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1. 여는 말

올해는 茶山丁若鏞의 탄생 2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다산은 이 땅에서 75년을 살면서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겪었으며, 거의 반평생을 죽음의 위협 속에 지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고난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아, 철학 · 종교 · 윤리 · 역사 · 정치 · 경제 · 과학 · 농업 · 의학 등에 대한 깊은 연구와 저술을 통해 한국의 근세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그의 방대한 양의 저술과 다방면에 걸친 연구는 한국 역사에 있어 가히 ‘전설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산은 학문 연구와 저술이라는 ‘소리의 언어’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과 사상을 ‘몸의 언어’로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는 수원성(화성)의 건축에 기증기와 과학기기를 제작하여 활용함으로써 백성의 인명 상해와 국가의 경제 지출을 최소화하였다. 이 수원성은 1997년 UNESCO에 세계 유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선정의 이면에는 건축 과정에서 백성의 생명을 아끼고 노임을 불평 없이 지불한 愛民 정신에 대한 높은 평가도 작용했다고 한다.1) 이렇게 ‘몸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사상은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어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추앙받게 하였다. 예컨대 베트남의 국부로 일컫는 호치민이 다산을 흠모하면서 그의 저서를 곁에 두고 탐독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UNESCO에서는 올해 다산 탄신 25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2012년 기념 인물’ 중 하나로 다산을 선정하기도 하였다.2)

그런데 이러한 실천적 사상가를 탄생하게 한 데에는 西學의 영향이 컸으니, 다산과 서학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라 하겠다. 그는 〈自明疏〉에서 서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기를, “서교를 마음으로 흔연히 좋아하고 사모했고 또 일찍이 이를 거론하여 남에게 자랑하였으며, 근원적인 심술[本源心術]에 마치 기름이 스며들고 물이 젖어들며 뿌리가 뻗고 가지가 얽히듯 하였다”3)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영향을 준 서학에 대해 다산은 천주교회의 제사금령과 진산사건(1791년)을 계기로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더 나아가 지난날에 좋아하고 사모하던 바도 허황되고 망령된 것으로 판단하여 배척하였으므로 “칠규의 심장을 쪼개어도 진실로 나머지 가리운 것이 없고 구곡간장을 더듬어 보아도 진실로 남은 찌꺼기가 없다”4)고 천명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다산이 서학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취하게 된 계기가 되는 천주교회의 제사금령에 대해 역사적 전개과정과 그 내용을 고찰하고, 제사 금령에 대한 다산의 입장과 그의 상제례관을 고찰하며, 아울러 20세기 천주교회의 유교제례인식 변화를 살펴보면서 다산 상제례관을 재조명 · 평가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이 세계적인 인물이자 실천적 사상가인 다산에 대한 보다 깊고 바른 이해에 일조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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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2003, 168~172쪽 ; 실학박물관,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 실학박물관, 2011, 138~139쪽.
2) www.unesco.org/new/en/unesco/events/prizes-and-celebrations/anniversaries celebrated by member states
3) 〈辯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4) 앞의 글.

2. 18세기 교황청의 정복주의적 선교정책과 유교제례 금지

1)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유론과 중국의례논쟁의 대두
16세기 소위 종교개혁으로 인해 북부 유럽을 잃고 극히 위축되어 있던 가톨릭 교회는 때마침 지리상 발견을 맞아 신대륙에 대한 포교에 정열을 쏟게 된다. 수도단체들은 새로이 개척되는 신대륙과 식민지에 교황청과 가톨릭 군주들의 협조를 받아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이들 군주들은 해외의 무역권과 영주권을 교황으로부터 보장받고 그 대신 교회의 포교활동을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를 졌는데(padroado), 포르투갈은 예수회를 지원하였고 스페인은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를 지원했다. 이런 가운데 포르투갈의 중국 무역로를 따라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도착한 것은 明나라 말기인 1583년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과 문화적 우월의식을 갖고서 다른 문화와 사상에 대해 경시적이고 배타적이었다.5) 서구 그리스도교 역시 “교회 밖에서는 절대 구원이 없다”6)는 전통적인 신념과 함께 신앙적 정통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로마시대 내지 중세 황금시대와 같은 신앙적 ․ 정치적 통일 세계를 다시 이루고자 하는 실락원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포교 자세에 있어서도 선교지 문화를 경시하면서 신앙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서구화된 그리스도교를 이식시키려 하였다.7)

이러한 유럽인의 일반적 사고 방식과는 달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동료 예수회원들은 중국 문화와 사상을 존중하면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개방적이고도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질적인 그리스도교를 포교함에 있어 반감과 거부를 유발하려 하지 않고, 서양의 발달된 과학 지식과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호기심 많고 탐구적인 중국인들의 관심과 호감을 얻어 영구적인 거주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점차 중국 선교의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또한 복장이나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중국화하려고 힘썼고, 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천주교 사상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 하에 이들은 선진 유교의 昭事上帝, 조상숭배, 상선벌악사상, 仁 사상 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리인 천주존재와 속성, 영혼불멸, 사후천당지옥, 애주애인 등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유교가 철학 학파 내지 자연 종교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완전하고 유일한 계시 종교인 천주교에 의해 보완되고 궁극적으로는 천주교에 귀일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보유론적 선교전략은 주효하여 단시일 안에 지식인들을 입교시키고 교회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다.8)

그런데 이 예수회의 보유론에 대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은 영합주의(Syncretism)라고 비난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중국의 고전이나 유교 사상에 대해 예수회원만큼 연구와 이해가 깊지 못하였다. 더구나 이들은 北京 등 대도시에 거주하던 예수회원들과는 달리 대개 福建省과 山東省의 시골에서 전교하였으므로 접촉하는 이들이 주로 시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시골 사람들이 거행하던 조상 제사나 공자 공경 의식에 미신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은 이러한 예속을 보고서 조상숭배를 미신행위로 판단했던 것이다.9)

선교사들 간의 선교정책의 차이와 전통문화에 대한 견해 차이는 이른바 중국의례 논쟁을 야기하였다. 이 논쟁은 세 가지 문제로 집약되니, 그리스도교의 유일신(Deus)에 대한 중국적 호칭으로 ‘天主’ 외에 ‘上帝’나 ‘天’을 사용할 수 있느냐, 전통적인 조상제사를 허용할 수 있느냐, 공자 공경의식을 허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먼저 궁극자의 명칭 문제에 대해 예수회원들은 ‘천주’가 가장 적절한 호칭이지만 중국인에게 친숙한 ‘상제’나 ‘天’ 역시 만물의 위격적 주재자를 지칭하므로 ‘천주’와 병칭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10) 반면에 프란치스코회원과 도미니코회원들은 중국인에게 있어 ‘天’이나 ‘太極’은 神的 의미가 없는 물질적 개념이며 ‘상제’는 ‘태극’보다 하위개념이므로 ‘상제’와 ‘ 天’은 사용할 수 없고 오직 ‘천주’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1) 또한 조상제사와 공자공경의례에 대해서도 예수회원들은 자녀나 제자가 사후의 부모나 스승에게 드리는 효도와 존경의 상징적 표현이요 단지 국민적, 사회적 의례로서 천주교의 제사와는 다르다고 보아 허용한 반면에,12)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원들은 이 제례의식이 선조와 공자를 신적 존재로 섬기는 종교적 행위로서 천주교의 제사와 같은 성격의 의례이므로 미신 내지 우상숭배라고 판단하여 금지하였다.13)

이 의례 논쟁은 동양 선교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으므로 선교 단체 간의 쟁론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교황청에 해결을 요청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교황청과 유럽이 관여하면서 논쟁은 약 백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이 문제를 처음 교황청에 제기한 사람은 도미니코회원 모랄레스(Morales)였다. 그는 1643년 예수회의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에 반대하여 중국 의례에 대한 부정적인 17개항의 질의서를 교황청에 제출하면서 해답을 요구하였다. 이에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5년 모랄레스가 제기한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례 등을 금하는 훈령을 내렸다.14)

이에 당황한 예수회는 1651년 마르티니(Martino Martini)를 로마로 파견하여 모랄레스의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상당한 검토 끝에 교황 알렉산더 7세는 1656년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례에 대한 예수회의 입장과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을 허용하는 훈령을 내렸다.15) 더욱이 1659년 포교성성은 중국 선교사들에게 신앙을 전할 것이지 유럽의 관습이나 풍속을 이식하지 말며, 선교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비록 비난받을만한 악한 관습을 변경시킴에 있어서도 자제와 침묵으로써 하되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에 하라고 지시하였다.16) 이러한 교황청의 적응주의적 토착화 선교정책은 1622년에 설립된 교황청 포교성성의 방향이기도 하였다.17)

그러나 이러한 교황청의 관용적 결정에 불만을 품은 도미니코회는 이의를 제기하여 1656년의 관용 결정이 1645년의 금지결정을 무효화시키는가를 질의하였다. 이에 교황청은 1669년 먼저 훈령이 나중 훈령에 의해 무효화된 것이 아니며 둘 다 각각 “제기된 문제점과 환경에 따라 지켜져야 하고 훈령에 언급된 모든 것은 다 지켜져야 한다”18)고 명하였다. 이 신축성 있는 훈령은 예수회의 입장과 적응주의적 선교를 지지해 주는 작용을 하였다.

한편 예수회는 淸朝에 대한 과학적 공헌과 헌신적 봉사로 인해 康熙帝로부터 비록 불완전하지만 신앙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데 성공하였다. 황제는 1692년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은 반란의 위험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라마교와 비슷한 특전을 주었다.19) 이 칙령은 지방 관리들도 거부하지 못할 만큼 호의적인 것으로서, 이후 중국선교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2) 통일성의 선교정책과 유교제례의 금지
파리외방전교회의 입국(1684년)은 해결된 듯하던 중국의례 논쟁을 재연시켰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중국 책임자인 福建省의 매그로(C. Maigrot) 주교는 1693년 자기 관할 구역에 있는 사제들에게 ‘天’이나 ‘상제’의 호칭 사용을 금하고 공자와 선조에게 드리는 제사의식을 금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결정을 교황청에 요청하였다.20)

예수회도 강희제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의례의 근본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으며, 황제는 국민의 대표자,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공적 해석을 내렸다. 즉 공자와 죽은 이에게 드리는 공경 의식은 추모와 효도의 표현으로 종교적인 성격이 없는 국민적인 관습이고 ‘天’과 ‘상제’란 용어는 유일신적 개념이므로 예수회의 입장이 옳다는 것이다. 황제는 이 유권해석을 1700년 로마 교황에게 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견해 표명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했으니, 반대파에서 어찌하여 순수한 종교 문제를 외교인 황제에게 제출하여 판단을 요청했느냐고 비난함으로써 예수회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21)

오랜 검토와 격론 끝에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04년 훈령을 내려, ‘천주’ 외에 ‘상제’나 ‘天’이란 용어 사용을 금하고, 공자와 선조에게 드리는 제사와 죽은 이의 신위도 금하되 단순히 죽은 이의 이름만을 쓰는 것은 허락하였다.22) 교황은 이 훈령을 특사인 투르농(Charles de Tournon) 주교로 하여금 전달하게 하였는데(1705년), 투르농은 非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경시적 선입견과 외교술의 미숙으로 인해 불행을 가중시켰다. 강희제는 처음엔 특사를 환대했으나, 그가 대화를 나누러 온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명령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서는 크게 노하여 그를 마카오로 추방해 버렸다. 그리고는 1706년 칙령을 내려 중국 의례에 관한 한 리치가 제시한 방침에 따르겠다고 서약하는 선교사들에게만 중국에 거주할 수 있는 印表를 주고 그렇지 않는 선교사는 모두 추방하도록 명했다. 이러한 황제의 칙령을 들은 투르농은 南京에서 교황 훈령을 발췌하여 자기 이름으로 〈命令〉(Regula)을 발표하면서(1707년) 모든 선교사는 이 〈명령〉을 따라야만 하고 만일 따르지 않는 자는 파문을 당할 것이며, 황제의 인표를 받지 말라고 명령하였다.23)

투르농의 명령에 따라야 하느냐, 아니면 중국 선교를 위해 황제의 인표를 받아야 하느냐는 문제로 또 다시 선교사들 간에는 심한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매그로 주교를 위시한 파리외방전교회원, 대부분의 도미니코회원, 소수의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투르농의 명령에 따라 황제의 인표를 거부하여 추방되었으나, 예수회원과 그 밖의 선교사들은 인표를 받았고 투르농 주교의 〈명령〉을 재고해 달라고 교황청에 탄원하였다. 강희제도 1704년의 제사금령을 철회시키고 의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11년 사절을 교황에게 보냈다.24)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투르농의 〈명령〉을 추인하고 예수회의 탄원을 거부하면서 1715년 3월 19일 강경한 금지 명령을 내렸으니, 이것이 바로 칙서 〈Ex illa die〉이다. 칙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에서는 ‘천주’ 만이 그리스도교의 신(Deus)의 이름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天’ 이나 ‘상제’ 등의 용어는 금한다. 둘째, 공자에게 드리는 모든 존경의식을 금한다. 셋째, 조상을 공경하기 위한 의식과 제사 등은 집에서 거행되든가, 무덤 앞에서 거행되든가 간에 금하니, 이 의식들은 다 미신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선조의 신주를 모시는 것을 금하되, ‘神位’ 또는 ‘神主’라는 글자 없이 단순히 이름만 써서 모시는 것은 허락한다. 다섯째, 중국의 모든 선교사들은 이 칙서 준수를 선서해야 하며, 이에 따르지 않는 선교사는 파문과 함께 중국에서 사목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25)

교황의 이러한 강경 명령을 알게 된 강희제는 크게 노하여 그리스도교를 금하는 칙령을 내리게 되며(1717년), 이에 지방에서는 西敎에 적대감을 갖고 있던 많은 관리들에 의해 박해가 가해졌다.26) 이러한 중국 교회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교황은 메차바르바(Ambrosio Mezzabarba) 주교를 특사로 중국에 파견하였다. 메차바르바는 칙서의 범위 안에서 8개의 허용사항을 만들어 황제에게 제시하였다.27) 그러나 강희제는 거듭 그리스도교의 神 개념과 중국인의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없으며 전통 제례를 단죄하는 것은 무식한 바보짓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를 분노케 한 것은 중국 문자도 제대로 모르는 서양인들이 재판관과 같이 중국의 전통적 大道에 대해 판단할 뿐만 아니라 이단 사설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행위였다.28)

한편 선교사들 간에는 다시 메차바르바의 허용안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생겼으며, 이에 교황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재검토하게 되었다. 마침내 1742년 7월 11일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결정적인 칙서 〈Ex quo singulari〉를 반포함으로써 파란만장했던 백여 년 간의 소위 중국의례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칙서는 과거의 어느 것 보다도 강한 어조로 메차바르바의 허용안을 배격하고 클레멘스 11세의 칙서 〈Ex illa die〉를 재천명하면서 모든 선교사에게 칙서 준수를 서약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이에 불복하는 자는 엄한 벌과 함께 중국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일체의 논란을 엄금하였다.29)

그런데 중국의례에 대한 교황청의 판단기준은 그 근본의미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과 병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조상제사와 공자공경의식이 종교적(미신적)인 행위라면 그리스도교 신앙과 병행할 수 없고 단순히 사회적인 관습이라면 병행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이 의식들의 성격이 종교적(미신적)이냐, 아니면 사회적이냐는 데 판단의 초점이 있었던 것이다.30)

그래서 1656년의 허용결정에서는 이 의식들이 단순히 국민적, 사회적(civilis et politicus) 예식이라고 판단하여 허용한 반면에,31) 1645년 ,1704년, 1715년, 1742년의 금지 결정에서는 미신적(superstitiosus) 의식이라고 판단하여 금했던 것이다.32) 비록 그 의식들 자체는 미신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중국인의 종교심성으로 볼 때 미신과 혼합되어 있어서 미신적 요소를 분리해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33)

그러나 교황청이 이러한 금령을 내리게 된 이면에는 선교단체 간의 경쟁의식, 국가 간의 알력, 언어의 장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으나, 결정적으로는 유럽인의 우월의식과 비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경시 및 정복적인 획일주의 선교정책이 작용했던 것이다.34) 당시(18세기 초) 유럽에서는 “이미 서구적 국가주의와 식민주의가 강력하게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또 이와 관련하여 비서구인에 대한 유럽인의 우월감이 작용하기 시작한 때인 만큼 유럽인은 중국인과 그 문화에 대해서 점점 경멸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심지어는 마테오 리치식의 포교관례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예수회 소속 성직자들마저도 이제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철저하게 연구한다든가, 중국문화를 근본적으로 동정한다든가, 호의적으로 이해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35) 당시 중국에 있던 서양 선교사치고 중국어에 능통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강희제가 한탄할 정도였다.36) 이러한 시대풍조의 영향 하에서 중국의례에 대한 교황청의 기본자세는 “주님의 밭에 가라지가 뿌리 내리지 않도록 최대한 경계해야 하며, 만일 뿌리가 내리고 있다면 가능한 한 속히 뽑아 버려야 한다”37)는 단죄적이고도 정복적인 노선이었다. 이러한 교황청의 자세와 금령에 대해 W. 프랑케는, “그것은 국가주의 ‧ 식민주의적(영토확장적) 제국주의사상에 지배된 ‘유럽중심주의적 태도’(the europocentric attitude)의 결과”38)이며, “19세기와 20세기 초를 통하여 꾸준히 추구해 왔던 제국주의적 포교전략의 일환”39)이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3) 제례 금령의 조선 전달과 진산사건의 파장
조선에 있어서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는 星湖李瀷의 실학사상을 이어 받은 성호학파의 일부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경세치용을 중시한 이들은 관념으로 흐른 주자학에 비판을 가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는 한편, 새로운 사상인 서학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고 마침내는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40)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선인 스스로에 의해 이 땅에 세워진 교회공동체는 유가의 벽이단적 공격과 질시에도 불구하고 초기 창립학자들의 보유론적 자세와 토착화 정신 속에서 꾸준히 발전하고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생교회에 심한 폭풍우가 몰아 닥쳤으니 바로 조상제사에 대한 금지명령이었다. 이 제사금령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742년 교황 베네딕트 14세의 칙서 〈Ex quo singulari〉에 의해 결정적으로 선언되어 중국에서는 이미 엄하게 준행되고 있었으나 조선 신자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당시 신자들은 천주교에서 천주 외의 다른 신에 대한 경배와 제사를 미신으로 단죄하여 엄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天主實義》 ․ 《三山論學記》 ․ 《盛世蒭蕘》 ․ 《敎要序論》 등을 통해 명백히 알고 있었다.41) 그러므로 1787년(丁未) 李承薰은 柑製에서 ‘漢枌楡社’란 제목이 나붙자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천주 외의 다른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한 글을 지어도 역시 대죄가 된다”고 하면서 한 글귀도 짓지 않았던 것이다.42) 이러한 그의 행동은 곧 문제화되어 소위 丁未泮會事件의 한 원인이 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조상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의 명확한 금령과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1789년경에는 조상 제사에 관련된 금지 규정이 있음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였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1789년 이미 신자들 사이에서 열독되던 《성교절요》43)에는 십계명 중 제1계명을 거스르는 죄로, 천주 외의 다른 神 제례뿐만 아니라 장례와 조상제사에 관련된 조항들이 열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44) 장례와 조상제사에 관한 금지 사항은 ① 장례 시 죽은 이의 입에 은전을 넣거나 壽飯 또는 壽穀을 차리는 행위, ② 과분한 참람의 예 또는 허망하고 가식적인 예로 선조를 경배하거나 다른 이가 이러한 의례를 거행하는데 참례하는 행위, ③ 선조와의 감응을 믿거나 선조에게 복을 비는 행위와 선조가 제물을 흠향한다고 믿거나 내림하여 흠향하기를 청하는 행위, ④ 선조의 영혼이 신주라는 木牌에 의빙해 있다고 믿는 행위와 이러한 牌 앞에서 울거나 절하는 행위 등이다. 이러한 금지 조항을 알게 된 당시 신자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조상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주를 모셔도 좋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고, 마침내 북경에 문의하게 되었다.

