다. 마리아에 관한 교의는, 평생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모친, 또한 원죄에 물들지 않았으며 사망 후 승천했다는 것이다.

▨ 평생 동정녀인 마리아
루가복음과 마태오복음의 성서적 근거(루가 1, 34; 마태 1, 20~25)에 따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를 정통 신앙으로 고백한다.(사도신경) 동정녀 잉태와 탄생은 그리스도로 인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에서 나오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아가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지냈다는 전통이 에페소 공의회(431년) 때 공인됐으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 )때 신조 안에 '영원한 동정'이라는 표현으로 삽입됐다.

▨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오랜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선포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교의로 선포됐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이 교의는 그후 칼체돈공의회 등을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재확인됐다. 이 칭호는 성자와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된다. 마리아가 출산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만큼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죄를 범해 인간은 누구나 원죄의 멍에를 지고 있지만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마리아 역시 여느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
지만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느님의 은총으로 무죄성의 특권을 지닌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 마리아의 승천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교의는 아들 성자의 영광과 어머니의 현양,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기쁨을 표현한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고 8월 15일을 축일로 정하여 선포하였다. 세례받은 이들은 지금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상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 승천은 마리아가 모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예형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2. 마리아 공경과 신심 행위들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거룩한 동정녀를 존경 하고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성자께 전구(轉求)하여 주시기를 청하고 그 덕행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리아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서 공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명심 해야 한다.
성모공경은 이미 2세기부터 시작돼 4~5세기경 동방교회에서 마리아 축일이 제정돼 전례적 공경이 시작됐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마리아 공경이 보급되고 권장됐다. 마리아 공경은 공적인 전례나 사적인 기도로 표현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600가지 이상의 성모와 관련된 축일이 있다. 그중에는 세계 교회가 다함께 거행하는 것과 지역이나 일부 교구 수도단체에서만 거행하는 것들이 있으며 공식적인 교회의 신심은 주로 미사전례와 성무일도를 통해 표현된다. 교회는 또 성모 마리아와 관련해 전례적 공적 공경 외에도 성모께 대한 사적 공경과 신심행위를 승인해왔다. 흔히 마리아 신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도로 알려져 있는 묵주 기도도 이에 속한다.

▨ 묵주 기도
전례축일(10월 7일)과 묵주의 달이 제정돼 있을 만큼 신자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대표적인 성모신심 기도이다. 성 도미니꼬에 의해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주 기념일은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에서 묵주의 힘으로 터키를 무찌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해 비오5세 교황이 제정했다. 묵주의 달 제정은 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이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마리아께 합당한 신심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교회는 특히 루르드 파티마 등의 성모 발현에서 묵주 기도가 특별히 권장된 것을 인정하고 있다.

▨ 기적의 메달
1830년 성모님이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친히 알려준 무염시태 성모 공경을 위한 메달이다. 1832년 교회 인가를 받아 보급되기 시작했고 빈센트회 사제들이 이보급에 힘썼다. 특히 1858년 루르드와 1932-1933년 보랭에서 발현한 성모마리아는 무염시태의 칭호 아래 공경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스카풀라(Scapular)
가르멜의 스카풀라는 기적의 메달과 함께 준성사이다. 이는 인정된 가르멜산 및 성모무염시태의 신심을 나타낸다. 원래 가르멜회 회원 수도복을 지칭했으나 현재는 두 개의 작은 옷조각과 끈으로 이뤄져 회원 휘장처럼 목에 거는 것으로 변형됐다.

▨ 성모 칠고(七苦)의 로사리오 성모칠고는
1. 시메온이 예언한 고통(루가 2, 34~35)
2. 이집트 피난
3.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잃음
4. 그리스도의 매맞음과 가시관 쓰심
5. 십자가에 못박히심
6.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7. 무덤에 묻히심 등을 말한다. 이 신심은 각 슬픔을 묵상하면서 주님의기도
1번, 성모송 7번씩을 바치는 것이다.

▨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신심
20세기 들어 전 세계에 보급된 신심으로 1917년 파티마 발현이 큰 계기가 됐다. 1799년 비오 6세가 이 축일을 승인했고 1861년 비오 9세는 미사와 성무일도를 인정했다. 비오 12세는 1945년 이 축일 을 전교회 축일로 보편화시키는 한편 이에 앞서 1942년 인류를 성모성심께 봉헌했다. 이 신심은 파티마 성모신심, '푸른군대'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자료 출처 : 천주교용어사전



훈화43 한국교회와 성모신심에 대하여

한국교회에는 '해성(海星)'이라는 이름을 지닌 단체나 학교가 유난히 많다. 해성은 '바다의 별' 즉 성모 마리아 에게 특별한 보호를 요청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각별한 성모신심을 보여주는 예이다. 한국교회의 깊은 성모신심은 초기교회로부터 내려온다. 1801년 순교한 홍낙민은 배교했다가 이를 취소하고 순교했는데 이는 그가 매일 묵주기도를 열렬히 바침으로써 성모의 도움을 얻어 가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성 김대건신부가 중국서 귀국할 당시 뱃길에서 풍랑을 만났으나 성모님 께 전구를 청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김신부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선교사 들이 조각배를 타고 황해를 건널 때 성모님께 전구했으며 이로 인해 뱃길의 위험 뿐만 아니라 그후 박해의 위험도 여러 차례 모면했다고 전한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교우들은 매일 묵주기도를 5단씩 바쳤고 주일이면 15단씩 바치는 것이 일상화됐었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1841년 무염시태의 성모를 한국교회 새 주보로 모시게 된 것은 이러한 초기교회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당시 주보로 모시던 성 요셉 대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로 정해줄 것을 요청, 1841년 이를 허락 받는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감사로 1846년 충남 공주 수리치골에 <성모성심회>를 창설했고 1861년 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을 성모에 관계된 호칭으로 명명해 한국교회 전 지역을 성모님 보호 아래 있도록 했다. 1898년 명동대성당은 무염시태 성모께 봉헌됐고 1954년에는 다시 한국교회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그후 30년이 흐른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5월 6일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겨레와 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봉헌 하였다.

