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위복불위목(聖人爲腹不爲目)
박혜순/서울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환경보전부 연구위원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
다섯 가지 색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먹게 하고,
다섯 가지 맛은 사람으로 하여금 입맛을 어긋나게 하고,
말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인용문은 노자 '도덕경' 12장 전문을 풀이한 내용이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인위복불위목(聖人爲腹不爲目)'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니 도대체 이 무슨 뜻인가? 배는 무엇이고, 눈은 뭐란 말인지? 왕필의 주석을 찾아 읽었다. 왕필은 '배를 위한다는 것은 물질로 몸을 기르고, 눈을 위한다는 것은 물질이 몸을 부리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눈을 위하지 않는다' 라고 풀이하고 있었다.
'爲腹不爲目' . 나는 이 문장에 사로잡혔다. 아하! 그렇구나! 인간의 자연파괴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했구나! 갑자기 환경위기에 대한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만약 도가의 성인처럼 눈을 위하지 않고 배를 위했다면, 즉 다시 말해서 우리가 동물들처럼 단지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만 자연을 이용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생태계파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자연이 없다면 단 한 끼도 배를 채울 수 없고, 자연의 도움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면서도 우리는 생활수준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얻기 어려운 재화를 탐하고 얻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옷, 쾌적한 집, 아름다운 음악, 맛있는 음식, 즐거운 쾌락을 얻어도 우리의 마음은 만족 해할 줄 모르고,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점점 더 피곤하게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몸을 위할 뿐 눈을 위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돌아보면 우리는 그 동안 몸을 위하기보다는 눈을 위한 문명에 지나치게 주력해온 게 사실이다. 우리가 자신의 눈을 위하고, 나아가 남의 눈을 의식 하는 가운데 우리 몸은 망가지고 자연도 더불어 망가져 갔다.
그렇게 하여 결국은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라는 감각의 포로가 되어 자연계 의 생명을 하나둘 잃어가고 이제 급기야 지구의 생물계 전체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톨릭 신문 환경칼럼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