1790년 乾隆帝의 팔순 축하를 위한 특사가 파송되자 조선교회는 그 사행원에 尹有一을 끼워 보내면서 성직자 파견 요청과 함께 조상 제사에 대한 문의 편지를 북경 교회에 전하게 하였다.45) 북경의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주교는 조선 신자들로부터 조상 제사에 관한 질문을 받은 사실과 제사금령을 시달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790년 조선 교회에서 나에게 제기한 의문과 질문들 가운데는 ‘선조 신주를 모시거나 이미 모셔 놓은 신주를 그대로 보존해도 괜찮으냐’는 사항이 있었습니다. 나는 교황 베네딕도 14세의 칙서 〈Ex quo〉와 클레멘스 11세의 칙서 〈Ex illa die〉에 있는 교황청의 명백한 결정에 따라 부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46)

이 제사금령은 달레(Ch. Dallet)의 말대로 조상 숭배가 국교와도 같이 준행되던 당시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조선 국민의 모든 계층의 눈동자를 찌른 격”47)이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父子 관계를 하늘이 맺어준 天倫이요 효도를 하늘이 생래적으로 품부해 준 ‘良知良能’48)이라 믿어 무엇보다 중요시하였다. 또한 부모 섬김[事親]과 하늘 섬김[事天]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둘 다 절대시하였으며, 오히려 부모 섬김을 통해서만 하늘 섬김을 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49) 이렇게 ‘효의 종교’라 할 만큼 효를 윤리와 종교의 기초로 삼고 중시한 유교에서는 死後의 효도로서 조상 제사를 지성으로 거행해 왔다. 이러한 유교 사상의 바탕 위에서 서교를 받아들여 부모 섬김의 효도와 하느님 섬김의 신앙을 조화시켜 나가던 조선 신자들에게 제사 금령은 부모냐 하느님이냐, 윤리냐 신앙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생사 갈림의 대사건이었다.

이 금령에 대한 조선인의 첫 반응은 윤유일에 의해 제기되었으니, 그는 구베아 주교에게 “조상 제사의 근본 의도는 ‘돌아가신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함’[事死如事生]에 있으니 만약 천주교를 믿으면서는 제사를 지낼 수 없다면 이는 매우 곤란한 일인데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50)하고 안타까움과 함께 대안책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윤유일의 애소는 당시 조선 신자들의 공통된 심정의 대변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주교는, “천주교는 반드시 성실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사람이 죽은 후에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성실의 도에 크게 어긋난다”51)고 대답할 뿐 다른 묘책을 줄 수는 없었으니, 이 금령은 교황 외의 누구도 변경 또는 완화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제사 금령에 따라 전라도 진산에 살던 선비 尹持忠과 그의 외종형 權尙然은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없애버렸다. 그리고 1791년 5월 윤지충의 모친 권씨가 별세하자 그들은 정성으로 장례는 치렀으나, 魂帛이나 신주는 세우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52) 더욱이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천당에 올라 가셨으니 축하할 일이지 조문하여 위로할 바가 아니다”53)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언행은 당시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유자들에게는 물론이요 일반인에게도 전통 사상과 윤리 질서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無父의 悖倫亂常으로 인식되었다. 이 사건은 곧 국가적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천주교는 패륜난상의 사교로 낙인이 찍혀 결국 사교를 금압하기 위한 辛亥敎難을 유발시켰다.

당시 廢祭毁主를 한 교인은 윤지충과 권상연 외에도 柳恒儉, 柳觀儉 형제가 있었으니, 이들은 조상의 신주를 묘지 옆에 파묻었다가 진산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다시 신주를 파서 상자에 넣어 빈 방에 안치해 두었던 것이다.54) 다른 신자들의 폐제 여부에 대해서는 문헌 부족으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대다수가 폐제를 하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몇몇 마음 약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을 뿐 “대다수는 마음과 정신으로 교회의 결정에 복종하여 열심히 실천하기를 계속 하였고 모든 미신 행위를 끊어버렸다”55)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는 상당히 다르다. 1796년 周文謨 신부는 북경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사 금령에 대해 대부분의 신자들과 양반 계층의 예비신자들이 거부하고 떠나갔다”고 하면서 이 금령은 여전히 전교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하였다.56) 또한 그는 1800년 尹持憲에게 제사 거행 여부를 물으면서 그를 몹시 꾸짖었으며,57) 洪文甲의 장인인 洪翼萬은 주 신부와 주야로 담론하고 친분이 두터웠을 뿐 아니라 교회 활동에 열성적이었는데도 폐제를 하지 않았고,58) 南必容의 경우 제사가 허사임을 역설하면서도 매부인 權哲身의 제안에 따라 香火는 폐하지 않았다는 점59) 등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신해교난에 권일신, 이승훈 및 많은 中人 신자들이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으나, 그들의 투옥 이유는 그들 자신이 폐제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일신은 공술에서 천주교에 대해서는 변호하면서도 윤지충과 권상연의 폐제분주에 대해서는 해괴망칙한 짓이라고 하면서 어떤 책에서 그런 것을 읽고 패륜난상의 망령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하고 있다.60) 당시 교주라는 지목을 받을 만큼 천주교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그가 제사 금령을 몰랐을리 만무하니,61)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도리어 그가 제사 금령을 거부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주문모 신부 입국 전에는 대부분의 신자들, 특히 양반 계층은 제사 금령을 따르지 않고 계속 조상 제사를 받들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겠다.

당시 천주교회에서 주장한 폐제 논리는 두 가지로 집약되니, 유교 제사의 핵심인 신령의 흠향과 신주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첫째, 잠자는 사람에게 음식을 차려 주더라도 먹을 수 없듯이 영면한 사람도 제물을 흠향할 수 없고 또한 신령은 무형하기에 유형한 음식을 흠향할 수 없으며 더욱이 사후 영혼은 천당이나 지옥에 일단 가면 아무리 정성껏 제사를 드리더라도 흠향하러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교 제사는 ‘誠實之道’에 어긋나는 허례요, 假飾이라는 것이다. 둘째, 신주는 목수가 제작하여 粉墨을 칠한 나무 조각[木片]에 불과하므로 자손의 골육 ․ 생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더욱이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어느 물건에 依憑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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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 프랑케, 金源模譯, 《東西文化交流史》, 檀大出版社, 1978, 19~20쪽.
ㅍ 6) 이러한 신념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공식으로 선언한 이후 1845년 교황 비오 9세의 담화문 〈Singulari quadam〉에 의해 자기 탓 없이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의 구원 가능성이 인정되기 전까지 지속되어온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J. Neunes S.J. & J. Depuis S.J.(eds.), The Christian Faith in Doctrinal Documents of the Catholic Church, London : Collins, 1983, pp. 20~22, 217, 221~224, 279).
7) 아우구스트 프란츤, 최석우 역, 《교회사》, 분도출판사, 1982, 389쪽 ; Adaptatio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1, Washington D. C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1967, pp. 120~121.
8) 최기복, 〈儒敎와 西學의 思想的葛藤과 相和的理解에 관한 硏究〉, 成均館大學校博士學位論文, 1989, 11~15쪽.
9) 方豪, 《中西交通史》 5, 臺灣 : 華岡出版有限公司, 1977, 122~133쪽.
10) 利瑪竇, 《天主實義》.
11) 利安當, 《釋天主太極之辯》, 《釋天主上帝之辯》, 《釋天主形天之辯》, 《正學金石》(吳相湘編, 《天主敎東傳文獻三篇》 1, 臺灣 : 學生書局, 1972, 103~122쪽).
12) 利瑪竇, 劉俊餘 ,王玉川合譯, 《中國傳敎史》上, 光啓 ․ 輔仁聯合出版社, 1986, 85~86쪽 ; 溫古子, 《儒敎實義》, 《天主敎東傳文獻續篇偏》 3, 1365~1384, 1394~1396 ; Collectanea S.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seu Decreta Instructiones Rescripta pro Apostolicis Missionibus, Vol. 1, No. 126, Roma : Typographia Polyglotta S. C. de Propaganda Fide, 1907, pp. 38~39.
13) Ibid., Vol. 1, pp. 33~35
14) Ibid., pp. 30~35쪽 ; George Minamiki, S.J., The Chinese Rites Controversy, Chicago : Loyola University press, 1985, pp. 25~28
15) G. Minamiki, S.J., op. cit. pp. 29~30 ; Collectanea S. Ibid., Vol. 1, pp. 33~35.
16) “그들(선교지의 민족)의 의식과 관습과 풍속이 신앙과 윤리에 분명하게 위배되지 않는 한, 선교사들은 그것들을 바꾸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권해서 바꾸도록 해도 절대로 안 된다. 프랑스 ․ 이탈리아 ․ 스페인 혹은 다른 유럽 국가를 중국에 옮겨 놓으려고 한다면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겠는가. 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교 신앙만을 전할 것이지 유럽 국가를 이식시키지 말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느 민족의 의식이나 관습을 조금도 나쁘다고 하거나 배척, 또는 침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옹호하고 보호하려 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의 것을, 특히 자기 민족 고유의 것을 다른 나라 것보다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의 관습을 바꾸려는 시도는 반드시 대단한 증오와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관습을 바꾸려고 할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철폐시킨 관습 대신 선교사 고국의 풍속을 대치해 넣으려고 한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들의 습관과 유럽인의 습관을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 오히려 선교사들 자신이 최선을 다해 그들의 풍습을 익히도록 하라. 칭찬할 만한 것은 경탄하고 칭찬해 주어라. 그러나 칭찬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첨적 찬양을 하지도 말며 그렇다고 판단을 내리거나 결코 경솔하고 지나치게 단죄하지도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참으로 어떤 관습이 좋지 못해 도전하는 경우에는 말로써 보다는 자제와 침묵으로써 할 것이며,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되는 때를 기다려서 점차로 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근절하도록 할 것이다”(J. Metzler(ed), Instructio Vicariorum Apostolicorum ad Regna Sinarum, Tonchini et Cocincinae Proficiscent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Memoria Rerum, Vol. 3-2, Germany : Herder, 1976, pp. 702~703). 이 진취적인 토착화 선교정책의 훈령은 제례금령이후 약 250년간 사장되었다가 1936년 일본 신사참배허용 훈령에서 재인용되는데, 교황 비오 11세는 이 훈령을 인용하면서 토착화가 가톨릭교회의 지속적인 기본선교정책이라고 강조하였다(Acta Apostolicae Sedis, Vol. 28, 1936, pp. 406~407).
17) Adaptatio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1, p. 121 ; Stephen Neil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New York : Penguin Books, 1980, pp. 178~182.
18) Decretum S. Congregationis Sancti Officii super Instantia Patris Joannis Polanco Ordinis Praedicatorum Chinae, Bullarium Pontific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1, Roma : Typis Collegii Urbanii, 1859, pp. 174~175.
19) Stephen Neil, op. cit. pp. 189~190 ; John D. Young, Confucianism and Christianty : the First Encounter, Hong Kong : Hong Kong Univ. press, 1983, pp. 117~18.
20) Mandatum seu Decretum Domini Caroli Maigrot Vicarii Apostolici Fokiensis in Regno Sinarum, nunc Episcopi Canonensis, 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omus 21, Augustae Taurinorum : A. Vecco et Sociis Editoribus, 1871, pp. 204~207.
21)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3, p.613 ; G. Minamiki, S.J. op. cit., pp. 40~42 ; K.S.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in China, Taipei : Ch'eng wen Publishing Company, 1973, p. 140. ; S. Couling, The Encyclopedia Sinica, Taipei : Ch'eng wen Publishing Company, 1937, p. 486.
22) 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 Tomus 21, Augustae Taurinorum, A. Vecco et Editoribus Success Sebastiani Franco et Filiorum, 1871, pp. 217~220.
23) 최기복, 앞의 글, 28~29쪽.
24) S. Couling, op. cit., pp. 486~487 ; Columba Cary-Elwes, China and the Cross, New York : P.J. Kenedy & Sons, 1957, pp. 155~156.
25) Ex illa die〉, Bullarum Pontific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I, Roma : Typis Collegii Urbanii, 1859, pp. 305~313. ; 김혜경,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서강대 출판부, 2012, 408~420쪽.
26) S. Couling, op. cit., p. 487.
27) Mezzabarba의 허용안 내용은 교황 베네딕도 14세의 칙서 〈Ex quo singulari〉에 수록되어 있다(Collectanea Constitutionum, Decretorum Indultorum ac Institutionum Sanctae Sedis, Hong Kong : Typis Societatis Missionum ad Exteros, 1898, p. 786) ; 김혜경, 앞의 글, pp. 422~427.
28) 康熙硃筆刪改嘉樂來朝日記, 《康熙與羅馬使節關係文書. 乾隆英使覲見記》, 臺湾 : 學生書局, 1973, 55, 70~71, 75쪽.
29) 〈Ex quo singulari〉, Collectanea Constitutionum, Indultorum ac Institutionum Sanctae Sedis, Hong Kong : Typis Societatis Missionum ad Exteros, 1898, p. 776~791. ; 김혜경, 앞의 글, 401~437.
30) 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 Tomus 21, p. 207.
31) Collectanea S.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seu Decreta Instructiones Rescripta pro Apostolicis Missionibus, Vol. 1, pp. 38.
32) Ibid., p. 34. ; 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 Tomus 21, p. 218 ; Bullarum Pontific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1, pp. 30~307 ; Sanctissimi Domini Nostri Benedicti Papae XⅣ Bullarium, Tomus 1, Venetiis, 1777, p. 172.
33) 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 Tomus 21, p. 218 ; Bullarum Pontific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1, p. 306 ; Sanctissimi Domini Nostri Benedicti Papae XⅣ Bullarium, Tomus 1, pp. 163~168.
34) C. Cary-Elwes, op. cit., pp. 160~161. ; M. Hay, Failure in the Far East, Philadelphia, 1957, pp. 167~169. ; Stephen Neill, op. cit., p. 208 ; 아우구스트 프란츤, 앞의 글, 372쪽.
35) W. 프랑케, 앞의 글, p. 79.
36) 위의 책, 《康熙與羅馬使節關係文書. 乾隆英使覲見記》, 70~71쪽.
37) 〈Ex quo singulari〉, Sanctissimi Domini Nostri Benedicti Papae XⅣ Bullarium, Tomus 1, p. 160 ; 〈Ex illa die〉, Bullarum Pontificium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1, p. 308. ; 김혜경, 앞의 글, 401~402, 413쪽.
38) W. 프랑케, 앞의 글, 81쪽.
39) W. 프랑케, 앞의 글, 81쪽.
40) 최기복, 앞의 글, 48쪽.
41) 天主實義》 ; 馮秉正, 〈異端篇〉, 《盛世蒭蕘》 ; 艾儒略, 《三山論學記》 ; 南懷仁, 〈一欽崇一天主萬有之上〉, 《敎要序論》 ; 배현숙,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 서적〉, 《한국천주교회창설 200주년 기념 한국교회사 논문집》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4~8쪽.
42) 李晩采, 〈草士臣李基慶上疏〉, 《闢衛編》2.
43) 李基慶, 〈刑曹啓辭〉, 《闢衛編》 1, 曙光社, 1978, 127~128쪽 ; 裵賢淑, 앞의 글, 7~8쪽 ; 〈성교절요〉, 《한국가톨릭대사전》, 616쪽. 44) 白多瑪, 〈第一誡〉, 《聖敎切要》.
45)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천주교회사》, 분도출판사, 1979, 328~329쪽.
46)《敎會史硏究誌》 3, 가톨릭대학 교회사연구회, 1970, 127쪽 ; 윤민구 역주, 《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 가톨릭출판사, 2000, 123~124쪽.
47) 샤를르 달레, 앞의 글, 330쪽.
48)〈盡心〉, 《孟子》
49) 최기복, 앞의 글, 131~132
50)〈觀儉供草〉, 《邪學懲義》 2.
51)〈觀儉供草〉, 《邪學懲義》 2.
52)〈全羅道觀察使鄭民始狀啓〉, 《正祖實錄》 33, 15年(辛亥) 11月戊寅條.
53) 李晩采, 〈洪注書上蔡左相書〉, 《闢衛編》 2.
54)〈恒儉供草〉, 《邪學懲義》 2 ; 〈全羅監司金達涥密啓〉, 邪學懲義》 1.
55) 샤를르 달레, 앞의 글, 331쪽.
56)《敎會史硏究誌》 3, 가톨릭대학 교회사연구회, 1970, 137~138쪽 ; 윤민구, 앞의 글, 124쪽.
57)〈尹志憲供草〉, 《邪學懲義》 2.
58)〈洪翼萬供草〉, 《邪學懲義》 1 ; 黃嗣永供案, 《辛酉邪學罪人黃嗣永等推案》 10月 9日
59)〈南必容供草〉, 《邪學懲義》 2.
60)〈刑曹啓〉, 《正祖實錄》 33. 15年(辛亥) 11月 8日條.
61) 샤를르 달레, 앞의 글, 326~329쪽.
62)〈次對〉, 《正祖實錄》 33, 15年 10月 25日丙寅條 ; 〈戌寅條〉, 같은 책, 15年辛亥 11月條 ; 달레, 앞의 글, 347~348, 411쪽 ; 黃嗣永, 《帛書》.
63) 달레, 앞의 글, 347쪽 ; 丁夏祥, 《上宰相書》 ; 최기복, 앞의 글, 76~78쪽.

3. 다산의 천주교 신앙과 폐제 거부

다산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조상제사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대략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신해교난 이전 시기(1762~ 1790)로서 사회개혁 의식을 갖고서 진리를 탐구하다가 천주교를 만나 신앙으로 신봉하고 이 땅에 천주교회를 세우는 데 크게 활약하였다. 제2기는 신해교난에서부터 신유교난까지의 시기(1791~1801)로 천주교회의 제사 금령에 대해 거부하면서 천주교회를 떠나 공적으로 거듭 배교를 선언하였다. 제3기는 유배시기(1801~1818)로 주로 유교 경전 연구와 저술에 심혈을 기울이며 상제례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제4기는 解配 후 말년(1819~1836)으로 천주교에 다시 귀의하여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나 유교식 상제례만은 끝까지 고수하였다.

1) 사회 개혁 의식과 천주교 신봉
다산이 태어난 18세기 후기는 오랜 당쟁과 兩亂으로 인해 피폐된 조선사회를 중흥하려는 일종의 문예부흥기로,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는 실학이 크게 대두되고 중국으로부터 서학서가 유입되어 널리 읽힘으로써 새로운 학문과 사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크게 자극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산은 이미 소년시절 家學에 힘입어 經史의 서적을 섭렵하여 학문적 기초를 닦았으며, 16세부터는 매부 이승훈을 따라 성호 이익의 후손이며 당대의 대학자인 李家煥과 교류하였다. 이들을 통해 성호의 실학사상을 접한 그는 성호의 遺書를 탐독하고는 흔연히 私淑하여 경세치용의 실학에 뜻을 두었다.64) 그런데 그는 당시의 폐쇄적이고도 모방적인 학문풍토와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아래와 같이 토로하였다.