▷자료 출처 : 천주교용어사전



훈화44 레지오의 기도문에 대하여 (교본 제22장:202-207면)

일반적으로 수도회에서는‘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을 중요시 한다. 레지오 마리애 역시 수도회의 영향을 받아 활동(노동, 일)과 마찬가지로 기도를 중요시 한다. 기도의 중요성 때문에 레지오에는 기도 부대인 협조 단원 제도가 있고 기도를 더 많이 하는 단원, 곧 쁘레또리움 단원과 아듀또리움 단원 제도를 두고 있다.
레지오의 기도문은 시작 기도, 까떼나, 마침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 기도는 성호경을 시작으로 성령께 드리는 호도에 이어 묵주기도와 ‘여왕이시며’(Salve Regina) 그리고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 호칭 기도, 레지오의 수호 성인 호칭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까떼나는 후렴과 마리아의 노래 그리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일명 기적의 메달 성모님)께 대한 화살 기도와 본기도로 엮어져 있다. 마침 기도는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와 레지오의 수호자들에 대한 호칭 기도, 굳센 믿음을 간구하는 청원 기도, 사제의 강복과 성호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는 개인 성화와 사도적 활동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단원들은 기도로써 필요한 은총을 받게 된다. 은총은 성령께서 주신다. 성령은 은총의 근원이다. 그래서 레지오는 우선적으로‘성령께 드리는 호소’로써 회합을 시작한다. 까떼나(Catena)는 사슬, 고리라는 뜻이다. 까떼나는 레지오와 단원, 단원과 단원, 단원과 성모님과의 연결 고리가 되는 일상 기도이다. 까떼나의 중심 부분은‘성모의 노래’(Magnificat)이다.‘성모의 노래’(루가 1,46-55)는 성무일도의 저녁 찬가로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노래이다.

마침 기도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은 믿음을 청하는 기도이다. 믿음은 종교의 핵심이며 기초이다. 믿음이란 절대자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하고 확고부동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온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25세 때에 믿음에 대한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가르멜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보속을 바치려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그의 신앙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 존재하시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니 인생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옥과 같은 암담한 상태가 그에게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후 원래대로의 믿음이 되돌아 왔다. 비록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는 신앙의 어두운 밤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신앙이란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이므로 그 누구도 이성만으로는 신앙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오로지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 특별히 믿음을 청하는 기도문을 삽입했을 것이다.

믿음은 성모님의 특출한 덕성 중의 하나이다. 성모님은 친척 엘리사벳으로부터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1,45)라고 칭송 받으셨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라면 성모 마리아는 믿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신자이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다.
따라서 모든 레지오 단원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매일 레지오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은총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5 레지오의 기도문은 변경하지 못한다(교본 제23장 : 208면).

레지오 회합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맺는다. 레지오는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공인 받은 기도문을 사용한다. 이 기도문은 낱장의 인쇄물인 뗏세라에 수록되어 있으며 단원들은 이를 늘 지니고 다니면서 매일 바친다. 이 기도문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가 만든 것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80년도에 이미 80여 개국 언어로 바쳐지고 있었다.

레지오의 시작 기도문은 빈첸시오회의 시작 기도문을 본뜬 것이다. 다만 묵주기도와 ‘여왕이시며’(Salve Regina)를 새로이 삽입하고 수호 성인들을 다시 대치하였다. 까떼나의 후렴인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는 구약성서의 아가서 6장 10절을 인용한 것이고,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지은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50항과 210항에서 발췌한 것이다. 마침 기도문은 믿음에 대한 청원 기도로서 역시 몽포르의 성인이 지은 같은 저서 214항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만든 것이다.

전세계 레지오 회합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기도문도 통일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앙 평의회의 결의가 없는 한 그 누구도 레지오의 기도문을 변경할 수 없다.
시작 기도에 있어서 묵주기도도 사도신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묵주기도의 첫 부분인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세 번, 영광송을 바치지 않은 적이 있었으나 시정되었다. 그리고 ‘구원을 비는 기도’도 세계적인 통일을 위해 레지오 회합이나 행사에서는 바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기도문 중에서 수호 성인에 대한 호칭 기도 역시 국가나 지방의 성인 또는 어느 특정 성인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지 못한다. 만약 추가나 변경이 허용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 하게 될지도 모른다. 레지오의 모든 규칙을 만든 나라가 아일랜드이고 그 나라를 가톨릭 국가로 만든 공로자요 수호자로서 아일랜드 국민이 특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파트리치오(Patricio, Patrick) 성인조차 레지오 기도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레지오와 관련된 수호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일랜드와는 상관이 없는 프랑스 몽포르 출신 성 루도비코 마리아는 레지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므로 레지오 기도문에 삽입되어 있다. 특정 성인에 대한 호칭 기도 추가를 용인한다면 레지오 조직 체계가 흐트러진 수 있으므로 ‘레지오 기도문은 변경할 수 없다.’라는 규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1월부터 레지오의 기도문 중에서 ‘여왕이시며’(Salve Regina)와 ‘성모의 노래’(Magnificat) 문구가 바뀌었다. 이 두 가지를 성무일도와 가톨릭 기도서의 문구와 통일시키기 위해 번역을 다시 한 것이다. 영어 원문은 그대로이므로 기도문이 바뀐 것은 아니다.
교본 본문이 강조하듯이 레지오의 정신은 레지오의 기도문에 나타나 있다. 어느 나라말로 바치든 가장 정확하고 통일된 공통 기도문을 바치는 것은 레지오의 깃발 아래 모여 봉사하는 모든 단원들의 정신과 규율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결코 레지오의 기도문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6 나자렛의 성가정에 대하여 (교본 제21장 : 197-201면)