슬프다 이 나라 사람들이여, 주머니 속에 갇힌 듯 궁벽하구나. …성현은 만리 밖 먼데 있으니 그 누가 이 몽매함 해쳐 줄건가. 고개들어 사방을 둘러 보아도 또렷한 정신 가진자 보기 드므네. 남의 것 모방에만 급급해 하니 언제 나의 것 정성으로 연마하리오. 어리석은 무리들이 멍청이 하나 떠받들고 야단스레 모두 함께 추앙케 하네.65)

이 〈述志〉에는 젊은 다산의 사회의식과 주체의식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민족구원의 사명의식도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당시의 현실풍토를 개혁하려는 의지와 함께 우주 안의 모든 도리를 깨닫고 정돈해 보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으며,66) 사변으로 흐른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孔孟의 근본유학으로 돌아가 경전연구에 힘썼다.67) 이 무렵에 그는 서학서를 접하게 되었다고 보이는데, 서학서에 대한 열독은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일종의 유행이었을 뿐만 아니라,68) 그의 형 丁若銓이 이미 1779년 天眞菴走魚寺 강학회에 참석해 서학에 대하여 담론했기 때문이다.69)

그러나 다산이 신앙으로서의 서교를 만나게 되는 것은 1784년(갑진) 4월 큰형수의 제사를 지내고 고향 마제에서 뱃길로 상경하는 도중 배 안에서 曠庵李檗과의 토론을 통해서였다. 다산은 그에게서 天地造化의 시작과 形神生死의 이치를 듣고는 깜짝 놀라고 의심스러워 입경하는 길로 《천주실의》, 《칠극》 등의 서학서 몇 권을 얻어 보고 흔연히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것이다.70) 이렇게 다산에게 있어 천주교 신앙과의 만남은 이벽을 통해 계기가 주어졌고, 아울러 그 자신이 구도자로서 진지하게 진리 탐구를 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그는 이벽의 집에서 열린 종교 집회에 참석하고 세례 받기를 자청하여 1784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자 요한이란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71) 이 시기에 그는 신앙적으로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초기 천주교회의 이론가인 이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조가 《中庸講義》 80조를 태학생들에게 주어 그 답안을 제출토록 하였을 때 그는 경학과 천주교 교리에 박학한 이벽을 찾아가 담론한 후, 작성하였는데 임금이 이를 보고서 극찬하였다.72) 그는 이벽을 존숭하여 “마치 仙鶴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하고 헌연히 風神을 보는 듯하다”73)고 찬탄하였으며, 강진 유배 시(1814년)에는 위의 《중용강의》를 보완 정리하다가, 그를 회상하며 “광암이 살아 있다면 그 진덕과 박학이 어찌 나에게 비하겠는가” 74)하고 탄식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이 땅에 천주교회를 세우는 데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으니, 1785년 金範禹 집에서 이벽이 주도하는 신앙집회에 이승훈, 정약전, 권일신 등과 함께 참례하였다가 적발되기도 하였으며,75) 더구나 이승훈, 권일신 등과 함께 “복음의 전파를 더 쉽게 하고 신입교우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해”76) 소위 假敎階制度를 세우기까지 하였다. 또한 1787년(丁未) 겨울에는 이승훈과 더불어 과거 공부를 핑계삼아 泮宮에서 西敎書를 강습하다가 그 현장이 李基慶에게 목격되었는데, 이기경과 洪樂安이 이 사실을 폭로하고 성토함으로써 이른바 丁未泮會事件이 일어나기도 하였다.77) 한마디로 원대한 포부와 사회의식을 갖고서 진지하게 진리를 탐구하던 끝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다산은 조선 천주교회 초창기의 주요인물로 1791년(辛亥) 전까지는 열심히 천주교를 신봉하고 신앙전파에 힘썼으며, 평소 갖고 있던 현실개혁의지와 민중구원의 염원을 천주교 신앙과 전통 사상과의 조화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78)

이 시기 천주교에 심취하고 좋아했던 자신의 심정과 모습을 다산은 이렇게 말하였다.

서교를 마음에서 흔연히 좋아하고 사모했고 또 일찍이 이를 거론하여 남에게 자랑하였으며, 근원적인 心術에 마치 기름이 스며들고 물이 젖어들며 뿌리가 뻗고 가지가 얽히듯 하였다.79)

2) 廢祭 거부와 천주교 배척
1790년 북경 구베아 주교의 제사금령이 조선에 전달되고, 이로 인해 진산사건과 辛亥敎難이 일어나자, 다산은 폐제 명령에 대해 완강히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고 천주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는 자기가 천주교를 열심히 신봉하고 교회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폐제설이 없었다고 하면서 폐제 명령과 신해교난으로 인해 천주교회를 떠나게 된 경위와 내적 고뇌를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그때에는 廢祭之說이 없었다. 신해년 겨울 이후 국가의 금령이 더욱 엄해지고 천주교와 유교가 서로 다름이 뚜렷해지면서 상호조화를 이룰 수 없음이 마치 등나무와 칡덩굴의 관계와 같이 되고 또한 화환이 닥칠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자 천주교를 신봉하지 않았다. 오호! 골육이 서로 싸워 몸과 영예를 보전할 양이면 차라리 자빠지고 넘어지는 굴욕을 순순히 받더라도 천륜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니 후세에 이 심정을 알아줄 자가 반드시 있으리라.80)

다산은 천주교회의 폐제를 전통사상과 인륜도덕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悖倫亂常으로 판단, 천주교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게 되었으며,81) 이 폐제문제로 인해 신해교난이 일어나자 천주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가 천주교회를 떠나게 된 데는 布衣時節부터 각별하였던 정조의 총애,82) 현실 개혁을 위한 첩경이요 효도의 길인 벼슬에 대한 욕망83) 및 반대파로부터의 박해 위협84) 등이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으나, 근원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패륜난상의 제사금령과 이로 인한 천주교 자체에 대한 회의 및 천주교와 전통사상과의 조화를 통한 사회구원 염원의 좌절에 기인했다고 하겠다.

신해교난 이후 그는 천주교회를 떠나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1795년(乙卯)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인해 北山事件이 일어나자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다. 정조가 그를 금정찰방으로 보낸 의도는 그곳의 역속들 가운데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효유하여 배교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조정의 금령을 잘 설명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권하였다. 이로써 선비들이 그의 悔悟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들과 더불어 날마다 공맹의 학문을 강론하였다.85) 또한 그곳에서 《退溪集》을 얻어 탐독하고 그를 존숭하여 《陶山私淑錄》을 지었다.86)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가 천주교와 무관함을 입증하기 위해 몇몇 천주교인들을 괴롭혔으며, 이존창(李存昌)을 체포하기도 하였다.87) 한편 이 시기에 제사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이에게 조상 제사를 권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고향집에 새해 제수품을 보내 선조께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88)

그 후 내직으로 옮겨 승정원의 同副承旨에 올랐으나 반대파로부터 천주교와의 관련 문제로 계속 비난을 받게 되자, 1797년(丁巳) 〈자명소〉를 올려 서교와 관련을 맺게 된 전말을 자세히 진술하면서 이미 천주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변론하였다. 즉 과거에 서교에 관한 책을 보고 흔연히 열모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젊은 시절 학문적 호기심으로 인한 일시적인 감염에 불과하며, 자기는 天文曆象之學, 農政水利之器 및 測量推驗之法 등의 서양과학을 배우기 원했을 뿐이라고 하면서,89) 천주교 교리의 그릇된 점과 폐제의 패륜난상을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공적으로 배교를 선언하였다.

사학서 중 傷倫悖理의 설은 진실로 다시 헤아릴 것도 못되며 감히 天聽을 더럽힐 수도 없습니다. 廢祭之說은 臣이 전에 보던 글에는 전혀 없던 바로 갈백이 다시 살아나고 승냥이와 수달이 또한 놀랄 지경입니다. 정말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어찌 마음이 찢어지고 뼈가 떨리어 그 悖倫亂常의 싹을 끊어 물리치지 않겠습니까? … 신해년의 변괴가 불행히도 가까운 친척 집안에서 생겼는데 그 때부터 臣은 마음이 아프고 분개하여 원수같이 미워하고 역적과 같이 토죄하기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이미 양심이 회복되고 이성이 맑아져서 지난날에 흠모하던 바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허황하고 괴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 분명히 알게 되어서는 더욱 엄하게 배척하였고 깨우침이 늦어짐에 더욱 심하게 미워하였으니 칠규의 심장을 쪼개어도 진실로 나머지 가리운 것이 없고 구곡간장을 더듬어 보아도 진실로 남은 찌꺼기가 없습니다.90)

이 〈자명소〉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정조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을 정도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91) 여하튼 다산 자신이 스스로 자기의 천주교 신앙에 대해 공적으로 언명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이렇듯 그는 비록 내적으로는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92) 외적으로는 천주교에 대해 배교 선언을 했으며, 2년 후인 1799년(乙未)에도 또 한 차례 〈자명소〉를 내어 배교를 재확인하였다.93)

그 후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純祖가 즉위하자, 僻派인 貞統王后는 천주교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오가작통법을 실시하고 천주교인을 역적의 형벌로 다스리는 등 박해령을 내렸다.94) 이러한 때에　마침 천주교 관계 문서와 성물을 담은 정약종의 冊籠이 적발되자 박해는 가속화되어 다산과 정약전을 위시하여 이승훈, 이가환, 권철신, 洪樂敏 등 南人時派 신자들이 모두 체포되어 문초를 받게 되었다.95) 그런데 다산은 이 문제의 책롱이 자기 집안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 자기는 이미 자명소에서 천명한 바와 같이 천주교와 관련을 완전히 끊었다고 시종일관 주장하였다.96) 그러면서 자기에게는 잘못된 형[病兄]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형제간의 천륜은 무엇보다도 중하므로 형의 잘못을 고발하고 자기 혼자만 결백하다고 할 수 없으니 함께 죽기를 원할 뿐이라고 진술하였다.97) 더욱이 지금의 처지에서 사학도는 자기에게 원수이므로 만일 10일 기한하여 영리한 포교를 딸려 주면 사학 소굴을 소탕하여 체포해 바치겠다고 하면서98) 사학을 소탕할 방약이 있다면 숨김없이 진언하여 국은에 보답하고 가문의 원수를 갚겠다고 진술하였다.99) 이러한 그의 배교 확인은 당시 조정에서도 상당히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고,100) 또한 적발된 책롱의 문서 가운데 “약용에게 알리지 말라”는 신자들의 서찰 내용과 “형제가 함께 천주교를 신봉치 못함은 나의 죄가 아닐 수 없다”는 정약종의 말을 통해 그가 처음에는 천주교를 신봉했으나 나중에는 떠났음이 입증되어 사형을 면하고 長鬐로 유배되었다.101)

그 후 같은 해 10월 黃嗣永의 체포와 더불어 《帛書》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무죄가 입증되어 康津으로 유배되었다. 그런데 그는 공술에서 조카사위인 황사영을 원수라고 칭하면서102) “사학도 가운데 하나가 누락되면 반드시 하나의 사영이 또 생길 것이요, 둘이 누락되면 둘의 사영이 생길 것이니 모두 진멸한 후에야 끝없는 걱정을 놓을 수 있을 것”103) 이라고 진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배 후에도 황사영에 대해서는 늘 ‘逆賊’, ‘逆竪’ 등으로 일컬으면서 흉악한 음모가 하늘까지 뒤덮었다고 비난하였으니,104) 이는 전통사상 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무력을 이용해서라도 전통사상을 천주교 사상으로 대치하려는 황사영의 혁명적 행동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못마땅해 한 소치라 하겠다.

3) 유교 상제례의 연구와 救世 정신
유배 시기 다산의 천주교 신봉 여부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증빙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으므로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달레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1811년 조선 천주교인들이 북경에 밀사를 파견하여 편지를 전하는 일에 다산이 뒤에서 도왔다고 언급하면서, 그가 비록 박해 중에 마음이 약해져서 배교했었으나 진실히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 온 힘을 기울여 천주교 재건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자기 죄를 속죄하기에 힘썼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105)

이 유배 기간은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로서, 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면서 자기 사상을 심화하고 체계화하여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다. 이 시기에 그가 비록 천주교 신앙을 외적으로 고백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천주교 사상은 그의 경전 주해와 사상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큰 영향을 미쳤다.106) 그는 禮書 연구를 무엇보다 중시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았는데, 특히 상제례에 대한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107) 그래서 《祭饌考》, 《祭禮考定》, 《喪禮四箋》, 《喪儀節要》 등의 저술을 집필하였고, 그는 이 상제례서들을 득의의 불후작으로 생각하였다. 《제찬고》에 대해 자평하기를 “예전 사람이 미처 언급하지 못한 바를 밝혔다”108)고 하였고, 《제례고정》에 대해서는 “나의 평생의 뜻”109)이라고 하였다. 그가 이렇게 이 두 책을 중요시한 것은 인륜의 근본이 되는 부모께 대한 繼孝를 강조하기 위함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 당시 민중의 생활을 피폐케 하는 각종 제사와 향연의 사치풍조를 바로 잡고 분수에 맞는 검약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치스런 향연이 天物을 탕진하고 민중을 굶주리게 하는 죄악일 뿐만 아니라 정명과 분수를 범한 僭禮라고 규정하면서 엄중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까지 역설하였다.110) 이 《제례고정》이 수년 전 정조 때 이루어졌다면 임금에게 올려 시행토록 하여 사회적 폐습을 고치게 했으리라고 하면서 늦게 저술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111) 그리고 《상례사전》에 대해서도 “성인을 독신하여 만든 책으로 거센 물결을 돌리고 온 내를 막아 洙泗의 진원[孔孟의 學]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라고 스스로 평하면서 “이 책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그 오묘한 뜻을 아는 자가 있다면 이 몸이 죽든지 살든지 간에 천금을 받지 않더라도 감지덕지하여 받은 바와 다름없으며 이 두 책 《周易四箋》과 《상례사전》만 후세에 전수될 수 있다면 나머지 저서는 없애버려도 괜찮다”고까지 하였다.112) 그리고 자손들에게 자기 저서의 진가를 아는 자가 있으면 그가 연장자인 경우 아버지와 같이 섬기고, 비록 원수라도 형제 결의까지 맺을 수 있다는 가훈을 주기까지 하였다.113)

또한 그는 유배시기에 자손들에게 《諞註廣孝論》을 지어주어 준수토록 하였는데, 그 내용은 효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여 모든 덕의 근본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효를 확산하여 형제간의 悌, 가정의 齊家, 친척과 이웃 간의 화목에까지 미치게 하라는 것이며, 끝으로 제사의 의의와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봉제사를 조금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분부하고 있다.114) 또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 선친의 친구인 南居 어른의 기일에 매년 과일을 보내 제사를 돕도록 명했다.115)

이렇게 그가 유교제례를 중요시하고, 또한 상제례에 관한 많은 저술을 통해 고례에 의거하여 그 본의를 밝히고 시의에 맞게 의식을 쇄신하고자 심혈을 기울인 것은 상제례의 실천을 통해 인효를 심화시켜 인륜도덕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현실사회를 개혁함으로써 夏殷周 삼대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도 포함되어 있었다.116)

4) 천주교에의 복귀와 전통 상제례의 고수
18년간의 유배에서 풀려나온 다산은 귀향하여 조용히 말년을 보냈는데, 이 시기 그의 천주교 신앙생활에 대해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회개하여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여러 신앙 저서를 집필했으며, 마지막에는 劉方濟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고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귀양이 풀려 돌아온 뒤 丁(若鏞) 요한은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모든 교회 본분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1801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입으로 배반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쳐 세상과 떨어져 살며, 거의 언제나 방에 들어 앉아 몇몇 친구들밖에는 만나지 않았다. 그는 자주 대재를 지키고 그 밖에 여러 가지 극기를 행하여 몹시 아픈 쇠사슬로 허리띠를 만들어 띠고 한 번도 그것을 끌러놓지 않았다. 그는 자주 오랫동안 묵상을 하였다. (丁若鏞) 요한은 그의 묵상의 일부를 적어 놓았고 또 외교인들의 미신을 반박하고 신입 교우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여러 가지 다른 서적들을 남겼다. 그의 저서 여러 권이 박해 때에 땅속에 감추어졌다가 벌레에 갉아 먹히고 썩고 하였으나, 많은 저서가 그의 집안에 보존되었다. 완전히 복권이 된 뒤에도 丁(若鏞) 요한은 생활 태도를 조금도 바꾸지 아니하였고, 날로 더해가는 그의 열심은 전에 그가 배교함으로 인하여 나쁜 모범을 보였던 모든 신자들을 기쁘게 하고 감화시켰다. 丁(若鏞) 요한은 1835년 (劉方濟) 파치피코 신부가 조선에 들어 온 뒤 그의 손으로 마지막 성사를 받은 후 세상을 떠났다.117)

더욱이 달레는 다산이 천주교의 조선전래에 관한 手記를 남겼는데, 자기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지금까지 기록한 사실들은 대부분 이 수기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18) 그런데 이 수기는 현재로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달레의 위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다산 자신의 언급이나 기타 국내 문헌이 없기 때문에 그의 천주교 신봉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119) 그러나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와 다블뤼(Daveluy)의 《조선순교자비망기》가 이 수기에 근거하고 있음을 방증할 수 있다고 볼 때,120) 다산은 적어도 유배 후 말년에 천주교인으로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볼 수 있겠다.121) 그러나 비록 그가 열심히 천주교를 신봉하고 외교인의 미신을 반박하며 신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신앙 서적을 저술했다고 하더라도 유교식 상제례만은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는 자손들에게 유언하기를, 사후의 장례일체는 자기가 지은 《상의절요》에 의해 조금도 어김없이 거행하되, 飯含은 하지 말고 七星板도 사용하지 말며, 혼백은 銘旌으로 대치하고, 장례에는 丹旐를 세우고 家園에 안장하되 지관에게 묻지 말라고 하였다.122) 그리고 이 유언을 어김없이 준행하라고 자손들에게 아래와 같이 신신 당부하였다.

천하에 가장 업신여기기 쉬운 것이 죽은 자이니 개천에 던져도 원망할 수 없고 비단에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혀도 사양할 수 없으며 간절한 원의를 어겨도 슬퍼할 수 없고 지극히 싫어하던 바를 행해도 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야박한 자식은 죽은 이를 업신여기고 효자는 슬퍼하는 바이다. 그러니 모든 유언은 반드시 준행하여 조금도 어김이 없도록 하여라. …위에 말한 바를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불효하여 죽은 이를 업신여기는 바이니, 너희들 학연 ․ 학유는 정녕, 정녕 준수토록 하여라.”123)

1836년(丙申) 2월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자손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장례일체를 유훈과 《상의절요》에 의거하여 거행하였다.124) 그가 지은 《상의절요》는 실용적으로 만든 상제례 의식서로, 유교 상제례의 표준서격인 《朱子家禮》나 《四禮便覽》과 비교해 볼 때 일치하지 않는 점도 있으나, 상제례의 목적이나 전체적인 골격 및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다산이 천주교를 신봉하면서도 파문으로 엄하게 금한 천주교회의 제례금령만은 끝까지 거부한 것은 전통적인 성리학을 비판하고 서구의 새로운 사상인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진위를 가리는 지성적 비판 정신과 주체 의식 및 전통사상에 대한 자긍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가 왜 천주교를 신봉하면서도 유교식 조상제사만은 끝까지 고수하였는지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의 효사상과 상제례관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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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65)〈述志二首〉, 《與猶堂全書》.
66)〈贐學游家誡〉, 《與猶堂全書》.
67)〈述志二首〉, 《與猶堂全書》.
68) 李晩采, 〈安順菴天學考〉, 《闢衛編》 1.
69) 先仲氏墓誌銘〉, 《與猶堂全書》.
70) 先仲氏墓誌銘〉, 《與猶堂全書》.
71)〈李承熏供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2月 13日.
72)〈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73)〈友人李德操輓詞〉, 《與猶堂全書》.
74)〈中庸講義補〉, 《與猶堂全書》.
75) 李晩采, 〈乙巳秋曹摘發〉, 《闢衛編》 2.
76) 샤를르 달레, 앞의 글, 322~323쪽.
77) 李晩采, 〈丁未泮會事〉, 《闢衛編》.
78)〈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79)〈辯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80)〈先仲氏墓誌銘〉, 《與猶堂全書》.
81)〈辨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82)〈示學淵家誡〉, 《與猶堂全書》 ; 〈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83)〈爲茶山諸生贈言〉, 《與猶堂全書》; 〈辨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84) 황사영, 《帛書》.
85)〈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86)〈陶山私淑錄〉, 《與猶堂全書》.
87) 샤를르 달레, 앞의 글, 395쪽 ; 〈辨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 〈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88)〈金井日記〉, 《與猶堂全書補遺》 2.
89)〈辨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90)〈辨謗辭同副承旨疏〉, 《與猶堂全書》.
91) 李晩采, 〈同副承旨丁若鏞上疏〉, 《闢衛編》 4.
92) 황사영, 앞의 글.
93)〈辭刑曹參議疏〉, 《與猶堂全書》.
94) 丁亥條, 《純祖實錄》元年正月 10日條.
95) 황사영, 앞의 글.
96)〈丁若鏞供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97)〈丁若鏞供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98)〈丁若鏞供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99)〈丁若鏞供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100)〈議啓〉,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101)〈辛未條〉, 《純祖實錄》元年 2月 25日條.
102)〈丁若鏞推案〉, 《辛酉邪獄罪人李家煥等推案》.
103) 李基慶, 〈玉堂聯名上疏〉, 《闢衛編》 4.
104)〈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 〈先仲氏墓誌銘〉, 《與猶堂全書》
105) 샤를르 달레, 앞의 글, 17~19쪽.
106) 琴章泰, 《東西交涉과 近代韓國思想》,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4, 77~111쪽 ; 朴鍾鴻, 《韓國思想史論攷》, 瑞文堂, 1977, 420~424쪽 ; 李乙浩, 《茶山經學思想硏究》, 乙酉文化社, 1973, 19~20쪽 ; 金玉姬, 《曠庵李檗의 西學思想》, 가톨릭출판사, 1979, 128~159쪽 ; 河宇鳳, 앞의 글, 95~111쪽.
107)〈答二兒〉, 《與猶堂全書》 ; 〈爲盤山丁修七贈言〉, 《與猶堂全書》.
108)〈答仲氏〉, 《與猶堂全書》.
109)〈寄兩兒〉, 《與猶堂全書》.
110)〈答仲氏〉, 《與猶堂全書》.
111)〈寄兩兒〉, 《與猶堂全書》.
112) 〈示二子家誡〉, 《與猶堂全書》.
113)〈示二子家誡〉, 《與猶堂全書》.
114)〈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115)〈寄兩兒〉, 《與猶堂全書》.
116)〈答二兒〉, 《與猶堂全書》 ; 〈答仲氏〉, 《與猶堂全書》.
117) 샤를르 달레, 앞의 책, 중권, 185~186쪽.
118) 샤를르 달레, 앞의 책, 상권, 443쪽.
119) 姜萬吉外, 《丁茶山과 그 時代》, 民音社, 1986, 105~143쪽 ; 김상홍, 《다산학 연구》, 계명문화사, 1990, 32~34쪽 ; 박석무, 〈그의 시대와 사상〉, 《다산학보》 10, 1989, 217~226쪽 ; 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2003, 517쪽.
120) 崔奭佑, 〈Dallet가 引用한 丁若鏞의 《朝鮮福音傳來史》〉, 《李海南華甲紀念會史學論叢》, 一湖閣, 1970, 205~216쪽 ; 崔奭佑, 〈달레 著韓國天主敎會史의 形成課程〉, 《敎會史硏究》 3, 1981, 113~160쪽 ; 崔奭佑, 〈丁若鏞과 天主敎의 관계〉, 《茶山學報》 5, 茶山學硏究院, 1983, 43~70쪽.
121) 필자는 다산이 해배된 후, 특히 自撰墓誌銘 이후 말년에 천주교와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 언급한 기록이 없고 국내 문헌도 없으므로 2차 자료격인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의거하여 다산이 천주교에 복귀했다고 추정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문가들의 자료 발굴과 연구 노력을 기대한다.
122)〈俟庵先生年譜〉, 《丁茶山全書》, 236~239쪽.
123)〈俟庵先生年譜〉, 《丁茶山全書》, 239쪽.
124)〈俟庵先生年譜〉, 《丁茶山全書》, 236쪽 ; 〈俟庵先生年譜〉, 《丁茶山全書》, 240쪽.

4. 다산의 상제례관과 특이성

1) 다산의 근본사상과 효도의 중시
다산은 修身의 근본을 상제의 현존과 직시에 대한 인식, 곧 知天이라고 믿었다. 상제의 현존과 직시를 의식하게 되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삼가게 되나, “상제의 현존과 감시를 믿지 않으면 愼獨할 수 없다”125)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상제의 현존과 직시를 아는 “지천이 신독의 근본”126)이며, 나아가 “수신의 근본”127)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학문의 대병통은 전적으로 그릇된 궁극자관에 있으며,128) 당시 사람들이 성인이 되려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릇된 궁극자관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129) 그러나 요, 순, 주공, 공자 등 先聖들은 바른 궁극자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130) 이러한 판단 아래 位格的, 主宰的 상제관에 입각하여 성리학적 궁극자관을 비판하면서 바른 궁극자관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또한 다산은 인간 선악의 기준이 天命과의 합치 여하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天은 人倫의 성실함 여하에 따라 인간의 선악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德이란 “인륜에 독실함을 일컫는 명칭”131)에 불과하며 仁 역시 “인륜의 成德”13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인륜에 힘씀으로써만 수신도 제대로 할 수 있고, 仁을 행할 수 있고 나아가 ‘천 섬김[事天]’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133)

한편 그는 인간에게는 행해야 할 인간 관계가 많이 있지만 모든 인륜 관계는 근본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孝], 형제간의 우애[悌], 자녀에 대한 자애[慈)로 집약될 수 있다134)고 하였다. 따라서 덕이란 구체적으로 효, 제, 자이며, 135)仁 역시 효, 제, 자의 총명(總名)이라고 보았다.136)

다산은 仁의 총명인 孝, 弟, 慈 삼덕 중 慈는 짐승에게도 있는 생래적 본능으로서 애쓰지 않아도 실천이 가능하므로 효와 제가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의 요체가 된다고 하였다.137) 공맹의 도 역시 오로지 효제뿐이니, 공자는 천하인이 모두 이 효제를 실천함으로써 수신제가뿐만 아니라 나아가 평천하를 하려고 했으며,138) 맹자는 효제를 인, 의, 예, 지, 악의 실체로 삼았다는 것이다.139) 이렇게 볼 때 《大學》의 明明德이란 효제를 밝히는 것이요, 《중용》의 自誠明이란 효제를 성실히 하는 것이요, ‘一以貫之道’인 忠恕는 효제에 충실함이며, 더 나아가 格物致知, 窮理盡性, 事天 등도 효제 실현에 있다고 역설하였다.140)

여기서 제는 효에서 연유하며 효에 포함시킬 수 있으므로 오직 효가 인륜의 근본이요, 인륜의 극치이며, 효를 하면 만선이 종내 이루어지게 된다고 다산은 말하였다.141) 자손들을 위해 ‘立身成家之道’로서 쓴 《編註廣孝論》에서 무엇보다 효를 강조하며 이 효의 실천과 확산을 통해 형제간의 제[悌], 가정의 제가(齊家) 및 친족과 이웃 간의 화목까지도 이루도록 분부하였다. 그 서두에서 曹月川의 말을 인용하여 효는 백행의 근원이요 만선의 으뜸으로 하늘과 땅, 사람과 귀신을 모두 감격시킬 수 있다고 그 중요성을 역설하였다.142) 또한 부모는 나의 생명의 근원일 뿐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키워 주셨기에 사람의 도리로서 마땅히 報本과 報恩을 드려야 한다고 효의 의의를 말하면서 당시의 불효를 개탄했다.

부모가 아니라면 이 몸이 어디서 생명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자식 된 자는 그 부모에게 대해 수고하고 길러주신 은혜를 늘 생각하면서 힘껏 그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해 드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용열한 무리들은 이런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자기 몸이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과 같이 착각하여 부모의 生育劬勞의 은공을 생각지 않고 왕왕 부모를 대수롭지 않게 보며, 그런데도 온 세상이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니 정말 슬픈 일이로다!143)

다산은 생명의 근원인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금수만도 못한 존재로 그 죄는 천지 사이에 용납될 수 없다고 언명하였다.144) 자손들에게 효를 실천하기를 간곡히 분부하면서 그들이 효자만 된다면 자기는 유배지에서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였다.145)

더 나아가 다산은 부모 섬김[事親]을 天 섬김[事天]과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다. 天은 인간의 선악 판단 기준을 인륜에 두고 있으므로146) 인륜에 충실함이 곧 하늘 섬김[事天] 행위가 되는데,147) 부모 섬김은 인륜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이므로 부모 섬김[事親]이 바로 하늘 섬김[事天]인 것이다. 그리고 실천적 次序를 중시한 유교와 같이 다산도 ‘아래로부터 위로’[下學而上達]148)의 상향(上向)의 차서를 중시하여 부모 섬김에서 하늘 섬김으로 나아가야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군자의 학[君子之學]은 부모 섬김[事親]에서 시작하여 하늘 섬김[事天]에서 끝마치게 된다”149)고 단언하였다. 이렇게 볼 때 다산에 있어서는 부모 섬김의 효가 없으면 하늘 섬김의 신앙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천주교회의 제사 금령에서 강조된 부모 섬김을 배제한 하늘 섬김에 대한 반박적 설득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다산의 효사상은 효의 중시나 의의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유교의 효사상과 상통한다. 그러나 효를 실천하는 방법, 즉 효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우선 그는 당시의 윤리규범서격인 《五倫行實圖》에서 열거하는 효의 표본적인 사례들, 예컨대 손가락을 끊어서 피를 수혈하고 자기 살을 베어서 요리를 해드리고 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똥을 맛보는 등의 기행150)은 선진의 성현들은 행하지도 말하지도 않은 것으로 후대에 와서 행하여지고 표창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는 진정한 의미의 효가 아니라 도리어 부모를 빙자하여 자기의 이름을 날리고 이익을 보려는 불순한 행위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151) 그가 효를 중시하고 강조하면서도 빗나간 효행을 이렇게 비난한 것은 선악의 기준을 時中 여부에 두었던 그의 선악관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152) 물론 부자의 관계는 천륜으로 가장 중하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특이하게 효를 할 것이 아니라 천부의 인정에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즐거운 마음과 부드러운 태도로 부모의 뜻을 받들어 행하면 된다는 것이다.153)

그는 구체적으로 효도의 우선 순위를 열거하였는데, 효도의 으뜸은 부모의 뜻을 정성으로 받드는 養志라고 누누이 강조하였고,154) 그 다음으로 중요한 효도는 언행을 신중히 하고 스스로 겸허, 공손함으로써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함이요, 그 다음은 부모께 간할 때는 밝은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의 문안을 드리며 아울러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께 영광을 드리는 것[揚名顯親]이며, 제일 하위의 효도가 의, 식, 주에 불편이 없도록 해드리는 양구체(養口體)라는 것이다.155) 물론 전통적인 효도에서도 양구체를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 하여 제일 초보적인 것으로 보고 부모의 뜻을 받들어 따름을 중요시 하지만,156) 무엇보다도 부모의 遺體인 자신의 몸을 잘 보전함과 ‘揚名顯親’을 효도의 시작과 끝이라고 강조하였다.157) 그러나 다산은 양지를 효도의 으뜸으로 삼고 양명현친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또한 신체보전에 있어서도 육체적인 신체보전을 말하지 않고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명예로운 삶, 즉 정신적 생명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효도관은 실천을 중시한 그의 기본 입장에서 연유하겠으나,158) 자신의 유배와 가문의 몰락 및 당쟁의 와중에서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급박한 시대 상황 등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2) 다산 상제례의 근본 의미와 報本繼孝
유교의 효는 부모 생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후에도 상례와 제례를 통해 더욱 정성으로 실천되며, 특히 제사를 통해 영구히 지속되어 간다. 그래서 ‘追遠報本’의 조상제사는 무엇보다 중요시되며 일종의 종교의례인 것이다. 다산 역시 제사를 중시하여 禮 자체가 제사에서 기원하며, 제사는 禮 중에 제일로 중하고 효도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하였다.159) 그는 程伊川의 말을 인용하여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天이 품부해 준 천성으로 짐승들도 제사를 드리는데 어찌 인간이 금수만도 못하겠느냐고 제사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160) 자손에게 봉제사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분부하였다.161)

다산은 제사의 의의를 報本과 報恩의 정신에서 생시와 같이 지성껏 섬기려는 追養繼孝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제사관은 유교 전통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제사란 자손이 계속 부모를 공양하여 효를 이어가기 위함이요, 자기 생명의 근원을 잊지 않고 생시와 같이 효성을 극진히 함이다.162)

원래 “제사의 禮는 생시 향연의식을 모방한 것으로 생시에는 정성의 향연으로 즐겁게 해드리고 사후에는 제사로써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는 것이니, 효성을 다함으로써 기쁘게 해드린다는 근본 의의에 있어서는 동일하다”163)고 보았다. 이렇게 제사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事死如事生]’ 정성을 다하기 위함이므로, 다산은 제사의식과 절차에 있어서도 생시에 정성껏 음식을 차려 올려 잘 드시도록 옆에서 권하고 시중을 드는 형식과 절차를 그대로 본뜨려고 하였다.164) 또한 尸(또는 尸童)의 의미에 대해서도 신령의 표상이 아니라 생시 식사 때 곁에서 권하고 시중들듯이 정성의 제사를 기쁘게 흠향하도록 돕는 ‘신령의 봉사자[相神]’의 기능이라고 주장하면서, 삼대의 예가 모두 천리와 인륜에 맞지만 尸의 의미를 神像으로 해석한 것만은 잘못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였다.165) 이렇게 다산은 조상제사를 추양계효의 상징적 표현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신주의 의미에 대해서도 신령의 의빙처로서의 기능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지만,166) 주로 신상의 기능으로서 이해하였다. 사람이 죽어 魂과 魄이 이산하면 형용과 음성이 없어 식별할 수 없으므로 입관 후에는 銘旌으로써 그 관을 표상하게 하고 장례 후에는 木主로써 그 廟를 표상하게 하여 그 명정과 목주에다 효성의 奠과 제사를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167) 이렇게 신주는 생자의 마음과 정성을 집중시키고 극진히 하도록 하는 상징적, 표상적인 신상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제사는 자손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므로, 그는 제사에 있어 신령의 흠향 여부는 오로지 자손의 정성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정성의 제사는 비록 밥과 국만 제물로 드려도 신령이 반드시 흠향할 것이요, 不誠의 제사는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려 드릴지라도 흠향치 않는다는 것이다.168) 그래서 제사 전에는 散齋와 致齋를 통해 지성을 다하여 제사 받을 대상과 마음을 합치하며, 제사 때는 신령이 친히 신위에 계신듯이 하고 제물을 흠향하는 소리를 완연히 듣는 듯이 성경을 다해야 하니 이와 같이 지성을 드리면 신령이 흠향할 것이라고 하였다.169) 이렇게 다산은 객관적 신령의 흠향보다는 주체적인 생자의 정성에 관심과 중점을 두었으니, 이는 유교 조상제례의 근본정신과 일치하는 바이다.

이러한 다산 제례관은 당시 천주교회에서 유교 제사의 목적이 신령의 흠향에 있다고 해석하고 금한 논리에 대한 반박이요 깨침의 설득이라 생각된다. 유교에서는 “군자는 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利]에 밝다”170)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근본적으로 행위의 결과보다는 그 동기에 관심과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제사에서도 결과에 해당되는 신령의 흠향보다는 동기가 되는 자손의 효도와 정성에 관심과 비중을 두었는데, 다산도 같은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제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의의는 효도의 연장이요 ‘事死如事生’의 상징적 행위이므로 부모의 뜻을 받드는 양지가 제사보다도 더 중하다고 다산은 생각했다. 그의 자손들에게 “나의 사후에 비록 제물을 정결하고 풍성하게 차려 제사를 지낸다 하더라도 내가 흠향하여 기뻐할 바는 나의 저서 한 편을 읽고 한 장을 베끼는 것만 못하니 너희들은 이 점을 각별히 명심하라”고 가훈으로 분부하였다.171) 물론 이 분부에는 당시의 험난한 시대상황에서 자신의 뜻과 사상을 세상에 전하고 펴보려는 그의 웅지와 염원이 함축되어 있으나, 한편으로는 효도의 한 방법인 제사의례 자체를 절대 신성시하여 의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효와 제례의 근본정신과 효도의 우선순위에 입각해서 계효를 하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이러한 그의 개방적이고도 혁신적인 정신은 제사의식을 쇄신하는 데도 작용하였으니, 근본의의는 더욱 살려나가되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전통을 그대로 묵수하지 않고 현실을 참작하여 時宜에 맞게 개혁하였던 것이다.172)

3) 전통 상제례와의 비교와 상이점

다산이 어떻게 전통 상제례를 쇄신했으며 전통 상제례와의 상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그의 상제례관의 특징적 일면과 아울러 서학적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반함의 폐지
유교 상례에서는 小殮을 하기 전에 치아 사이를 버티어 놓는 楔齒를 해 놓았다가 반함을 행한다. 반함이란 죽은 이의 입에 쌀과 조가비[貝] 또는 珠玉을 가득 채워주는 의식으로, 喪主가 슬픔 중에서도 직접하며 축관이 도와준다. 이 반함의 의미는 죽은 이의 입을 차마 虛하게 하지 못하는 不忍之心의 발로이며, 가공한 밥이나 기타 것으로 하지 않고 復生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쌀과 조개비 또 不變不壞의 활력을 상징하는 주옥을 넣는 것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復生希求의 표현인 것이다.173)

다산은 우선 설치를 배제하였는데, 그 이유는 “설치한 모습이 마치 멍애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보는 눈을 처참하게 하며 또한 반함을 한 후에는 계속 입이 닫혀지지 않아 더욱 무섭고 불안하기 때문”174)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함은 죽은 이의 입을 차마 허하지 못하게 하는 불인지심에서 연유한 것이니 고례의 뜻을 살려 생시에 먹던 것을 본떠서 쌀, 조가비, 주옥 등으로 하며, 동전을 사용하는 것은 크게 非禮가 된다고 하여 배척하였다.175)

자신의 장례를 위한 《상의절요》에서는 이 반함에 대해 굳이 옛날 예속에 매여 묵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단지 상징적으로 구슬[珠] 1개와 쌀[米] 3톨을 입에 넣도록 하였다.176) 그러나 회갑 때(1822년) 남긴 유훈에서는 설치도, 반함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177) 이러한 다산의 자세는 고례라고 무조건 묵수하지 않고 시의에 알맞게 적응하고 또한 민간 신앙적인 성격을 배격하려는 그의 주체적, 진취적 정신의 표현이라 하겠다.

(2) 魂帛의 폐지와 神主로서의 銘旌
유교 상례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魄을 떠난 魂이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함은 살아있는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 혼이 의빙하도록 비단으로 혼백이나 同心結을 만들어 交椅 위에 안치하며, 죽은 이를 식별할 수 있게 그 이름을 붉은 비단에 쓴 銘旌을 관 옆에 세운다.178) 그러나 다산은 혼백이나 동심결은 고례가 아니라 후대의 폐습이므로 폐지하고179) 그 대신 명정으로 대치하여 장례 전 신주의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180) 사람이 죽어 혼백이 갈리면 그 모습과 음성이 영원히 감추어져 식별할 수 없으므로 입관 후에는 명정으로써 그 관을 표상하고 장례 후에는 목주로써 그 묘를 표상하게 된다는 것이다.181)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도 입관 전에는 직접 시신에다 奠을 드리며, 장사 후 虞祭부터는 木主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다.182) 이렇게 다산은 명정과 목주의 의미를 신령의 의빙처가 아니라 생자가 효성을 계속 극진히 하기 위한 상징적 표상인 神像으로 파악했다.