가정은 사회의 기초 공동체이다. 가정이 튼튼하고 건전하면 사회도 튼튼하고 건전해 진다. 가정은 한 인간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보금자리이고 인간 성숙과 삶을 배우는 수련소이며 학교이다.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인생 덕목의 기본을 배운다. 가정이 불행하면 인생도 불행하다.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은 행복하다. 그런 가정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옮겨 놓은 것과 같다. 1917년 10월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마지막으로 발현하셨을 때 성가정의 가족 모두가 함께 나타나신 것도 가정 성화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셨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이 새로이 이루어지는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성가정을 이루셨다.

쁘레시디움도 레지오 조직에 있어서 가정과 같은 기초 공동체이며 성덕의 수련소이다. 기초 공동체인 쁘레시디움은 가정의 모델인 성가정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말씀하셨으니 여럿이 함께 모인 쁘레시디움 회합은 예수님이 현존하시는 자리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곁에 성모님과 성 요셉도 함께 계신다. 따라서 쁘레시디움 회합은 나자렛의 성가정과 같다.

레지오 단원들은 회합실뿐만 아니라 레지오 제대, 책상, 의자, 교본, 회의록 등의 회합 때 사용되는 기물들을 나자렛 성가정의 집과 가재 도구를 대하듯이 다루어야 한다. 단원들은 성모님이 옛적에 나자렛에서 하셨던 살림살이를 이제 쁘레시디움이라는 가정 안에서 재현하시도록 해야 한다.

성모님은 살림살이의 표본이셨다. 비록 가난하고 가재 도구도 변변치 못했겠지만 성모님은 살림살이를 잘하셨다. 성가정의 모든 물건은 예수님을 돌보기 위해 쓰여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쁘레시디움의 모든 것도 단원들을 잘 돌보는 데에 쓰여져야 한다.

살림살이는 물질이나 재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살림살이는 생활을 살리는 일인 동시에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구원 사업의 요람이었으며 주님을 위한 터전이었다. 쁘레시디움은 살림살이의 표본인 성가정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나자렛 정신이다. 만일 쁘레시디움에서 듣고 보는 모든 것이 나자렛의 성가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쁘레시디움에는 나자렛 정신이 모자라는 것이다. 나자렛 정신이 부족하면 그 쁘레시디움은 시든 꽃과 같다.

쁘레시디움에 나자렛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잘해야 한다. 쁘레시디움의 결점은 주로 간부들에게 원인이 있다. 단원들은 간부들로부터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빗나간다. 단원 양성소인 쁘레시디움 회합과 나자렛 성가정을 비교해보자. 성모님이 살림살이를 등한시하거나 예수님께 그릇된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쁘레시디움 간부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림살이를 잘한다면 예수님께서 쁘레시디움에 기꺼이 현존하시어 간부들과 단원들에게 힘을 실어 주실 것이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7 주회합 마침시 유의사항에 대하여 (교본178면)

회합을 마치기 전에 활동 배당 지시, 협조 단원 모집과 돌봄 확인, 교본 공부, 기타 사항이 있다.
활동 보고가 있으려면 반드시 활동 배당 지시가 있어야 한다. 단장은 주간 활동 계획서에 의거하여 당면한 활동을 둘씩 조를 이루어 수행하도록 배당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 활동도 병행하도록 지시해야 할 것이다.
활동 배당에는 단장의 역할이 가장 크다. 단장이 활동 거리를 미리 확보하지도 않고 활동 배당도 없이 단원들로 하여금 자유 활동을 하도록 방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활동은 레지오 회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단장은 활동 배당과 지시에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활동 여하에 따라 레지오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으므로 단장은 회합 전에 미리 활동 거리를 확보해 놓아야 한다.
단장은 활동 거리를 혼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영적 지도자나 단원들에게서 제공받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본당 사무실에서 활동 자료를 찾을 수 있으며 구역, 반공동체 모임, 본당의 여러 단체로부터도 활동 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활동 배당이 빈약하면 조직체가 쇠퇴될 수 있음을 단장은 명심해야 한다. 매번 같은 내용의 활동만 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원들은 배당받은 활동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배당받은 활동을 하지 못했다면 그 다음 주간에 이행해야 한다. 단장은 단원이 배당받은 활동을 완수할 때까지 같은 활동을 배당해 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의 활동 종목은 크게 입교 권면, 예비신자 돌봄, 교우 돌봄, 어려움을 겪는 분 돌봄, 레지오 확장, 본당 협조 등이다. 활동 종목을 세분하여 열거하자면 활동 거리가 상당히 많아진다. 세분된 활동 거리는 쁘레시디움 사업 보고서의 활동 세목에 잘 나타나 있다.
수련기에 있는 예비 단원도 활동 배당 지시를 받는다. 단장은 '도제 제도' 에 따라 수련 단원이 고참 단원과 함께 활동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협조 단원 모집과 돌봄은 레지오 단원의 의무이므로 주회에서 단장이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부단장은 확인 결과를 출석부의 협조 단원 해당란에 기입하며 이때 아듀또리움 단원 모집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협조 단원에 있어서 모집도 중요하지만 돌봄도 중요하므로 가끔 자신이 돌보는 협조 단원과 함께 레지오 기도를 바쳐야 한다
교본 공부는 관례상 협조 단원 모집과 돌봄을 확인한 다음에 실시한다. 교본 공부는 레지오 단원의 의무이다. 단원들은 레지오의 교과서인 교본을 공부함으로써 자질을 향상하고 정신을 무장하며 레지오의 원리와 규칙을 폭넓게 습득하게 된다. 따라서 교본 공부 시간에 성서 공부나 다른 공부를 할 수 없다.
교본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단장이 지정해 준 교본의 한 부분을 지명 받은 한 사람만 공부해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단원 모두가 공부해 와야 하며 지명된 단원의 발표가 끝난 후 질의 응답 등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교본 공부가 끝나면 기타 사항 시간을 두어 쁘레시디움과 관련된 사항을 공지하거나 의논한다. 이때 상급 평의회 방문자가 있으면 방문 소감을 듣는다.
회합을 마칠 때에는 모두 일어나서 뗏세라의 마침 기도를 바친 후 영적 지도자의 강복을 받는다. 영적 지도자가 불참했으면 다같이 성호를 긋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레지오 단가는 촛불을 끈 상태에서 부른다. 회합이 완전히 끝나면 제대 비품과 서류를 정리하고 회합실을 깨끗이 정돈한다.
쁘레시디움 주회합의 총 진행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 되어서도 안 되고 한 시간 반이 넘어서도 안 됨을 단장은 유의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8 뗏세라와 레지오의 단기에 대하여 (교본 제26, 27장:229-231면)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뗏세라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뗏세라(Tessera)는 출입증, 승차권, 입회증, 회원증, 신분증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군사 용어로는 고대 로마 군대에서 암호를 적어 돌렸던 네모난 표찰을 가리켰다. 로마 제국 시대에 흩어져 살고 있던 군인과 그 가족 또는 귀족 사회의 친구와 그 가족들이 서로 만나거나 거주지를 방문할 때 뗏세라를 보여 줌으로써 출입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작전 지역에서 야간에 암호를 알고 있어야 통행과 출입이 허용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레지오 마리애의 뗏세라는 레지오의 기도문과 그림이 실린 리플릿(leaflet)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뗏세라의 규격은 가로 11.5cm, 세로 17.5cm이고 분량은 12쪽이다. 뗏세라가 지닌 특성은 레지오의 기도문과 그림 외에도 세계의 모든 레지오 조직에서 두루 통용된다는 점과 단원들 사이의 소속감, 친밀감, 형제애, 일치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협조 단원들은 매일 뗏세라의 모든 기도를 드려야 하며 행동 단원들은 뗏세라에 들어 있는 까떼나를 매일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뗏세라를 마치 신분증처럼 여겨 늘 가지고 다니면서 레지오의 기도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고대 로마 군단에서는 군기(軍旗)를 라틴어로 벡실룸(Vexillum)이라고 불렀다. 벡실룸을 벡실리움(Vexilium)으로 기록하거나 발음하는 것은 잘못이다.
무릇 어느 국가든지 그 나라의 표지(標識)가 되는 국기가 있듯이 군대에도 군기가 있기 마련이다. 군기는 군대의 정신적인 상징이므로 기수가 늘 앞장서서 들고 간다. 전쟁에서 비록 기수는 쓰러지더라도 군기는 수호되어야 한다. 군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벡실룸을 단기(團旗)라고 부른다. 단기는 매우 중요하므로 회합에서 레지오 선서를 할 때나 아치에스 행사를 할 때에 반드시 레지오 단기의 깃대를 손으로 잡도록 한다. 레지오의 단기는 로마 군단의 군기를 본뜬 것이다. 그 군기는 독수리 형상 아래에 황제의 초상이 들어 있었다. 레지오는 그 군기를 그리스도교적으로 변형시켜 독수리는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로 만들었다. 비둘기 아래에는 'Legio Mariae'(레지오 마리애)라는 표장이 있다. 이 표장과 깃대 사이에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나타내는 타원형 패(기적의 패)가 자리잡고 있으며, 장미와 백합이 그 사이에 장식되어 있다. 깃대는 지구본 위에 세워져 있고 지구본 아래쪽은 네모진 받침대가 받쳐 주므로 벡실룸을 탁자 위에 세울 수 있게 되어 있다. 단기의 전체적인 구도는 성령께서 성모 마리아와 레지오 단원들을 통해 활동하심으로써 지구의 모든 인류를 차지하시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레지오의 단기는 회합에서 사용하는 탁자용(높이 약 32cm)과 행렬이나 아치에스 행사 때 사용되는 대형 거동용(높이 약 2m)으로 구분된다.
쁘레시디움과 각 평의회에도 고유한 기가 있는데 레지오의 단기와는 달리 천으로 만든 깃발 형태이다. 쁘레시디움기나 꾸리아기를 레지오 단기라고 부르지는 않으며 보통 붉은색이나 푸른색으로 만드는데 맨 위에는 레지오 마리애라고 새기고 그 아래에는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의 명칭을 기입하고 맨 아래에는 교구와 성당 이름을 명시한다. 뗏세라에 있는 그림을 보면 무수히 많은 레지오 단원들 맨 앞 오른쪽에는 기수가 비둘기 모형의 벡실룸을 들고 있고 왼쪽에는 푸른 천 바탕의 방패형 깃발에 라틴어로 레지오 마리애라고 새겨진 깃대를 들고 있다.
레지오의 단기는 레지오 마리애를 표상하므로 레지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제반 양식에는 반드시 벡실룸의 표장이 나타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레지오의 단기와 각 쁘레시디움기나 평의회기를 늘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49 레지오 단원의 충성에 대하여 (교본 제29장:257-259면)