당시 천주교회에서도 신주의 의미에 있어서 신령의 의빙처로서의 의미는 거부하고 死者의 神像으로서의 의미는 인정하였다. 그러나 ‘신위’라는 글자 자체가 이미 신령의 의빙처라는 의미라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3) 尸 변론과 相神 기능
유교 상례에서는 고대에 신주 대신 尸를 세웠는데, 尸란 죽은 이의 형상을 직접 볼 수 없으므로 그 표상으로 세운 어린 아이를 일컬으며 따라서 尸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시동을 세우는 이유는 자손이 부모 사후 정성의 제사를 드림에 있어 부모의 형상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집중되지 않으므로 볼 수 있는 신령의 신상을 세워 정성과 공경을 다하기 위함인 것이다.183) 그래서 “尸를 앉혀서 제물을 들게 하매, 그 제찬이 좀 없어지고 흐트러지면 마치 신령이 친히 배불리 드신 것과 같이 여겨 기뻐하고 또 尸가 취하면 마치 신령이 흡족하게 취하신 것과 같이 생각하여 흔연해 한다”184)는 것이다. 또한 程子와 朱子도 이 尸는 산 자[生者]와 죽은 자[死者]를 연결, 통교시키는 매개체로 산 자[生者]의 기(氣)가 死者와 접하게 한다고 보았다.185) 따라서 시동을 세울 때는 죽은 이와 골육이 같은 손자 중에서 하나를 세우며, 죽은 이가 남자인 경우에는 男尸, 여자인 경우에는 女尸를 세웠다.186) 시동에게는 죽은 이의 상의를 입혔는데, 이는 죽은 이를 잘 연상하고 극진히 섬기기 위한 효심의 발로이다.187) 이 尸는 周代에 女尸가 없어지고, 후대에 男尸 역시 없어지면서 木主로 대치되었다.188)

다산은 尸의 의미에 대해 유교 전통과는 달리 신령의 표상[神像]이 아니라 신령의 흠향을 돕는 상신(相神)이라고 주창하였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만약 尸가 신상이라고 한다면 군주가 신하를 섬기고 부모가 자녀를 섬기는 결과가 초래되며 이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변괴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尸의 유래는 생시 향연에서 음식을 잘 드시도록 맛보고 알려드리고 권하는 시중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생자(生者)와 신령 사이는 묘연하고 막연하여 제사를 드리어도 신령이 흠향하는 바를 알지 못하므로 신령이 평소 극히 아끼고 안아주던 어린 손자로 하여금 옆에서 모시고 시중들도록 함으로써 생시 향연과 같이 흔연히 흠향하시도록 한 相神이라는 것이다. 三代의 예가 모두 天理와 인륜에 맞추어서 제정되었으나 유독 이 尸의 의미를 신상으로 이해한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였다.189)

(4) 后土祭의 배척
유교의 상제례에 의하면 묘지를 파기 전과 하관 전, 그리고 묘제 때에 토지신에게 보우와 안녕을 기원하는 后土祭를 올린다.190) 그러나 다산은 묘지 공사 전과 묘제 시의 후토제를 배척하여 그의 상제례서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며, 하관 후의 후토제는 토지신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 올리는 마지막 奠이라고 보았다.191) 더구나 그는 토지신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정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天神, 地祇, 人鬼에게 三品의 제사를 지내왔으나, 다산은 지기로서 숭봉되는 社稷, 五祀, 五嶽, 山林, 川澤 등은 天이 천신을 통해 관장하도록 한 것이거나 또는 신하로서 그가 분장하던 사업에서 공이 큰 사람을 천신에 배향토록 한 것으로서 천신이거나 인귀이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하였다.192) 이렇게 지기의 독립적 존재성을 부인한 것은 자연물을 신격화하는 자연신론 내지 자연숭배를 배제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천신에 대해서는 상제를 보좌하는 신하로서 지존지대한 상제의 명을 받아 만물을 보우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하면서193) 도리어 성리학에서 귀신을 ‘二氣의 良能’, ‘造化의 迹’, ‘陰陽二氣의 屈伸’194)으로 이해하는데 대해 비난하였다.195) 이렇게 토지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천신을 상제의 신하로서의 위격적 존재로 이해한 것은 천주교의 자연숭배거부와 유일신관 및 천사사상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196)

(5) 卜宅과 卜日의 배격
전통적인 상제례에서는 묘택뿐만 아니라 장례일, 담제일, 四時祭日도 卜筮로 정하였는데 다산은 卜宅과 卜日을 다 반대하였다. 묘지 선정은 풍수지리설에도 구애받지 말고 선영이나 기타 적당한 장소로 할 것이며,197) 장례는 대부와 士인 경우에는 사망일로부터 61일 되는 柔日에 지내고,198) 담제는 대상 후 61일 되는 날에 지내며, 시제는 대부인 경우 춘분과 추분에 지내고,199) 士인 경우에는 추분에 지낸다는 것이다.200) 이렇게 복서로 정하는 것을 배척한 것은 원래 복서의 의의는 천명을 밝히고 따르기 위함인데, 당시인들은 평소에는 天을 섬기지 않다가 다만 장례 시에만 길흉을 물으니 이는 천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또한 복서가 이미 사악한 술수의 으뜸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01)

더구나 지금에 와서는 천을 섬기는 자라도 복서를 할 필요가 없으니 문왕, 주공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복서로써 사리를 분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202) 그래서 그는 《周易》 공부에 10년간이나 전심했으나 한 번도 점을 쳐본 적이 없으며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정에 건의하여 복서를 엄금시키겠다고까지 하였다.203) 이렇게 복택과 복일뿐 아니라 복서 자체를 배척한 것은, 비록 고례라 하더라도 시대변천에 따라 쇄신해야 한다는 그의 창의적 주체의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서학의 합리적인 과학정신 및 천주교의 미신 금지 등도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된다.204)

(6) 제사 절차와 생시 향연의 재현
유교의 조상제사의식은 대체적으로 參禮, 降神, 進饌, 初獻, 祝, 亞獻, 終獻, 侑食, 闔門, 啓門, 獻茶, 受胙, 告利成, 辭神, 餕 등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205) 그런데 다산은 강신에 있어 분향은 비록 고례는 아니더라도 허용하나 모사에 술을 붓는 灌酒는 본래 천자와 제후의 예이기 때문에 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206) 또한 진찬 다음에 초헌을 하지 않고 축과 유식을 먼저 행하는 데 이것은 헌작 전에 축과 유식을 한 고례에 준한 것으로 유식의 의미는 생시에 음식을 집어 드리며 권하는 것과 같이 신령이 흠향하도록 권하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이다.207) 그 다음 삼헌을 하고 물을 드리고서는[進水] 주부가 음식을 또 드리는 薦羞를 하니 이는 고례에 의거하여, 부부가 함께 제사를 지낸다는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다.208) 그러나 합문은 폐지했는데 원래 합문은 미성년자를 위해 尸, 유식, 삼헌 등이 없이 지내는 殤祭에서나 행하는 것이며 薦俎, 유식, 삼헌 등을 다 갖춘 제사에서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09)

이어서 축관이 제주에게 축복의 嘏辭와 함께 祭酒를 주는 受胙를 하고 제례에 직접 관여한 제주, 헌작자, 축관, 집사자 등이 제주를 서로 주고받는 旅酬를 행한다.210) 이 수조, 여수, 餕 등은 자손의 효성스런 제사를 선조가 기쁘게 흠향하고 이에 축복을 준다는 믿음과 염원의 상징적 표현이며, 아울러 신령과의 일치 및 친족 간의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랑의 잔치로서, 생시에 부모가 드시고 남긴 음식을 자녀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모방한 의식이라 하겠다.211)

또한 제계 기간에 있어서는 시제의 경우 주자는 3일 간을 재계로 정하고 있으나,212) 다산은 散齋를 4일, 致齋를 3일로 규정함으로써 생자의 정성을 더욱 강화하였다.213) 제사 장소에 있어서도 주자214)와는 달리 정침이 아니라 고례에 의거하여 사당에서 드리도록 하였다.215)

요컨대 다산이 쇄신한 제례 의식의 특성은 고례에 준하되, 생시에 정성껏 음식을 차려 잘 드시도록 옆에서 권하고 시중을 들며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절차와 방식을 가급적 생생하게 본뜨고 재현하였다는 점이다.216) 전통 제례의식과의 차이점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시제를 중심으로 하여 《朱子家禮》와 비교,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人物儀式		朱子	茶山
		3日	散齋 4日, 致齋 3日
齊戒
		正寢	祠堂
祭祀場所
祭祀節次	開式儀禮	奉主就位, 參神, 降神(焚香, 灌酒)	啓祏, 參神, 陳饌, 焚香
	獻爵	進饌, 初獻, 讀祝, 亞獻, 終獻, 侑食, 闔門, 啓門, 獻茶	讀祝, 侑食, 初獻, 亞獻, 終獻, 進水, 薦羞
	飮福과 辭神	受胙(飮酒, 受飯, 嘏辭), 告利成, 辭神, 納主	受胙(飮酒, 嘏辭), 旅酬(飮福, 受胙, 嘏辭), 告利成, 辭神, 閉祏
	飮福宴	餕(嘏辭)	餕(嘏辭省略)

(7) 祭饌의 五等制와 三代奉祀
전통 제례에 있어서 효성의 상징적 표현인 제찬은 가정의 경제 사정에 따라 분수에 맞게 마련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正名사상에 의거하여 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차릴 수 없고 자기 신분에 해당하는 제찬만 차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창하였다. 즉 제찬에는 大牢, 少牢, 特牲, 特豚, 一鼎 등의 5등급이 있는데, 대뇌는 천자와 제후의 禮요, 소뇌는 대부의 예며, 특생은 士의 예, 특돈 3정은 士의 尊禮, 一鼎은 略式奠이라는 것이다.217) 이 5등급의 제찬은 마치 상복에 5복제가 있어 해당되는 사람만이 服을 입을 수 있듯이 제주의 신분에 따라 엄격히 준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18) 이러한 엄격한 구분은 단지 제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향사례, 혼례, 관례 등의 모든 향연에 적용되며 이것을 어기는 자는 僭禮를 저지른 자이므로 처형해야 한다고까지 역설하였다.219) 이렇게 정명사상에 의거하여 제찬과 모든 향연을 신분에 따라 엄격히 차등화한 것은 당시의 허례적인 사치풍조를 바로잡음으로써 사회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이다.220)

또한 그는 《주자가례》에 의한 四代 봉사를 반대하고 《經國大典》등에 의거해서 삼대 봉사를 주장하였으며,221) 아울러 사시제에 있어서도 천자만이 사시를 다 지내고 제후는 三祭, 대부는 二祭, 사는 一祭 그리고 서민은 제례 없이 薦禮만 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222) 이 외에도 묘제를 고례라 하여 중시한 반면에 당시에 성행하던 속절의 제사는 신령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비판하였다.223)

이렇듯 제례의 의의가 ‘事死如事生’의 추양계효에 있다고 확신한 다산은 효의 정신과 제사의 의의는 영구히 지속시켜 나가되 그 표현방식은 고례에 준하면서도 현실을 참작하여 시의에 맞게 쇄신하려 하였다. 그래서 미신적이거나 시의에 맞지 않는 반함, 혼백, 후토제, 복택, 복일 등을 폐지하고 신주의 의미를 신령의 의빙처가 아니라 신상의 기능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또한 삼대 봉사와 함께 제찬을 신분에 따라 엄격히 구분하여 사치스런 허례 풍조를 방지토록 하였고, 제사의식과 절차 역시 생시 음식접대의 향연 방식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혁신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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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26)〈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27)〈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28)〈春秋考徵〉, 《與猶堂全書》.
129)〈心經密驗〉, 《與猶堂全書》.
130)〈春秋考徵〉, 《與猶堂全書》.
131)〈論語古今註〉, 《與猶堂全書》.
132)〈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33)〈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34)〈大學公議〉, 《與猶堂全書》.
135)〈論語古今註〉, 《與猶堂全書》.
136)〈大學公議〉, 《與猶堂全書》.
137)〈示兩兒〉, 《與猶堂全書》 ; 〈原敎〉, 《與猶堂全書》.
138)〈爲盤山丁修七贈言〉, 《與猶堂全書》.
139)〈原敎〉, 《與猶堂全書》.
140)〈原敎〉, 《與猶堂全書》.
141)〈示兩兒〉, 《與猶堂全書》 ; 〈牧民心書〉, 《與猶堂全書》 ; 〈答李汝弘〉, 《與猶堂全書》.
142)〈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143)〈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144)〈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145)〈寄二兒〉, 《與猶堂全書》.
146)〈中庸自箴〉, 《與猶堂全書》.
147)〈中庸自箴〉, 《與猶堂全書》 ; 〈論語古今註〉, 《與猶堂全書》.
148)〈臺問〉, 《論語》.
149)〈中庸講義補〉, 《與猶堂全書》 ; 〈論語古今註〉, 《與猶堂全書》.
150)〈孝子編〉, 《五倫行實圖》 1.
151)〈孝子論〉, 《與猶堂全書》.
152)〈中庸自筬〉, 《與猶堂全書》.
153)〈孝子論〉, 《與猶堂全書》.
154)〈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 〈論谷出鄕校勸孝文〉, 《與猶堂全書》 ; 〈寄二兒〉, 《與猶堂全書》.
155)〈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156)〈爲政〉, 《論語》 ; 《中庸》.
157)〈開宗明義章〉, 《詩經》.
158) 李乙浩, 〈丁茶山의 孝弟觀〉, 《韓國改新儒學史試論》, 博英社, 1980, 347~348쪽.
159)〈答李汝弘〉, 《與猶堂全書》.
160)〈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161)〈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162)〈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163)〈祭饌考〉, 《與猶堂全書》.
164)〈禮疑問答〉, 《與猶堂全書》 ; 〈尸辨〉, 《與猶堂全書》.
165)〈喪禮四箋〉, 《與猶堂全書》 ; 〈尸辨〉, 《與猶堂全書》.
166)〈喪儀節要〉, 《與猶堂全書》.
167)〈喪禮外編〉, 《與猶堂全書》 ; 〈禮疑問答〉, 《與猶堂全書》.
168)〈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169)〈編註廣孝論〉, 《與猶堂全書補遺》 5 .
170)〈里仁〉, 《論語》 17.
171)〈示二子家誡〉, 《與猶堂全書》.
172)〈祭禮考定〉, 《與猶堂全書》.
173) 최기복, 《유교의 상례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79, 42~43쪽.
174)〈喪儀節要〉, 《與猶堂全書》.
175)〈喪禮外編〉, 《與猶堂全書》.

176)〈喪儀節要〉, 《與猶堂全書》.
177)《俟菴先生年譜》 237쪽.
178) 최기복, 앞의 글, 43~45쪽.
179)〈檀弓箴誤〉, 《與猶堂全書》.
180)〈俟庵先生年譜〉, 《丁茶山全書》.
181)〈喪禮外編〉, 《與猶堂全書》.
182)〈禮疑問答〉, 《與猶堂全書》.
183)〈郊特性〉, 《禮記》 ; 〈士虞禮〉, 《儀禮》 ; 〈曾子問〉, 《禮記》.
184)〈宗廟條〉, 《白虎通》 1.
185)〈虞條〉, 《常變通考》 18.
186)〈曾子問〉, 《禮記》.
187)〈士虞禮〉, 《儀禮》.
188)〈虞註〉, 《家禮源流》 11 ; 최기복, 앞의 글, 71~73쪽.
189)〈尸辯〉, 《與猶堂全書》 ; 〈喪禮四箋〉 , 《與猶堂全書》.
190)〈治葬條〉, 《四禮便覽》 5 ; 〈及墓條〉, 《四禮便覽》 5 ; 〈墓祭條〉, 《四禮便覽》 8.
191)〈喪禮四箋〉, 《與猶堂全書》.
192)〈中庸講義補〉, 《與猶堂全書》.
193)〈中庸講義補〉, 《與猶堂全書》.
194) 朱子集註〉, 《中庸》.
195)〈中庸講義補〉, 《與猶堂全書》.
196) 利瑪賣, 앞의 글 ; 〈羅明堅, 解釋世人冒認天主章, ; 南懷仁, 〈神鬼來歷〉 ; 馮秉正, 〈異端論〉.
197)〈喪儀節要〉, 《與猶堂全書》 ; 〈喪禮四箋〉, 《與猶堂全書》.
198)〈喪儀節要〉, 《與猶堂全書》.
199)〈喪儀節要〉, 《與猶堂全書》.
200)〈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01)〈喪儀節要〉, 《與猶堂全書》.
202)〈答仲氏書〉, 《與猶堂全書》.
203)〈答仲氏書〉, 《與猶堂全書》.
204) 利瑪賣, 《辯學遺牘》 ; 羅明堅, 〈解釋第一面碑文章〉 ; 南懷仁, 〈一欽崇一天主萬有之上〉.
205)〈四時祭〉, 《四禮便覽》 8.
206)〈祭禮考定〉, 《與猶堂全書》 ; 〈喪儀節要〉, 《與猶堂全書》.
207)〈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08)〈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09)〈喪儀節要〉, 《與猶堂全書》.
210)〈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11)〈尸辨〉, 《與猶堂全書》.
212) 朱熹, 〈四時祭〉, 《家禮》 7.
213)〈祭儀考〉, 《與猶堂全書》.
214) 朱熹, 〈四時祭〉, 《家禮》 7.
215)〈祭儀考〉, 《與猶堂全書》.
216)〈禮疑問答〉, 《與猶堂全書》.
217)〈祭饌考〉, 《與猶堂全書》.
218)〈祭饌考〉, 《與猶堂全書》.
219)〈答仲氏〉, 《與猶堂全書》.
220)〈答仲氏〉, 《與猶堂全書》 ; 〈奇兩兒〉, 《與猶堂全書》 ; 〈答二兒〉, 《與猶堂全書》 ; 〈祭饌考〉, 《與猶堂全書》.
221)〈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22)〈祭禮考定〉, 《與猶堂全書》.
223)〈祭禮考定〉, 《與猶堂全書》.

5. 20세기 천주교회의 유교제례 공인과 다산 상제례관의 재조명

1) 20세기 천주교회의 토착화 선교정책과 유교상제례의 공인
18세기 교황청의 중국의례 금령과 청조의 천주교 금압으로 인해 생기를 잃고 지하에서 명맥을 유지해가던 중국 가톨릭교회는 19세기 중엽 서양 열강의 식민주의적 침략에 편승하여 포교의 자유와 활력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중국의 문호개방은 제국주의 세력의 상업적, 정치적 압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이루어졌다. 중국은 영국의 부도덕한 야욕에 의해 발발한 아편전쟁(1840~1842)에서 굴욕적으로 패배한 이후 계속되는 서구 열강들의 무력적 강압에 못 이겨 南京조약(1842), 望廈조약(1844), 黃浦조약(1844), 天津조약(1856) 등 소위 불평등조약들을 연속적으로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들은 열강에는 특혜와 특권을 주었으나 중국에는 불이익과 치욕을 안겨주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반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224)

이러한 서구 열강의 집요한 착취와 잠식은 反西洋, 反西敎 의식을 심화시켰으며 중국인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고 이민족인 청나라에 대한 분노를 증대시켰다. 마침내 서양에 대한 반감과 청나라에 대한 분노는 1911년 辛亥革命으로 폭발하여 청조를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수립케 하였다. 또한 1919년의 5, 4운동은 제국주의에 대한 항거와 함께 민족주의 의식을 더욱 고취시켰으며, 신문화운동을 전개토록 하였다.225)

한편 서구 열강들은 19세기 말엽부터 아시아에서 민족주의의 저항을 받으면서 점차 세력이 위축,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추이에 치명적 타격을 준 것이 바로 자신들의 야욕적 이해관계에서 야기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다. 이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손실과 사상자는 엄청나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합친 전체 사상자 수는 약 3,750만 명에 달하였다.226) 경제적으로도 유럽의 우위에 일대 타격을 가하였으니, 막대한 전쟁비용의 소모는 국가의 재정과 자원을 고갈시켜 상대적으로 비유럽국가들의 산업 발달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227) 국제 무대에서도 유럽의 위력과 역할은 약화되어, 세계 문제를 유럽국가들만이 처리하고 해결하려던 시기는 지나갔다. 더욱이 국제 연합의 창설과 민족자결주의의 고취는 약소국가들의 발언권과 위상을 높여주었다.228)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세속적인 권력과 특전을 상실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산을 거의 몰수당했으며 교회의 기능과 역할도 제한을 받게 되었다. 교황청 또한 이탈리아 왕국에 영토를 빼앗기고 ‘바티칸의 포로’ 신세가 되었다.229) 또한 세속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 등 반종교적 사상의 대두와 팽배로 인해 유럽인들은 반교회적 분위기에 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이가 교회를 이탈하게 되었다.230) 더욱이 러시아의 공산 혁명과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은 신앙의 이탈을 부채질하였다.