군복무를 마친 지 몇십 년이 흘러도 남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군대 생활 얘기를 종종 한다. 희로애락의 체험이 생생하고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는 충성심이 필수적인 군인 정신이다. 흔히 경례 구호도 '충성'이다. 국가와 상관에게 복종으로 충성하겠다는 뜻이다. 충성은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말로만 충성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무력한 군대가 된다. 그리하여 탈영, 하극상, 총기 탈취 등의 불상사가 생긴다.

고대 로마 군단은 투철한 군인 정신을 지녀 국가에 대한 충성심,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으로 혼연일체가 되었고 지휘관의 작전 지시에 따라 기꺼이 목숨을 바쳐 무적의 군대가 되었다. 이 군단을 본뜬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을 총사령관으로 모신 영적 군대로서 충성을 중요시한다. 평의회의 으뜸가는 의무도 직속 상급 평의회에 대한 충성이다. 충성은 레지오 전체를 결합시키는 접착제이며 생명선이다. 레지오에서 충성이란 쁘레시디움에 대한 단원들의 충성, 꾸리아에 대한 쁘레시디움의 충성을 비롯하여 세계 중앙 평의회에 이르는 모든 상급 기관에 대한 충성을 말하며 또한 영적 지도자, 교구장, 교황 등 교권(敎權)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 프랭크 더프는 그 당시 성직자들이 하던 영적인 활동을 실시함으로써 반성직주의자, 반교권주의자라는 비난과 오해를 받았지만 교회 권위에 끝까지 복종과 충성을 보였다. 그리하여 레지오 창설 50주년에는 아일랜드 주교단으로부터 레지오가 한결같이 보여 준 복종과 충성에 대한 찬사의 편지를 받았다.

레지오에서 충성을 강조하는 근거는 성모 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충성이다. 성모님께서는 동정녀로서 구세주 잉태 예고를 듣고 죽음을 무릅쓰고 순명하셨고 일생동안 하느님께 충성하셨다.

레지오 단원들은 입단 선서식을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근래엔 그 약속을 자주 어김으로써 기강이 해이해져 힘없는 군대가 되고 있다. 특히 단장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진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단장에게 충성하는 것은 단장이 단원보다 레지오에 대해 더 잘 알거나 인격 면이나 능력 면에서 단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단장의 통솔력이 부족하고 결함이 있을지라도 단장에게 순명하는 것은 레지오와 교회에 순명하는 것이다. 단원들은 조직의 정당한 권위에 대해 겸손하게 순명해야 한다. 순명은 충성의 열매이다. 쁘레시디움 주회에서나 평의회에서 단장에게 지시 받은 일을 성모님께서 지시하신 일로 여기고 순명하는 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충성이다. 주님께서 단원들을 도구로 쓰시려 하시는데도 불순명하고 결석이 잦고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레지오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배당 받은 활동을 못했을 때에는 단장은 그 이유를 물어 단원으로부터 충성심과 순명 정신을 확인받아야 할 것이다.

단원뿐 아니라 간부들도 조직의 결속을 해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간부들이 회합 참석을 소홀히 하거나 통신의 의무를 게을리하고 회합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충성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다. 모든 레지오 단원은 단장과 관리 기관, 그리고 교회의 권위에 대해 순명과 복종으로 충성함으로써 고대 로마 군단처럼 성모님의 강력한 군단을 이루어야 하겠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0 레지오의 수호성인중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교본:211- 212면)

레지오의 영성과 성모 신심은 프랑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저술한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책에서 유래한다. 이 성인은 이 책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114항 참조).
이 성인의 이름을 레지오의 시작 기도문에 삽입하기로 한 다음과 같은 결의문으로써 이 성인은 레지오의 특별 수호 성인이 되었다. "어떤 특정 성인이나 지역의 수호자를 레지오의 수호 성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결정에 비추어 볼 때 몽포르의 복자 그리뇽을 포함시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레지오 발전에 이분만큼 큰 역할을 한 성인이 없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이분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고 레지오의 기도문은 바로 이분이 하신 말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분은 사실상 레지오의 스승이므로 레지오가 이 성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의 도의적으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면 이 성인의 생애를 알아보자.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St. Louis Marie Grignion)은 1673년 1월 31일 프랑스 렌느 교구의 몽포르(Montfort)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18명의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기 때문에 맏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모상 앞에서 자주 기도하여 성모 신심이 각별해진 것인지 견진성사 때 세례명인 루도비코에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그는 어느 날 가르멜 성당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에 사제직에 대한 소명을 깨달았다. 20세 되던 1693년에 사제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다. 2년 간 고생 끝에 성 슐피스 수도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700년 6월 5일에 성품성사를 받아 수사 신부가 되었다. 당시 그는 캐나다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싶어했으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시립 병원의 원목이 되었다. 도시 빈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그 병원에서 마리 루이즈 뜨리세라는 동정녀와 함께 '지혜의 딸들'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성모 신심을 권장하는 그의 활동이 얀세니스트(Jansenist)들의 방해를 받았다. 얀세니즘은 교회 안에서 엄격주의를 표방하고 특히 성모 신심을 거부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들의 방해를 받아 사면초가에 직면하였다. 1706년 봄에 그는 걸어서 로마까지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를 알현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교황의 지시에 따라 그는 프랑스 서부 지역의 선교사가 되어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그는 무려 2만 5천㎞를 걸어 다니면서 7개의 교구를 재복음화시켰고 100개 이상의 본당을 변화시켰다. 그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곳곳에 세우고 성모 경당을 복구하고 묵주기도를 권장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강조하였다. 또한 신자들로 하여금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하고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완전히 봉헌하는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마리아 선교 수도회'도 창설하고 훌륭한 저서들도 남겼다.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영위한 그는 1716년 4월 28일 생 로랑에서 선종하였고 그곳 슈르 쎄브르 성당의 성모 경당에 묻혔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성인의 훌륭한 생애와 영성을 본받고 이 성인이 가르쳐준 참되고 완전한 성모 신심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짓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축일은 4월 28일이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1 레지오 확장과 단원 모집(교본 제31장:270-275면)

어느 단체든지 회원 숫자가 늘어난다면 발전하는 것이다. 레지오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원 모집과 쁘레시디움 증설에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성은 성모님께 대한 충성의 표시이다. 쁘레시디움 설립과 단원 모집은 평의회와 평의원의 의무 사항일 뿐만 아니라 행동 단원의 활동 의무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날 레지오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 상태에 있으며 단원 숫자나 평의회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추세에 있다.
레지오가 단원을 많이 모집하기 위해서는 기존 단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생활을 몸소 보여 주어야 한다. 마지못해 단원 생활을 하거나 서로 간부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누가 레지오에 입단하려고 하겠으며 레지오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레지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를 많이 받는다면 레지오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이나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라고 하셨고,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하셨으며,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레지오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해 자신도 구원 받고 선교와 봉사 활동을 통해 타인도 구원 받게 함으로써 참으로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낸다. 일단 레지오에 가입하면 이기심 없는 자원 봉사자가 되어 고통 받고 도움이 필요한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그리고 선교 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단원이 되면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해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세속 정신에서 벗어나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된 삶을 살게 된다. 또한 레지오 단원이 되면 성모 신심이 깊어져 성모님의 덕을 본받아 인격이 도야된다. 그리고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레지오 단원이 되면 본당 사목자의 수족(手足) 역할을 하게 되며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단원 생활을 오래 한다면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식과 위령 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매년 위령 성월에 어김없이 위령 미사로써 죽은 레지오 단원들을 기억해 준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특전이며 은혜이다.
쁘레시디움의 이상적인 단원 숫자는 예수님께서 선발하신 사도들의 숫자처럼 열두 명이다. 단원 수가 너무 많아 회합 소요 시간이 계속 한 시간 반을 넘긴다면 분단해야 한다. 분단할 때는 기존 쁘레시디움으로부터 간부나 신입 단원을 적정한 비율로 신생 쁘레시디움에 전속시킴으로써 둘 다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 쁘레시디움은 훌륭한 인재를 신생 쁘레시디움에 보내는 것을 영예로 여겨야 한다. 분단할 때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일지라도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
레지오 확장에는 소년 쁘레시디움과 소년 평의회 설립도 해당된다. 각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소년 쁘레시디움 운영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레지오 확장을 위해서는 각 쁘레시디움이 일 년에 한두 명 정도는 입단시키고 평의회마다 일 년에 한 개 정도의 쁘레시디움을 신설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레지오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2 단원들 사이의 유대관계에 대하여(교본 294-299면)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간부들과 동료 단원들을 사랑해야 하고 함께 활동하는 단원들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럼에도 단장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어느 단원이 보기 싫다느니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단원들은 동료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사랑을 표현하지만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동료의 허물까지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단원은 자신이 단원 생활을 하는 이유가 단장이나 동료 단원들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인정, 무시, 비난,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이 단원 생활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자제력과 함께 자신의 개성을 매끈하게 다듬어 레지오 조직에 잘 적응하는 단원이야말로 유대 관계를 잘 맺는 단원이다.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는 것이 군자되는 기본 조건'이라고 했고, 노자는 '모든 것에 이로움만 줄 뿐 그것과 겨루거나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물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참된 사람이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기 중심의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육지에 사는 생쥐가 물에 사는 개구리를 초대하여 맛있는 육식을 대접하였다. 개구리도 그 보답으로 생쥐를 초대하였다. 헤엄칠 줄 모른다는 생쥐에게 "괜찮아. 내가 이 질긴 풀로 네 발목을 내 발목에 잡아매고 업어 줄테니까."라고 말하면서 안심시켰다. 그런데 개구리는 신이 나서 등에 업혀있는 생쥐 생각을 깜박 잊어 버리고 물 속으로 한참 들어가 있는 바람에 생쥐가 숨이 막혀 죽어서 물에 둥둥 떴다. 때마침 공중을 빙빙 돌던 매가 생쥐를 보고 잽싸게 낚아채자 생쥐의 발목에 매여 있던 개구리도 함께 공중으로 끌려갔다. "아, 잠깐만, 나를 놓아 주세요. 당신이 낚아 챈 것은 물위에 떠 있던 생쥐가 아닙니까?" 그러나 매는 "흥, 죽은 생쥐보다야 살아 있는 네가 훨씬 더 맛있겠다." 하더란다. 이처럼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상대방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 것이다. 단원들이 레지오에 소속되어 있는 한 마치 개구리와 생쥐의 발목을 서로 잡아 맨 끈처럼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단원들 간의 유대 관계가 단원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훈 제3항에서 단원들은 "활동 대상자와 동료 단원들 안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금 뵙고 섬기시듯이 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이나 동료 단원들 특히 함께 활동에 나선 단원을 또 하나의 예수님으로 받아들여 사랑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3 교본공부와 항상 복무하는 자세에 대하여 (교본 299-306면)