이러한 세계정세의 변화와 세속권력의 상실은 유럽교회와 교황청으로 하여금 복음과 유럽문화, 보편적 그리스도교와 유럽화 된 그리스도교를 구분토록 하였고, 선교지의 문화와 사상에 대해 열린 마음과 긍적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에는 당시 역사학, 종교학, 인류학 등의 학문적 발전도 영향을 미쳤으니, 이런 분야의 학문에서는 비그리스도교 민족의 문화, 종교, 사상을 공평하게 이해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민족자결의 외침이 세계적으로 고조되던 1919년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회칙 〈Maximum illud〉를 발표하여 선교지에서의 방인사제양성과 교계제도의 토착화를 역설하였다. 회칙에서 교황은 가톨릭 신앙이 전래된 지 수세기가 되었는데도 방인사제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방인 사제가 있더라도 서양 선교사들의 보조역과 같은 낮은 직책만을 맡고 있는 현실을 통탄해 하면서 방인 사제의 양성에 힘쓰고 방인 주교가 나오도록 준비할 것을 촉구하였다.231) 이러한 토착화 정책은 후계자인 비오 11세에 의해 계승 발전되고 구체화되었다. 그는 1926년 회칙 〈Rerum Ecclesiae〉를 통해 방인 사제양성과 교계제도의 토착화를 재강조하면서 선교사들에게 비신자들의 귀의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선교지의 고유한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며, 가톨릭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다양하게 토착화하라고 촉구하였다.232) 이러한 토착화 정책은 선교에 활력을 주고 큰 성과를 거두게 하여, 비오 11세를 ‘선교의 교황’이라고 일컫게 하였다.233)

이러한 시대 흐름의 변화 안에서, 약 2세기 동안 엄격히 금지되어 오던 동양 제례가 다시 문제화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첫 도전은 1932년 일본의 팽창주의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에서 강력히 제기되었다. 이 신생 만주국은 국민의 단결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공자숭배를 국민에게 의무화했으며, 이로 인해 천주교인들은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황한 교회당국은 공자숭배의 성격을 정부에 질의 했는데, 만주국 정부는 이 의식이 종교적이 아니라 단순히 사회적, 국가적 예식일 뿐이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토착화 정책을 선교의 기본방향으로 지향하고 있던 교황 비오 11세는 1935년 공자 공경의식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만주 주교단의 건의를 받아들여 장례시 죽은 자에 대한 사회적 경의 표시로서의 절도 허용하였다.234)

한편 이 시기 일본에서는 신사참배 문제가 대두되었다. 군국주의의 일본정부는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민적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의무화하였다. 이에 교회당국은 신사참배의 의의와 성격에 대해 일본 정부에 질의를 하였고, 정부는 이 의식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표현하는 국민적 예식이라고 답변하였다. 교황청은 정부의 해명을 근거로 하여 1936년 신사참배를 허용하면서 선교사들은 조국에 대한 국민의 충성과 사랑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야 하며, 신자들이 일반 국민들에 못지않은 애국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고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장례, 결혼식, 기타 사적 의식에 있어서도 비록 그 의식들이 본래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에 와서는 단순히 우의와 예의를 표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면 참례할 수 있다고 허락하였다. 아울러 특히 주목할 점은 근 3백 년간이나 사장되어 오던 1659년의 포교성성 훈령을 인용하면서 토착화가 교회의 일관된 기본 선교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235)

더욱이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 12월 8일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공자 공경의식을 전면적으로 허용하였고, 조상제사에 대해서는 전면적 허용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관용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즉 “시체와 죽은 이의 像 또는 단순히 이름이 기록된 위패 앞에 머리를 숙임과 기타 민간적 예모를 표시함이 가하고 타당한 일이다”236)고 하면서 중국의례에 대한 선교사들의 서약 규정을 폐기하였다. 그러나 “교황 베네딕도 14세의 규정 중 중국의례에 관한 쟁논을 금한 것과 기타 최근의 규정으로써 변경되지 않은 다른 것은 그대로 효력을 가진다”237)는 것이다.

교황청이 이러한 관용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이유는 “비록 전에는 外敎 의식에 관련되어 있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들의 풍습과 정신이 변하여 현재에 와서는 한갓 조상에게 효성을, 국가에 사랑을, 동포에게 예모를 표시함에 불과한 민간적 예식이 되었기 때문”238)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동양 문화에 대한 교황청의 시각의 변화와 선교 정책의 변화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239) 왜냐하면 조상 제사와 공자 숭배의식의 근본정신과 의식 절차는 금령 시나 관용 시나 별로 변함이 없으며, 또 중국의례 논쟁이 한창 치열하던 당시 강희제는 국민의 대표자로서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례는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국민적 의식이라고 유권해석을 명백히 했는데도 교황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클레멘스 11세의 칙서 〈Ex illa die〉에서는 “죽은 이에게 드리는 의식이 종교적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국민적 의례이며 죽은 이에게 무엇을 기원하거나 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표명한다고 하더라도 허용될 수 없다”240)고 하면서 분명하게 조상 제사를 금하였기 때문이다.

이 제례문제에 대해 보다 명확한 방향제시와 지침을 주기 위해 포교성성은 1941년 2월 28일 〈Mens〉라는 지침서를 중국 주재 교황사절에게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허용되는 의식과 금지되는 의식의 목록 작성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이니, 이는 과거에 벌였던 논쟁을 다른 형태로 재연시킬 수 있는 사례토론(discussiones casuisticae)에 빠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필요하다면 교구장들은 일반적인 원칙과 규범을 줄 수 있으나, 우리는 현재 변혁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너무 세부 사항까지는 규정하지 말 것이며, 사제들과 선의의 평신자들에게도 특수한 경우 자기 양심에 따라 처신할 수 있도록 맡겨 두어야 할 것이다. 의문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고백소임을 명심할 것이며, 또한 교리시간에 교황청으로부터 내려진 원칙과 허용사항들에 대해 알려 줄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알려 주어야 함을 잊지 말 것이다.241)

이 지침서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변혁의 시기에 살고 있음을 중시하면서 세부사항까지 규정함을 금하고, 대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면은 사제와 평신도들의 양심 판단에 맡겼다는 사실이다.

한편 한국 주교단은 1958년 《한국천주교 공용지도서》에서 상례와 제례에 관한 보다 상세한 지침을 정하였는데, 허용 사항으로는 시체나 무덤, 죽은 이의 사진이나 이름만 적힌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음식을 진설 하는 행위 등이며, 금지 예식은 제사에 있어서의 축문과 합문, 장례에 있어서의 皐復, 사자밥, 반함 등이다. 그리고 위패는 신위라는 글자 없이 다만 이름만 써서 모시는 경우에는 허용이 된다고 하였다.242)

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토착화가 교회의 근본 자세임을 재천명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를 본받아 전통 문화를 보호 육성하며 문화를 복음화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243)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인 현대의 복음선교 (〈Evangelii Nuntiandi〉, 1975)에서 과거에는 미신으로 단죄하던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그 장점을 인정하였으며, 적절히 선도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된다면 가치 있고 풍부한 결과를 낼 것이라고 언명하였다.244)

2)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 방침과 유교제례의 전례적 수용
한국천주교회는 창립 200주년(1984)을 맞아 대내적으로는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의 복음화를 이룩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고자 한국 교회사상 처음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목회의를 개최하였다(1980~1984). 이 사목회의의 특별 주안점은 한국 민족문화의 고유한 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 수용하고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토착화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적극 추진함으로써 민족문화 창달과 인간다운 삶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하며, 200년 교회사를 회고하면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터득하고 민족 복음화라는 목표를 위하여 미래 지향적인 선교대책을 수립함에 있었다.245) 복음의 토착화가 무엇보다 중시되고 강조되었는데, 구체적으로 동양의 종교전통을 존중하는 자세로 배우고 그리스도교적 안목에서 평가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전례의 토착화, 영성의 토착화, 신학의 토착화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를 위하여 사목회의에서는 먼저 조상제사 문제에 관하여 한국 신자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평신도들은 대체로 유교적 조상제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많은 이들이 조상제사를 실천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전통 상제례 의식을 현대에 맞게 그리스도화한 상제례 의식을 만들 필요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현대적이고도 한국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상제례 의식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안하였다.

운명을 하면 복(復)을 하지 않고 사자밥도 놓지 않으며, 혼백 대신 고인의 사진을 모신다. …입관은 원칙적으로 운명한 후 24시간이 경과된 후에 할 것이며, 시신을 정성껏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되 반함은 하지 않는다.246)

제례 전에 목욕 재계하고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십자가를 걸고 그 밑에 사진을 모시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정성의 표시로 꽃이나 음식을 진설할 수 있다. 고인의 神像인 신주나 지방은 사진으로 대치하고, 유식은 묵념으로 하며 축은 생시에 직접 말씀드리듯이 고인에게 간절한 사모와 효성의 마음을 표하는 위령문으로 함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사 형식을 따라 조상 제사를 지내야 하는 가정에서는 지방을 모시고 축을 읽는 것도 허용됨이 요망된다.247)

그리스도교적 제례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기도, 성경봉독, 가장의 말씀, 위령문 낭독, 묵념, 분향 배례, 일치의 식사(음복) 등으로 구성됨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예식을 통해 생명의 뿌리를 재인식함으로써 부모와 대부모인 하느님께 더욱 효성을 드리며 그리스도 신비체의 신비와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부모와의 일치와 유대를 느끼며 부모의 유지를 더욱 성실히 따르며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도모하기를 권하고 있다.248)

이러한 사목회의의 제안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95년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서 다음과 같이 상제례에 관한 지침을 확정, 발표하였다.

한국 주교회의는 전통 상제례의 정신을 존중한다. 사목자들은 사랑과 슬픔의 정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동시에 참석자들이 삶과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249)

제사의 근본 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에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 전통 제례의 아름다운 정신은 복음의 빛으로 재조명하여 계속 살려나가되, 한국 주교회의는 그 표현양식을 시대에 맞게 개선한다.250)

한마디로 전통 상제례의 근본정신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미 있고 아름다운 정신이므로 계속 살려나가야 하며, 그 표현 양식은 시대에 맞게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목지침서의 특성은 과거 1958년도의 《한국천주교 공용 지도서》와는 달리, 상제례 의식과 관련해 금지되는 의식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방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방향인 토착화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변혁의 현대 사회에서 구체적인 표현 양식은 빠른 속도로 계속 변하고 있음을 감안한 조치라 하겠다.

3) 다산 상제례관의 재평가
다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16년 先仲氏墓誌銘에서 천주교회의 제사금령과 진산사건과 관련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호! 골육이 서로 싸워 몸과 영예를 보전할 양이면 차라리 자빠지고 넘어지는 굴욕을 순순히 받더라도 천륜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니 후세에 이 심정을 알아줄 자가 반드시 있으리라”251)고 하였다. 또한 1822년 회갑을 맞아 자신이 묻힐 묘지를 정하고, 자신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한 〈自撰墓誌銘〉에서는 “밝게 상제를 섬기니 마침내 경사로움이 있으리라”252)고 끝을 맺는데, 이때 自號를 ‘俟菴’이라 짓는다. 그리고 1836년 후세에 자신을 알아 줄 사람이 나오고 자신을 알아 줄 시대가 오기를 고대하면서 ‘기다림의 암자[俟菴]’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다산에 대한 국가적 평가는 종교 신앙의 자유 조치가 취해진 후(1882)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1882년 高宗은 다산의 저술을 전부 필사하여 궁중에 갖추어 두게 하고 열람하였으며, 다산이 그 시대에 함께 있지 못함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1910년 純宗은 다산이 문장과 경제에 탁월함을 인정해 ‘文度公’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헌대부 규장각 提學을 추증하였다.253)

다산 상제례에 대한 천주교회의 재조명과 평가는 다산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유교 상제례 전체와 관련하여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39년 교황청은 중국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유교 상제례에 대해 관용적 조치를 취하였다. 더욱이 1941년에는 〈Mens〉를 통해 허용되는 의식과 금지되는 의식의 목록을 절대 작성하지 말며, 일반적인 원칙은 줄 수 있으나 변혁의 시대임을 감안하여 세부 사항에 있어서는 일선 사제들과 신자들이 양심의 판단에 따라 처신하도록 맡겨두라고 지시하였다.

한국천주교회는 1984년에 창립 200주년을 맞아 민족 복음화와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목표로 개최된 ‘사목회의’(1980~1984)에서 유교식 상제례에 대한 재조명과 전례적 수용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 결과 유교식 상제례의 근본정신은 효도에 있으므로 현대에도 계속 살려나가야 함을 천명하고, 구체적인 사안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 시의에 맞게 적용시켜 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을 바탕으로 하여 1995년 한국 주교회의는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서 전통 상제례의 정신을 존중하여 계속 살려나가되 그 표현 양식은 시대에 맞게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언명하였다.254)

한국주교회의 산하 전례위원회에서는 전통 제례를 현대에 맞게 그리스도교화한 《상장예식》을 만들어 사용토록 하고, 가톨릭적 제사 예식을 3가지 시안으로 제정하여 사용토록 하고 있는데, 이 예식에는 문제가 되었던 전통 신주 내지 지방도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사용토록 하고 있다. 현재 천주교회의 입장에서는 유교적 상제례 중 특별히 금하는 바가 없으니, 그렇다면 서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다산의 상제례는 전혀 문제되는 바가 없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유교의 상제례 내지 다산의 상제례 자체는 18세기 천주교회가 금할 때나 20세기 허용할 때나 큰 틀에 있어서 변함이 없다. 다만 천주교회의 선교정책과 시각이 변했을 뿐이며 이에 따라 상반된 영욕을 겪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사 문제로 순교하거나 배교한 신자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순교자들은 인간적으로 안타까움은 있으나 순교자라는 명예를 받게 되었으니 차치하더라도, ‘배교자’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와 복권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한국천주교회 일각에서는 2천년 대희년을 맞으면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 가톨릭교회의 대표적 잘못, 즉 십자군 전쟁, 교회분열, 종교재판 등에 대해 과오 인정과 공개 고백을 하였듯이, 이 ‘조상제사 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과오 인정과 함께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교회 창립 주역들의 복권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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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최기복, 〈교황청의 선교정책과 동양제례의 영욕〉, 《가톨릭 사상 연구》 4, 대구 가톨릭대학 가톨릭 사상 연구소, 1991, 167쪽.
225) 최기복, 앞의 글, 170쪽.
226) Felix Gilbert, The End of European Era, 1890 to the Present, New York, W.W. Norton & Company Inc, 1970, p. 129.
227) Ibid., pp. 134~136.
228) Ibid., pp. 131~133, 136~141.
229) 캐니스 래토레트, 윤두혁 역, 《基督敎史》下, 생명의 말씀사, 1983, 202쪽.
230) 캐니스 래토레트, 윤두혁 역, 앞의 글, 193쪽.
231) Acta Apostolicae Sedis, Vol. 11(1919) No. 13, pp. 440~445.
232) Ibid., Vol. 18(1926) No. 3, pp. 65~83.
233) 김용자, 〈교황 비오 11세와 동양선교정책〉,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한국교회사 논문집》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216~218쪽.
234) G. Minamiki. S.J., op. cit., pp. 159~181 ; J. Metzler(ed), Ad Excellentiam Augustum Gaspais, Vicarium Apostolicum de Kirin, Sa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Memoria Rerum, Vol. 3-2, Germany : Herder, 1976, pp. 786~788.
235) Acta Apostolicae Sedis, Vol. 28(1936), pp. 406~409 ; G. Minamiki, op. cit., pp. 121~158.
236) Acta Apostolicae Sedis, Vol. 32(1940), p. 25.
237) Ibid., pp. 25~26.
238) Ibid., p. 24.
239)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3. p. 615.
240) Bullarium Pontificium Ascrae Congregationis de Propaganda Fide, Tomus 1, p. 306.
241) Mens, S. C. De Propaganda Fide quod Instructionem super Ritus Sinenes die 8. Decembris 1939 datam, Collectanea Commissionis Synodalis in Sinis 14, Peking, 1941, p. 562.
242)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 1958, pp. 221~227.
243)《선교교령》 8, 10, 15, 16항 ; 《전례헌장》 37장.
244)《현대의 복음선교》 48항,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77.
245) 심상태 편, 《한국교회선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해설집》, 한국 그리스도사상 연구소, 1994, pp. 17~18.
246) 앞의 글, 132쪽.
247) 앞의 글, 134~135쪽.
248) 앞의 글, 137쪽.
249)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57쪽.
250) 앞의 글, 58~59쪽.
251)〈先仲氏墓誌銘〉, 《與猶堂全書》.
252)〈自撰墓誌銘〉, 《與猶堂全書》.
253) 금장태,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297쪽 ; 박석무, 앞의 글, 542쪽.
254)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57~59쪽.
255) 심상태, 〈순교의 교의 신학적 고찰-한국교회의 박해와 순교의 새로운 이해〉, 《순교 심포지엄 2012》 3,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2012, 50~54쪽.

6. 맺음말

천주교는 다산의 75년 생애와 방대한 저술 및 사상 전반에 걸쳐, 자신이나 타인의 인정이나 부인에 상관없이 불가분의 상호관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핵심인자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그는 서교 때문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18년간을 귀양살이로 보냈고, 반평생을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았으며, 가문은 사회적으로 폐족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서교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사상적으로는 마치 헤겔의 정, 반, 합의 역사발전 법칙과도 같이 전통사상의 재조명과 새로운 해석을 통해 기존의 성리학적 사상체계와 사회 체제를 깨고 한 차원 높게 도약함으로써 한국 근세 사상의 집대성자, 더 나아가 세계적인 실천적 사상가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영욕의 인생길을 가게 한 대전환적 사건이 바로 천주교회 제사금령과 진산사건이다. 그는 이 제사금령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였으며, 천주교에 대해서도 거듭 배교를 선언한다. 이로 인해 그는 천주교회 측에서는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파의 질시와 모함 속에서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학문 연구와 방대한 저술을 통해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유교 상제례에 대한 당시 천주교회의 해석과 금지 조치가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끝까지 처신하였다. 그에게 유교 상제례는 인간 윤리 도덕과 하느님 섬김[事天]의 바탕이 되는 효도의 실천적 표현이며, 백성을 구하고 사회를 개혁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가결의 신성의례였던 것이다. 그는 부모 섬김[事親]의 효도를 뿌리로 하여 위로는 하느님 섬김[事天]으로, 옆으로는 형제 사랑[弟]과 백성 섬김[事人]으로 꽃피워야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유배 중에는 상제례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고 많은 저술을 냈으며, 귀향 후 말년에 천주교를 신봉하는 가운데에도 이 상제례만은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는 유교식 상제례에 의해 치루라고 유훈으로 엄하게 당부하였으며,자손들도 그 유훈대로 상제례를 거행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천주교 신자가 유교식 상제례를 거행하면 자동 파문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산이 전통 상제례를 묵수하지는 않았다. ‘事死如事生’의 追養繼孝라는 근본정신은 살리면서도 그 표현 양식은 현실을 참작하여 時宜에 맞게 쇄신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신적이거나 시의에 맞지 않는 반함, 혼백, 후토제, 복택, 복일 등을 폐지하고 신주의 의미를 의빙처가 아니라 신상으로 해석하였으며 제사의 절차와 의식도 생시 향연을 본떠서 재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제례 쇄신에는 서학의 과학정신과 천주교의 사상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다산의 이러한 자세는, “성인의 도는 구애받지 않고 막히지 않고 의로움에 따른다”는 공맹의 진리 추구 정신에 입각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라는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 천주교회의 명령에 불순명하고 거부하였으나, 교회의 창설자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는 충실히 따른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다산은 사회적 통념이나 기존의 틀에 얽매이거나 구애받지 않고 양심의 眞僞 판단에 입각해서 산 ‘無碍人’, 즉 ‘rule breaker’였다고 생각한다. 마치 원효대사가 파계 후 俗服을 입고서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며 “아무데도 매이지 않는 사람이 생사를 초탈한다(一切無碍人一道出生死)”는 무애가를 읊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가 기존 질서의 상징인 성리학을 비판하고 선진 공맹사상을 새롭게 재조명한 것이나, 천주교회의 제사 금령을 거부하면서 유교식 상제례를 끝까지 고수한 것은 모두 선악의 기준인 천명에 입각한 ‘무애행(無碍行, rule break)’이었던 것이다. 이 무애행의 대표적 인물을 불교계에서 원효라고 한다면, 유교계에서는 다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무애행은 내적으로 위격적 하느님의 현존과 직시를 의식함[知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의 임재와 직시를 의식하게 되면 누구나 두려워하여 신독하게 되므로 하느님 현존의식[知天]이 ‘신독의 근본’이요 ‘수신의 근본’이라고 그는 역설하였다. 그런데 하느님은 선악의 판단 기준을 ‘인륜의 충실함’ 여하에 두고 있으므로, 천명에 입각한 이 무애행은 자연스레 부모에 대한 효도[事親], 형제에 대한 사랑[弟], 백성에 대한 섬김[事人, 慈]으로 발현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효제를 중시하였고, 백성을 향한 민중애에 남달랐다. 당시 썩은 사회현실과 백성의 도탄을 직시하고 신음 소리를 듣고서 백성을 구하고 사회를 개혁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의 한평생 걱정은 백성이니, 백성이 편안하게 된다면 자신이 벌을 받아 고통 중에 살아도 좋겠다고 백성을 위한 대속의 마음, 慈父적 사랑을 토로하였다. 누구보다도 강한 백성 사랑과 사회개혁 의식이 그를 민족적 사표, 세계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유교 조상제사 문제에 대한 천주교회의 대응과 선교정책을 역사적으로 볼 때, 제사 금령을 거부하고 조상 제사를 끝까지 고수한 다산은 2백년 앞을 내다보고 처신한 선각자요, 선견자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18세기 금지 때나 20세기 허용 때나 조상 제사의 근본의미와 기본틀에는 별 변화가 없고 다만 천주교회의 선교정책과 해석의 시각에 큰 변화가 있었을 뿐이며 더욱이 현대에 와서 한국천주교회는 조상제사의 근본정신을 계승하고, 전례적으로도 수용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산은 당시 서세동점의 시대를 살면서 서학과 서교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여 전통사상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사상체계를 탄생시킨 ‘自强不息’의 사상가였다. 마치 누애가 여러 종류의 뽕잎을 다양하게 섭취하고 깊은 잠을 통해 전혀 새로운 비단실을 생산해내듯이, 다산 역시 서양 사상인 서학과 서교, 전통사상인 유교, 불교, 도가, 또한 당시의 고증학, 실학 등 다양한 사상을 섭취하고서 궁극자 하느님[天]에 뿌리박은 주체 정신 안에서 깊은 사색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상체계, 곧 다산학을 창출해냈던 것이다.