모든 단원은 레지오 마리애의 공인 교본(The official Handbook of the Legion of Mary)을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은 레지오의 공식 해설서이고 단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과서이다. 이 교본은 단원들이 성모님의 군사로서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중요 사항들 곧 레지오 조직의 원리와 규칙, 운영과 활동 방법, 레지오의 정신 등에 관해서 가능한 한 간결하게 설명한 규범집이다. 교본에 제시되어 있는 정신과 사상은 적극적인 레지오 활동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본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레지오 활동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다. 특히 영적 지도자나 간부들의 경우에 교본을 모르는 상태에서 레지오 조직을 제대로 지도하고 운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교본을 많이 알면 알수록 능률적으로 레지오를 운영하게 되고 질적 수준도 높아진다.
교본 공부의 중요성 때문에 수련기의 예비 단원들은 의무적인 학습 활동으로서 교본 전체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주회합 순서에도 교본 공부 시간을 별도로 두고 있다. 교본 공부 시간에 교본을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면 그것은 어디까지 영적 독서에 지나지 않으며 레지오가 바라는 수준의 교본 지식을 쌓지는 못한다. 교본 공부 시간에는 교본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며 질의 응답도 곁들이는 것이 좋다. 가끔 보면 교본 공부를 배당 받은 단원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부담스런 마음이 생겨 결석하는 한심스런 일도 생긴다. 교본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학습 활동이다. 영적 지도자나 단장은 단원들이 교본에 담겨 있는 뜻과 사상을 익혀 차츰 수준을 높여 갈 수 있도록 매주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공부시켜야 하며 단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교본 공부를 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일상 생활의 모든 면에 레지오 정신이 깃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레지오의 전반적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늘 주위를 살피며 항상 복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고 활동 대상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원이 복무 자세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규율을 지키는 것과 차별 없는 사랑이다. 옷차림, 말씨, 태도, 행동 등이 남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비록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봉사 정신이 담긴 의지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가 10,25-37)의 비유를 통해 항상 차별 없는 사랑으로 복무할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한 마디로 간단히 대답하지 않으시고, 강도 만난 사람을 아낌없는 사랑으로 돌보아 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드시면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하셨다. '내 이웃이 누구냐' 보다도 '누가 내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고 사랑에는 추상적인 이론보다도 실제적인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행동하는 사랑을 강조하셨다.
레지오 단원도 일상 생활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늘 차별 없는 사랑으로 복무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비록 주회합에서 배당 받지 않은 활동이라도 일상 생활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한 선행, 봉사, 선교 대상자에게 행동하는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4 기도를 바쳐야 할 의무와 내적 생활을 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교본 제33장12-13항:306-312면)

레지오는 행동 단원들이 매일 까떼나만 의무적으로 바칠 것이 아니라 뗏세라에 있는 모든 기도를 바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외적인 활동뿐 아니라 내적인 생활도 의무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레지오의 첫 번째 목적은 단원들의 개인 성화이다. 단원들이 구원 문제에 서 개인 성화는 아랑곳없이 활동에만 신경 쓴다면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모름지기 단원들은 활동과 더불어 기도와 내적 생활을 통해 개인 성화에 힘써야 한다. 개인 성화는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방법은 기도와 성사이다. 개인 성화의 지름길은 기도와 보속과 성사로써 이루어지는 내적 생활이다.
내적 생활이란 각자의 생각이나 욕구 또는 애착 등이 오직 주님께 집중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내적 생활의 모형이며 개인 성화의 표본은 복되신 동정 성모님이다. 성모님은 성덕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특히 그분의 애덕은 전 생애에서 더욱 크게 자라났다.
단원들은 개인 성화에서 성모님뿐만 아니라 레지오의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열성도 본받아야 한다. 그는 성인전을 즐겨 읽고 성인이 되고 싶은 나머지 이미 27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Can we be saints?)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였고 봉사 활동과 더불어 개인 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개인 성화가 중요한 것임을 안다면 그것을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영적 성장의 계기가 된 것은 영적 독서와 봉쇄 피정이었다. 봉쇄 피정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게 되자 해마다 두 차례씩 스스로 피정을 실시하였다. 그는 단원이면 누구나 최소한 일 년에 한 번 2박 3일의 주말 봉쇄 피정을 할 것을 강조했고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1박 2일이나 당일 피정이라도 할 것을 권장했다. 그는 수도회 신부를 영적 지도자로 삼아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를 받았다. 그는 25세 때부터 죽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도 점점 더 많은 시간 기도하였고 특히 감실 앞에서의 성체 조배에 전념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의 공동 기도인 성무일도를 날마다 바쳤다. 그는 성무일도를 하느님과의 순수한 친교로 보았다.