이러한 다산의 깊은 뿌리 의식과 개방적 창의성은 21세기 변혁의 시대에서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접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되며, 아울러 깊은 영성적 사색과 고뇌와 연구의 산물인 다산학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현대의 철학, 신학 등 학문 세계에도 넓은 조망과 함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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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孟子要義〉, 《與猶堂全書》.
257)〈마태오 복음〉 5, 37.
258) 최기복, 〈다산의 사생구원관〉, 《다산사상 속의 서학적 지평》,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원, 2004, 297~298쪽.
259)〈經世遺表引〉, 《與猶堂全書》 ; 〈滯寺六月三日値雨〉, 《與猶堂全書》.

주제어 : 중국 의례 논쟁, 조상제사, 추양계효(追養繼孝), 무애인(無碍人, rule breaker), 진산사건
투고일 : 2012. 11. 30 심사 시작일 : 2012. 12. 4 심사 완료일 : 201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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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猶堂全書》
利瑪竇, 《天主實義》
利安當, 《正學金石》
馮秉正, 《盛世蒭蕘》
艾儒略, 《三山論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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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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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邪學罪人黃嗣永等推案》
黃嗣永, 《帛書》
丁夏祥, 《上宰相書》
《與猶堂全書補遺》
《丁茶山全書》
《五倫行實圖》

ABSTRACT

The Catholic Church’s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and Dasan’s Confucian Funeral Rites

Choi, Ki-Bok
Chair Professor, Hanyang University

This thesis historically reflects upon the views held by the Catholic Church regarding the culture of its destination and how their perspective shaped their missionary policies when tasked with missionary work in the Orient during the 17th to 20th centuries. The thesis further touches upon how Dasan Jeong Yak-yong,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challenged the Catholic Church’s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and also upon the reasons for his way of challenging the prohibition. Finally, the thesis attempts to reevaluate Dasan in reference to the ancestral rites issue from a modern perspective.

This thesis is consisted of 4 parts.
The first part historically reflects upon the disputes of missionaries in China during the 17th century regarding Chinese rituals and Vatican’s conflicting decision to it, the Vatican’s triumphalistic missionary policies and the Church’s prohibition of Confucian rituals. It also discusses how the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when transferred to Choson, influenced the Catholics and also how they responded to the prohibition.

The second part discusses in four phases how Dasan, who was an avid supporter of Catholicism, challenged the prohibition. The first phase refers to the period from 1762 to 1790 before the prohibition was relayed to Choson where Dasan, while looking for the truth with social reform in mind, first encountered Western philosophy. His contribution remains significant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atholic Church in Choson. The second phase refers to the period from the Sinhae Persecution to the Sinyu Persecution (1791 to 1801) when the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was implemented in Choson. During this phase, Dasan rejected the Catholic Church’s prohibition and left the Catholic Church, publically renouncing Catholicism. The third phase refers to Dasan’s exile (1801 to 1818) when he focused on studies of Confucian passages and writings, leaving behind many works on funeral rites while seeking to realize social reform through the reform of funeral rites. The fourth phase is the years after his exile(1819 to 1836) during which Dasan is known to have returned to Catholicism and led an exemplary pious life. However, he insisted upon Confucian funeral rites and strictly requested a funeral based on Confucian rites through his will.

The third part of the thesis attempts to understand why Dasan rejected the Catholic Church’s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and insisted upon Confucian funeral rites by reflecting upon his fundamental philosophy and his views on filial piety and funeral rites.

The fourth part is a modern reevaluation of Dasan’s philosophy on funeral rites by reflecting upon the Vatican’s 20th century indigenized missionary policies, the consequent acceptance of Confucian ancestral rites, the Korean Catholic Church’s indigenization policies and the ritual acceptance of ancestral rites.

The conclusion gathered from this theory can be summarized into five elements.
To begin with, it is that Catholicism has greatly influenced Dasan’s life of 75 years, his writings and his thoughts regardless of his or anyone else’s acceptance or rejection of the religion. Dasan has had to spend his most important 18 years in exile due to Western teachings while during half of his lifetime he has had to endure threats to his life. His family in the meantime was deprived of its social position. On the other hand, due to the influence of Western teachings, he has been able to transcend the Neo-Confucian academia and the existing social order, leaping onto a higher dimension of understanding and became the focal point for modern Korean philosophy and a leading practical thinker.

Secondly, Dasan believed that the then Catholic Church’s decision to prohibit ancestral rites is unjust and maintained his conscience and integrity on this matter until the very end. For him, Confucian ancestral rite is a practical expression of filial piety, believing it to be the basis for human ethics and the worship of God. Dasan believed that it played a sacred and essential role in the salvation of the people and in the reformation of society. Dasan was confident that filial piety, the worship of parents, was the root that sustained the stem of the worship of God with brotherly love and servitude of the people expressed sideways through leaves.

Thirdly, Dasan intended to reform Confucian funeral rites based on the preservation of the fundamental spirit of chu-yang-gae-hyo, but adapting its method of expression to modern circumstances. He aimed to abolish superstitious or anachronistic concepts such as banham (the practice of filling a dead person’s mouth with rice and jewels), honbaek, hutojae, boktaek, bok-il and interpret sinju as a shinsang not a eui-bing-cho (resting place for the soul) and base the rites’ rituals and proceedings on festivities when the person was alive. These reforms to funeral rites have been influenced also by Western scientific mind and Catholic philosophy.

Fourth, Dasan did not confine himself to existing social conventions or rules. He was a rule breaker who lived his life based on decisions from a truthful conscience. His criticism of Neo-Confucianism, the symbol of existing order, and his shedding of new light on the leading theory of Confucianism, his rejection of Catholic Church’s prohibition of ancestral rites and his insistence of Confucian funeral rites are all “rule breaking” based on God’s intent, the basis for determining good and evil.

Lastly, if one considers the Catholic Church’s attitude and response towards Confucian ancestor rituals, Dasan, who had rejected the prohibition and insisted on maintaining them, was a pioneer ahead of his time by two hundred years. This is substantiated by the fact that between 18th and 20th century when ancestor rituals were prohibited and allowed subsequently, the inherent implication of ancestor rituals remained fundamentally unchanged. The only change was the Catholic Church’s missionary policies and their interpretation. In fact, the contemporary Korean Catholic Church seeks to revitalize the fundamental spirit of ancestor rituals by attempting to fully accept it in modern times.

Keywords : Dispute on Chinese rituals, ancestral rites, chu-yang-gae hyo, rule breaker, Chinsan Incident

토 론 문 1, 2

토론문 1 - 박석무 /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토론자는 1984년 봄에 간행된 무크지 《한국사회연구》 제2집에 실었던 글, 丁若鏞, 그의 시대와 사상에서 다산 정약용은 젊은 시절 서양사상에 관심을 지니고 서학(西學)을 연구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이벽(李檗)을 통해 얻어 본 《천주실의》(天主實義) 등을 읽고 천주교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 그런 결과 23세, 24세, 25세 무렵 천주교의 교인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1791년 ‘진산사건’ 즉 신해옥사가 발생한 뒤부터는 두 가지 이유, 즉 천주교 교리에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과 나라의 국법으로 천주교를 사교(邪敎)라고 비난하며 금지령을 내린 ‘국금(國禁)’의 이유 때문에 천주교에서 손을 떼고 오히려 비난하고 매도했을 뿐, 그 이후에 천주교에 다시 귀의했다는 일체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 글에서 토론자는 그 글을 쓰기 위해 1983년 늦가을 이른바 한국 천주교 발상지라는 천진암을 답사하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이벽성조와 천진암》(변기영 신부 저)이라는 책자를 구매하여 읽어보고, 그 책에서 주장하는 해배 후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귀의에 대해서도 자료와 증거에 입각하여 그런 주장이 옳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주장하여 ‘신해옥사’ 이후 다산은 “끝내 천주교에서 마음을 끊었다[遂絶意]”는 자신의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던 바가 있다. 그런 주장에 이어, 1985년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에서 간행한 토론자가 편역한 《다산산문선》의 해제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는 주장을 펴면서 다산이 해배 후 생을 마칠 때까지 독실하게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주장에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 책은 다산의 자찬묘지명 ‧ 선중씨묘지명 ‧ 녹암권철신묘지명 ‧ 정헌이가환묘지명 등 다산과 천주교문제를 분명하게 알아낼 수 있는 자료로서 국내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된 책이었기에, 그 해제에서는 다산과 천주교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은 토론자뿐만 아니라 많은 다산 연구자가 대체로 그렇게 믿고 있는 일이다. 특히 학계의 원로이신 벽사 이우성 교수를 비롯한 국학자들이 그러하고, 김상홍 교수 같은 학자는 온갖 증빙자료까지 제시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와 손을 끊은 이후, 다시 천주교에 귀의할 수 없었고, 귀의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하였다(《다산문학의 재조명》, 다산의 천주교 관계, 2003). 이렇게 일반학계에서는 크게 문제로 여기지 않는 다산과 천주교 문제는 유독 천주교 쪽의 일부 연구자들이 샤를르 달레의 저서 《한국천주교회사》(안응렬 ‧ 최석우 역주, 분도출판사, 1979)라는 자료에 의해서 다산이 유배 말년부터 해배 후나 생을 마칠 때까지 천주교에 다시 귀의하여 종부성사를 하고 운명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최기복 신부의 발표논문에서도 큰 차이 없이 《한국천주교회사》의 내용에 의거하여 다산은 천주교에 귀의하여 독실한 신자로 생을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표자는 깊고 넓은 연구와 오랜 독공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옳고 바른 논리를 전개하여 천주교회의 유교제례 금령의 시말에 대하여 명확한 논거를 제시하였으며, 다산의 상제례관에 대하여도 깊은 연구를 통해 분명한 결론을 도출하여 다산의 상제례관이 그의 효제(孝弟) 중시 논리와 일치하고 있다는 매우 탁월한 주장을 폈기에 토론자도 이 논문을 통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산이 폐제(廢祭)를 거부하고 오히려 방대한 분량의 상제례에 관한 고경(古經)연구에 그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까지 자세히 분석해낸 작업도 매우 훌륭한 업적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다만,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의존하여 다른 어떤 자료나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해배 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귀의하여 생을 마쳤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은 분명히 다시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이벽성조와 천진암》의 저자 변기영 신부도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천주교회사》의 논증에 따라 다산의 해배 후 천주교 귀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변 신부는 그 책에서 매우 정확한 주장을 새롭게 편 바가 있다. “달래의 저서와 정다산의 저서와의 차이는 정다산의 기록을 달레의 기록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산이 관직 생활과 문필활동을 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기록을 소상히 남긴 국내의 학자인 동시에 자신이 들어 있는 사건을 직접 기술한 사건이고, 달레의 저서는 우선 달레 자신이 한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데다가 남들이 수집해서 보내준 자료를 정리해서 출판한 것이니, 비록 자료 전달과 편집 및 인쇄과정에서 착오가 없다 치더라도 자료수집자가 그 당시 정다산보다 더 정확하고 신빙할 만한 사람이었으리라고 보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10쪽)”는 대목이 눈에 띈다.

또 “제3자의 손을 거쳐 외국인들의 손으로 번역된 기록과 번역되지 않은 원본 기록이 상이할 때는 원본 기록에 더 신빙성을 두어야 할 것이다. …(32쪽)”라고 한 부분도 너무나 옳은 주장이다. 더구나 달레의 저서 《한국천주교회사》에는 다산이 기록한 전기 등을 보고 저술했다는 명시가 있으며(《한국천주교회사》上, 309쪽), 달레가 사용한 ‘조선전기’란 다름 아닌 다산의 저작 이가환묘지명이라고 밝히고 있는 점을 보면, 어떤 이유로 달레는 다산이 해배 후 천주교에 귀의하여 독실하게 천주교 신봉자가 되었다는 것인지를 밝혀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발표자의 글은 모든 부분이 토론자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고 있으니 다른 질문은 없고, 오직 해배 후의 천주교 귀의 문제를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다. 가장 신빙성 있는 다산의 기록은 믿지 않고 외국의 기록인 《한국천주교회사》에 의존한다면 명확한 논증이라고는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토론문 2 - 한형조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1. 독후

300매가 넘는 장문의 글에, 가톨릭의 중국전교, 선교 교파들의 갈등, 그리고 전례 문제에 관한 교황청의 칙령, 그리고 조선의 가톨릭교회와 다산 정약용의 믿음과 배교를 둘러싼 정황을 정말 잘 정리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2. 한 가지 생각난 것
“1742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의 칙서 〈Ex quo singulari〉를 조선 신자들은 잘 모르고 있었을까?”―“1789년경에는 조상 제사에 관련된 금지 규정이 있음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으리라 본다(*《聖敎切要》 십계명 중 제1계명 : 천주 외의 다른 신(神) 제례 + 장례와 조상제사에 관련된 조항들).

금장태 교수님은 자명소의 얘기가 미심쩍다고 하셨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복의 《천학문답》에서 한 일화를 보더라도 “제사, 미신”에 대한 금제를 잘 알고 있었을 것(*그럼에도 그것이 ‘근본적’인 제약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몇 가지, ‘질의’를 드리고,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3. 이의
최 신부님은 다산이 해배 후에, 가톨릭으로 “다시 귀의하여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셨다.

최 신부님은 다산이 교황청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1)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상제사를 폐하지 않았다고 확인하셨다.

*의견 : 이 거부는 가톨릭 교도로서의 혹 ‘결격 사유’는 아닌가. 그럼 조선의 가톨릭 교도들은 왜 굳이 焚主廢祭를 하여, 융합의 싹을 자르고,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왔는가. 왜 그들은 “다산처럼!!” 교회가 아니라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더 충실하려 하지 않았는가?”

2) 그럼에도 다산은 자신의 喪禮를 통해 미신적 요소들을 상당히 제거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다산의 상제례 쇄신에는 서학의 과학정신과 천주교의 사상도 작용했다고 부연하셨다.

*의견 : 그런가. 그의 喪禮에 대한 몰두는 1791년 이후의 금정찰방 시절 이후의 노력처럼, 자신이 ‘천주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아닐까. 그리고 상제례 혁신은 古禮를 향한 다산의 집념의 소산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고례에 대한 강조는 아래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에서 처럼 ‘三代’에 대한 회고적 향수이고, 당대의 俗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3) 신부님은 다산의 ‘비가톨릭적’ 요소를 ‘제사’ 하나에 귀속시키고 계시다.

*의견 : 아니 그렇지 않고, 다산이 가톨릭과 엇갈리는 지점은 보다 광범위하며, 그 ‘일탈’은 가톨릭 ‘교리’의 허용 범위를 훌쩍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자면, 그의 經學을 깊이 읽어야 하고, 그가 자명소에서 고백하듯 “중국의 선구적 비판자들(전겸익, 담원춘, 고염무, 장정옥)의 저작들을 탐구해야 한다.

而良心旣復, 見理自明, 前日之所嘗欣慕者, 反而思之, 無非謊虛怪誕, 離奇辨博之文, 不過稗家小品之支流餘裔也. 外此則逆天慢神, 罪不容誅, 故中國文人, 如錢謙益、譚元春、顧炎武、張廷玉之徒, 早已燭其虛僞, 劈其頭䐉. 而蒙然不知, 枉受迷惑, 莫非幼年孤陋寡聞之致, 撫躬慙忿, 何嗟及矣?

“양심이 돌아오고, 이치가 분명해지고 나니 전일 欣慕했던 책들이 … 대체로 謊虛怪誕하고, 離奇辨博한 글들로, 稗家小品의 支流餘裔입니다. 그 밖의 것은 ‘하늘을 거역하고 신을 모독하는(逆天慢神)’ 것으로 죽음으로도 그 죄를 속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인 가운데 전겸익, 담원춘, 고염무, 장정옥의 무리들이 일찌감치 그 ‘거짓과 기만(虛僞)’을 밝히고, 그 ‘두뇌(핵심)’를 짜개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몽매 무지해서, 그 미혹에 휘둘렸으니 유년의 고루하고 과문했던 소치라 자신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끌어안고 탄식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비판은 아마도, 안정복이 《天學問答》에서 전개한 것과 ‘상당히’ 겹칠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점에서 정통 주자학 위에 선 안정복과, 유교 혁신가 다산이 “만난다!” 요컨대 다산의 좌표는 서학보다 유학에 더, 훨씬 가깝다!!).

4) 최 신부님은 달레의 기록에 따라 ‘다산이 해배 후 가톨릭에 다시 귀의하여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쓰고 있다.

*의견 : 이곳은 늘, 쭉 논란이 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1) 달레의 기록은 전언에 의한 것, 文獻不足徵이라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2) 다산 자신의 “기록”을 읽어야 한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억울하게 가톨릭의 누명을 썼고…” 그 잣대로, “남이 나를 재단하는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그 ‘두려움’이 절절하다. 自撰墓誌銘 두 편,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의 묘지명을 “비장본”으로 쓴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산의 말, ‘그것’을 섬세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읽어야 한다. ‘작은’ 지점 몇 군데를 짚어보고자 한다.

5) 천진암 주어사 강학의 성격은 무엇인가

다산의 기록을 보자. “西學에 대해서 담론?”