그는 또한 금욕과 극기를 중요시하여 폐허가 된 옛 수도원에 해마다 가서 참회와 보속의 고행을 하였다. 금욕과 극기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행위이며 그분의 삶을 좀 더 온전히 나누어 가짐을 의미한다. 자신을 단련함은 죄악으로 기울게 하는 경향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훌륭한 방법이다.
프랭크 더프는 개인 성화와 내적 생활에서 미사 참례와 영성체, 성무일도, 묵주기도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것들을 매일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두 등급의 단원 제도를 두었다. 그리하여 단원들로 하여금 그들의 활동에서 기도에 의존하는 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레지오에서는 창설자 프랭크 더프가 훌륭한 내적 생활로써 개인 성화를 이루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복자품에 오를 수 있도록 시복 청원 기도문을 만들어 단원들에게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성모님과 프랭크 더프를 본받아 기도와 내적 생활로써 개인 성화에 정진해야 한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55 쁘레시디움 단장의 역할과 임무에 대하여 (교본 321-325면)

레지오 마리애는 성직자 단체가 아니라 평신도 단체이다. 쁘레시디움에서 아무리 영적 지도자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다고 할지라도 단장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영적 지도자는 어디까지나 지도자이기 때문에 단장의 일을 겸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단장은 영적 지도자가 불참할 때 영적 독서, 까떼나 낭송, 훈화 등 영적 지도자의 일까지 맡아서 해야 한다. 단장은 쁘레시디움의 대표로서 단원들을 통솔하고 쁘레시디움을 관리,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쁘레시디움의 운명, 발전과 성패는 단장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은 추진력, 통솔력, 사명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에서나 사도직 활동 수행에서 단원들에게 표양과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예컨대 단장이 주회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도 준비하지 않아 활동 배당을 해 주지 않고 단장 자신이 활동 이행에 소홀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열성도 없이 타성에 젖어 있다면 단원들이 하나 둘 이탈하여 얼마 못가서 그 쁘레시디움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이처럼 단장의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움직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므로 그럴 경우 단장은 사임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해체될 위기에 있던 쁘레시디움이 훌륭한 단장을 맞이함으로써 쁘레시디움이 활성화되고 단원 수가 많이 불어나 새로운 쁘레시디움을 분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단장은 단장 계획서를 철저히 준비하여 주간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를 제대로 받고 나자렛의 성가정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주회를 원만하게 진행한다. 그는 겸손하여 자신의 감정에 좌우되거나 수다스럽게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며 단원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그는 단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단원들에게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다. 그는 성모 신심이 깊고,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교회 권위에 순종한다. 그리고 다른 간부들이 각자의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도록 돌본다. 이러한 단장이 있는 한 그 쁘레시디움은 활기차게 마련이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은 단장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냥 평단원으로서 부담없이 레지오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지오에 대해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단장직을 마지못해 떠맡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모름지기 단장은 성모님이 직접 자신에게 중책을 맡겼다고 여겨 기꺼이 레지오에 봉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단장직에 필요한 은총을 충분히 받게 될 것이며 1차 임기 3년만이 아니라 2차 임기 6년까지도 무난히 채우게 될 것이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성모님 군대의 최전방 소대장과 같다. 전쟁터에서 소대장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소대원들을 이끌고 최일선에서 용감하게 싸우듯이 쁘레시디움 단장이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단원들이 단장을 우러러보고 순명 정신으로 열심히 단장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가톨릭 지성인을 위한 '사목'지 레지오 훈화(최경용신부)에서 발췌

훈화 56 " 5-3=2 와 2+2=4"

(아래 부분에 본당 성모의 밤 행사 관련 글이 있습니다)

5-3=2 와 2+2=4
이것은 이해와 사랑에 관한 공식입니다.
5-3=2 즉, 어떤 오해라도 세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 이런 이해와 이해가 모여서 사랑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해도 받고 오해도 하지만 대개 오해는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때문이고
하잖고 사소한 일이 원인이 될때가 많지요
세번 생각하면 살인도 면한다고 합니다.

루가복음 2장에 성모님께서도 가브리엘 천사의 "은총이 가득히 받은 마리아, 기뻐하여라"
라는 말에 당황하였고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곰곰히 생각하셨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5월 성모 성월에 성모님의 성급하지 않은 마음, 곰곰히 생각하며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닮고자 노력하면서, 혹시라도 "오해"라는 엉킨 실타래가 생겼다면
이 5-3=2, 2+2=4 이해와 사랑의 공식으로 서로 풀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는 토요일(5.15) 오후 8시에 성모님의 밤이 있지요.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성당 앞 마당에 모여 성모상을 가마에 모시고 행렬하면서 각자의 손에 밝혀진 촛불에
우리의 원의와 소망을 담아 성전에 봉헌할 것입니다. 봉헌하는 초에 우리 가족의 안녕도
빌어야 겠고, 더불어 세상에 일어나는 마음 아픈 일들, 특히 이라크 전쟁이후의 여러
좋지 않은 상황들, 일본이 독도 문제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 이북 용천의 사고 등등의
일들도 성모님께 도움 청하며 기도로 봉헌했으면 합니다.

2004.5 김 헬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