先妣夢得三男. 故小字曰三雄. 幼而不羈. 長而桀驁. 游乎京輩. 博聞尙志. 與李潤夏, 李承薰, 金源星等. 定爲石交. 以承受星翁之學. 李先生瀷沿乎武夷. 溯乎洙泗. 揖讓講磨. 相與進德修業. 旣又執贄請敎於鹿菴之門. 權哲身嘗於冬月. 寓居走魚寺講學. 會者金源星, 權相學, 李寵億等數人. 鹿菴自授規程. 令晨起掬氷泉盥漱. 誦夙夜箴. 日出誦敬齋箴. 正午誦四勿箴. 日入誦西銘. 莊嚴恪恭. 不失規度. 當此時. 李承薰亦淬礪自強. 就西郊行鄕射禮. 沈浟爲賓. 會者百餘人. 咸曰三代儀文. 桀然復明. 而聞風嚮義者蔚然以衆.

지금 강학멤버들은 성호 이익의 “주자를 거쳐 공맹으로”의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있다. 揖讓講磨, 相與進德修業의 교재들은 ‘주자학의 정통 교재들’이고, 구체적으로 퇴계의 《聖學十圖》이다!! 새벽 숙야잠은 제10도이고, 아침 경재잠은 제9도이고, 해질녁의 西銘은 제2도이다. 정오의 四勿箴은 퇴계가 평생 품고 산 《心經》 속에 들어있다. 鄕射禮 등 고례의 의식을 보고… “(하은주) 三代의 컬처가 다시 빛났다”고 감탄했다. 이 모임이 가톨릭이었나? 가톨릭의 주제들은 논의되었을 수도 있고, 또 후대의 비방이 여기 쏠렸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산의 기록”은 그 ‘성격’과 ‘진행’이 “주자학의 강학”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6) 선중씨묘지명의 “附見閒話條” 2개에 대해

최 신부님은 “(다산이) 폐제 명령과 신해교난으로 인해 천주교회를 떠나게 된 경위와 내적 고뇌를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라고 하며 선중씨묘지명을 인용한다.

“그때에는 廢祭之說이 없었다. 신해년 겨울 이후 국가의 금령이 더욱 엄해지고 천주교와 유교가 서로 다름이 뚜렷해지면서 상호조화를 이룰 수 없음이 마치 등나무와 칡덩굴의 관계와 같이 되고 *또한 화환이 닥칠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자 천주교를 신봉하지 않았다. 오호! 골육이 서로 싸워 몸과 영예를 보전할 양이면 차라리 자빠지고 넘어지는 굴욕을 순순히 받더라도 天倫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니 후세에 이 심정을 알아줄 자가 반드시 있으리라.”

이 구절을 신부님은 … “다산이 (가톨릭 신앙에 독실했지만) 폐제하라는 명령을 차마 받들 수 없어서 … (제사를 지내) 天倫을 지키고자 한다”라는 뜻으로 읽은 듯하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先仲氏墓誌銘의 원문은 이렇다.

附見閒話條
昔在戊戌冬. 家君宰和順縣. 余與巽菴。讀書東林寺. 四旬了孟子一部. 微言妙義. 多所印可. 氷泉漱齒. 雪屋無寐. 每語有堯舜君民之志. 壬寅秋. 余兄弟與尹某. 栖奉恩寺. 習經義之科. 旬有五日而反. 厥明年春. 伯仲季俱入格于監試. 而會試余獨爲之. 及秋巽菴居首於監試. 因又高參於會試. 榮還于洌上. 睦佐郞萬中, 吳校理大益, 尹掌令弼秉, 李校理鼎運. 咸與同舟. 游衍之盛. 爲衆所豔.
甲辰四月之望. 旣祭丘嫂之忌. 余兄弟與李德操. 同舟順流. 舟中聞天地造化之始. 形神生死之理. 惝怳驚疑. 若河漢之無極. 入京又從德操見實義七克等數卷. 始欣然傾嚮. 而此時無廢祭之說. 自辛亥冬以後. 邦禁益嚴. 而畦畛遂別. 唯其綰結之難理也. 如藤如葛. 明知禍患之來. 而亦莫之爲矣. 嗚呼. 與其骨肉相殘. 以保其身名. 曷若順受顚覆. 而無愧乎天倫. 後世必有知其心者矣.

이 구절의 주인공이 당연히 ‘형 정약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톨릭과의 인연에 대해 쓰고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784년, 큰 형수 제사를 마치고, 同舟順流, 돌아오는 길에 광암 이벽으로부터 “창세의 처음(天地造化之始)과, 영혼과 육신,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치(形神生死之理)에 대해 … 은하수처럼 펼치는(若河漢之無極), 놀랍고 의아한(惝怳驚疑) 이야기를 듣고, 서울에 돌아와서 이벽을 통해 《天主實義》와 《七克》 등의 책을 읽고, 본격적으로(始) 기쁘게 경도된다.”

여기까지는 별 이견이 없다. 다음 구절이 약간 까다롭다. 내 번역은 이렇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廢祭之說이 없었다. 신해 겨울 이후, 금령이 엄해졌고, 길은 서로 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것을 정리할 수 없었다. …*화환이 닥쳐올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다. 오호, 골육을 상잔하여 몸과 이름을 보신하느니 … 차라리 전복을 그대로 받아들여 천륜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고자 했다. 후세는 반드시 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뒷문장의 키는 “골육상잔”이 쥐고 있다. 분명히 이 구절은 “형제간, 부자간”을 가리킨다. 앞에 나온 ‘약전과 이벽’ 사이는 좀 멀다. 주체는 숨어 있지만 ‘약전과 약종’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신유년 공초에서 약용은 “위로는 군부를 속이지 못하고, 아래로는 형을 증거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이 구절은 약전이 (그리고 약용 또한) 약종을 고발하고 증거하여 자신의 몸(身)과 이름(名)을 보전하기보다, 다가오는 화란(顚覆)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다는 보고, 혹은 변명(apology)이다. 그것이 “天倫을 지켰다”는 뜻의 함축이다. 요컨대 이 기록의 주체는 다산이 아닌 형 약전이고, 내용 또한 “(*조상의) 제사를 지킬 것이냐 여부가 아니라, (*동생) 약종을 유교로 다시 돌아오게 ‘강압’하거나, ‘발고,’ ‘증거’할 것이냐의 선택을 두고 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4. 의견 : 다산과 서학 사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논평 10매를 너무 넘기고 있으므로, 간략하게 ‘다산과 가톨릭’에 대해 내 의견을 적어두고자 한다.

다산에게 있어, 가톨릭의 ‘영향’은 깊다. 요한이라는 세례명까지 받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톨릭을 버렸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무엇’이 그를 이끌었고, 가톨릭의 ‘무엇’이 그를 돌아서게 했는지를 갈라 보아야 한다.

1) 가톨릭으로 이끌게 한 것이 주자학을 비판하게 만들었고,

(*이때 漢譯西學西들은 다산의 주자학 비판에 주요한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주자학 비판의 논리가 오직 서학에서 왔다는 것은 지나치다. 예로 일본 유학의 이토오 진사이[伊藤仁齋]는 독자적 논리로 주자학의 理氣의 형이상학과 心性論的 프레임을 논파해 나갔다. 그 논리는 다산의 논법과 거의 흡사하다!”)

2)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 그를 전통의 유학으로 이끌었다.

(*이 라인에서 보면 다산-주자학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고 이 지대는 예상보다 넓고 크다. 다산이 여전히 보수적이며, 중세로부터 원천 탈피하지 못했다는 의견들도 많다.)

그 ‘변증’을 통해 개척한 ‘사이 길’, 그 ‘제3의 길’이 다산학의 좌표이다.

여기서는 다산이 “왜, 그리고 어디서…” 가톨릭과 결별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KBS 다큐 프로그램의 제목이 “다산은 왜 신을 버렸는가?”였는데, 이 제목은 매우 적절치 않다. → “다산은 신을 버린 적이 없다!!!”

*공유 : 보유론적 지평 - 儒門別泒, 文垣奇賞

〈사랑〉
*성경,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에게 행하라.” 1) 기소불욕, 물시어인. 기욕립이달인 … 평생 지녀할 할 지침 - 恕
*카리타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퇴계 《聖學十圖》 제7 仁說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理卽仁!

〈장애 & 극복〉
- 《七克》
- 退溪, 《西銘考證講義》: 頑者不仁之名不仁之人私欲蔽錮不知通物我推惻隱心頑如石故謂之頑蓋橫渠此銘反覆推明吾與天地萬物其理本一之故狀出仁體因以破有我之私廓無我之公使其頑然如石之心融化洞徹物我無間一毫私意無所容於其間可以見天地爲一家中國爲一人痒痾疾痛眞切吾身而仁道得矣故名之曰訂頑

*갈래길 : 而畦畛遂別. 唯其綰結之難理也. 如藤如葛

- 역시 촉발은 廢祭!! 〈자명소〉 참고.

다산의 초월적 인격신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톨릭의 신학을 “謊虛怪誕, 逆天慢神”이라 했을까.

1) 신과 인간의 관계
- 논증이 아닌 직각으로 그 존재를 안다
- 신은 질투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신
- 타자와의 관계와 행동만 볼 뿐, 신 자신을 위해 드릴 예배는 없다

*다산에게 있어, ‘신을 향한 예배(事天)’는 그러므로 신 ‘그 자신’을 경배하는 데 있지 않고, 가족과 친구, 이웃과 사회를 향한 동정(仁)과 책임(義)을 다하는 데 있다. “신은 백성을 통해서 보고 듣는다(太誓曰,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此之謂也).”

*제사 문제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제사는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보응이고, 이것은 유교의 핵심 원리인 ‘恕의 최초의 실천’이다. 그런데 가톨릭이 ‘신의 이름’으로 이것을 막는다? 교황청이 권위를 갖고 … 다산은 신의 명령이 … 《성경》이나, 교황청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의 다이몬 같은, 독립적 양심, 즉 ‘道心의 喉舌’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결별의 지점이다. …(*최 신부님도 다산이 교황청의 명령에 반해 자신의 독자적 양심으로 제사를 폐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고 계시다).

- 대속은 없고, 각자 자신과의 죄와 대면한다(구원자 예수의 부재)
- ‘계시 없는 하느님’(성태용)

2) 도그마와 제도화된 종교의 부재
- 사제 계급과 교회의 부재

“이 점에서 다산은 ‘종교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믿고 있으되, 그 구현의 공간은 ‘평범한 개인’이, ‘일상적 공간’에서 감당하는 것이기에, 그에게는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사제였고, 모든 공간이 교회였던 셈이다. 그는 계급으로서의 사제를 말한 바 없고, 구원의 중심으로서의 보편 교회(가톨릭)를 따로 세운 바 없다.”
#자료1 : 자찬묘지명(무덤본, 壙中本)
〈자찬묘지명〉은 그야말로 ‘죽어’ 무덤을 지킬 글이다. 그런 점에서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서교(西敎)’와의 인연을 이렇게 요약했다.

旣娶游京師. 則聞星湖李先生瀷學行醇篤. 從李家煥，李承薰等得見其遺書. 自此留心經籍. 旣上庠. 從李檗游. *聞西敎見西書. 丁未(1787)以後四五年. 頗傾心焉. 辛亥(1791)以來. 邦禁嚴遂絶意. 乙卯(1795)夏蘇州人周文謨來. 邦內洶洶. 出補金井察訪. 受旨誘戢. “(15세에) 결혼하고, 서울에서 지냈다. 성호 이익 선행의 학행이 순독하다는 것을 듣고, 이가환, 이승훈 등과 함께 그가 남긴 책들을 읽었다. 이로부터 ‘경적’(학문)에 마음을 두었다. 성균관에 들어가 이벽과 더불어 교유하며, 서교(西敎)를 듣고 서서(西書)를 보았다. 정미(1787, 성균관 유생들의 가톨릭 독서클럽 사건이 있던 해) 이래 4, 5년 꽤 마음을 기울였다. 신해(1791, 전라도의 한 선비가 부모의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일이 있었다) 이래 나라의 금함이 엄중했고, 이윽고 (마침내) 완전히 뜻을 끊었다! 을묘(1795) 여름, (중국의) 소주 사람 주문모가 와서 나라가 흉흉했다. 금정찰방으로 나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서교를) 그만 두도록 회유했다.”

#자료2 : 자명소
承旨丁若鏞上疏曰, 臣於所謂西洋邪說, 嘗觀其書矣, 嘗欣然悅慕矣, 嘗擧而夸諸人矣, 其於本源心術之地, 蓋嘗如膏潰水染, 根據枝縈, 而不自覺矣.
“신은 이른바 ‘서양사설(西洋邪說)’에 대해 …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있고, 기뻐 흠모한 적이 있으며, 그걸 또 자랑삼아 뽐낸 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 속 깊이에 ‘기름이 물에 녹아 퍼지듯, 뿌리가 자라고 가지가 엉키듯’ 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臣之得見是書, 蓋在弱冠之初. 而此時原有一種風氣, 有能說天文, 曆象之家, 農政, 水利之器, 測量其推驗之法者, 流俗相傳, 指爲該洽, 臣方幼眇, 竊獨慕此. “신이 이 책을 본 것은 약관 초, 아직 어릴 때였는데, 이 시절에는 (서양의 신지식에 대한) 일종의 유행이 있었습니다. 천문, 역상의 전문적 지식, 농정 수리의 기술, 수학과 계산 등의 추론에 밝은 사람들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해박하다는 칭송을 들을 때였습니다.”

然其性力躁率, 凡屬艱深巧密之文, 不能細心究索, 故其糟粕影響, 卒無所得,) 而乃反線繞於死生之說, 傾嚮於克伐之誡, 惶惑於離奇辨博之文. 認作儒門別泒, 看作文垣奇賞, 與人談論, 無所忌諱, 見人詆排, 疑其寡陋, 原其本意, 蓋欲博異聞也.

“식견이 얕았고, 문장도 어려워서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 다만 1) 사생(死生)에 관한 설에 끌렸고, 2) 자기 극복(克伐)에 관한 경계에 공감했으며, 3) 신기한 정보, 박식한 논변에 혹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이단이라기보다) 유교의 별파(儒門別泒, 문단의 신기(文垣奇賞)로 알았습니다.”

- 그 마저도 ‘과거 시험’과 공명에 집중하느라 2차적 관심이었을 뿐이다.
然臣自來志業, 只在榮達. 自登上庠, 所專精壹意者, 卽功令之學, 尤何能游心方外. 奈其標榜一立, 涇渭無別, 斷斷至今, 掉脫不得?

1) 그 책 가운데 ‘제사를 폐한다’는 설은 신이 옛적 보던 책에는 없던 것입니다. 갈백이 다시 태어난 셈이고, 승냥이 수달조차 놀랄 일입니다. … 2) 그런데 불행히도 신해의 변고(1791년 진산 사건)가 제 가까이(즉, 친척)에서 일어나, 신은 그 이후 분노와 원통함에 사무쳐 (서교를) ‘내 원수로 미워하고, 흉적으로 성토하기로’ 맹세를 하고, 뜻을 다졌습니다. 3) 그렇게 양심이 돌아오고, 이치(理)가 뚜렷해지자, 전날 기쁘게 흠모했던 것들이, 돌이켜보니, 황허괴탄(謊虛怪誕), 허황되고 괴이쩍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其書中廢祭之說, 臣之舊所見書, 亦所未見, 葛伯復生, 豺獺亦驚, 苟有一分人理者, 豈不崩心顫骨, 斥絶亂萠? 而辛亥之變, 不幸近出, 臣自玆以來, 憤恚傷痛, 誓心盟志, 疾之如私仇, 討之如凶逆. 而良心旣復, 見理自明, 前日之所嘗欣慕者, 反而思之, 無非謊虛怪誕, 離奇辨博之文, 不過稗家小品之支流餘裔也).
4) 그 밖의 것은 ‘하늘을 거역하고 신을 모독하는(逆天慢神)’ 것으로 죽음으로도 그 죄를 속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인 가운데 전겸익, 담원춘, 고염무, 장정옥의 무리들이 일찌감치 그 ‘거짓과 기만(虛僞)’을 밝히고, 그 ‘두뇌(핵심)’를 짜개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몽매 무지해서, 그 미혹에 휘둘렸으니 유년의 고루하고 과문했던 소치라 자신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끌어안고 탄식할 뿐입니다(外此則逆天慢神, 罪不容誅, 故中國文人, 如錢謙益、譚元春、顧炎武、張廷玉之徒, 早已燭其虛僞, 劈其頭䐉. 而蒙然不知, 枉受迷惑, 莫非幼年孤陋寡聞之致, 撫躬慙忿, 何嗟及矣?).
5) 당초의 그렇게 ‘물든’ 자취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과 같았습니다. 식견이 점차 자라면서 (서학은) ‘적과 원수(敵讎’가 되었고, 지식이 명료해지자 (그 허황됨을) 더욱 엄밀하게 변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심장)을 갈라 일곱 구멍을 들여다보아도, 남은 흔적이 없고, 구곡간장을 다 뒤져도 남은 찌끼가 없습니다(當初染跡, 有同兒戲, 而知識稍長, 便爲敵讎, 知之旣明, 卞之愈嚴, 剔心七竅, 實無餘翳, 搜腸九曲, 實無遺瀋. 而上而受疑於君父, 下而遭謫於當世, 立身一敗, 萬事瓦裂, 生亦何爲, 死將安歸? 乞遞臣職, 仍賜斥黜焉).

5. 화해, -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1) 어떤 가톨릭인가?
- 불교의 ‘後五百歲’의 시대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金剛經

1) 解脫牢固 : 수행을 통해 영원의 깨달음과 평화를 얻다
2) 禪定牢固 : 명상을 통한 안심입명
3) 多聞牢固 : 즉 경전의 지식으로 깨달음을 대신하는 것이 유행하며,
4) 塔寺牢固 : 경전도 죽고, 외형적 절간과 탑만 덩그라니 남은 쓸쓸한 풍경
5) 鬪諍牢固 : 알음알이의 권위와 절간의 소유를 놓고 서로 다투는 시대

지금 21세기 한국 불교는 이 중 어디에 해당할까? 가끔 매스컴에 나오는 소식은 5) “다투고 막가는 드잡이”의 말세 풍경이다. 4) 그래도 “절간을 찾아 탑을 도는”대중들의 발걸음은 늘어나고 있고, 3) 아카데믹 서클 안에서는 “경전의 지식”이 자체로 ‘연구’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산중의 깊은 토굴에는 그러나 드물게 2) “명상을 통한 안심입명”의 눈 푸른 납자들이 오랜 불교전통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래도 역시나 1)의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2) 종교적 붕당? - 호교론적 ‘강박’을 넘어
- 양명학이냐, 주자학이냐?를 두고 江華學派의 ‘형제들’ 사이에 오간 편지.

“네가 학문의 문로(門路)를 두고 한 장황설은 정말로 불만이라 씨익 웃을 수밖에 없다. 군자의 학문은 ‘실제 실행(行)’에 중점을 둔다. 참으로 능행(能行)하고, 진실로 정수(正修)하여 대본(大本)을 세운다면, ‘나는 누구 문호요’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다 성인(聖人)의 제자이다. 그런 실질 없이 문호만 정한다면 … 주자에게 붙으면 주자에게 누가 되고, 양명에게 붙으면 양명에게 누가 된다. (또 실질이 없다면) 주자를 배반한다 하여 주자에게 무슨 손해가 될 것이며, 양명에게 붙는다 한들 양명에게 무슨 득이 되겠느냐.”(信齋(이영익)가 椒園(이충익)에게 보낸 편지에서)

3) 종교의 實學을 열자
實學의 키는 ‘근대’를 지향하느냐 여부에 있지 않다. 원론은 “학술이 실용적(pragmatic) 목적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다. 다산은 말한다. “왜 心을 논하고, 性을 논하는가? 선을 밝히고자 함이다. …그리고 道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인간관계와 사회적 질서를 위함이다.”

철학과 종교의 ‘실학’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의 정신적 자원들의 협력!! 차이를 따지고, 문호를 가르는 것보다 ‘최소한의 접근’(minimalist approach)을 시도하자.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mansions.” (John 14:2)

“가족과 개인적인 갈등들이 전면에 위치하게 된 것은 양심, 성실성, 진실성과 자기 이익 사이의 훨씬 더 근본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갈등들을 덮어버리기 위해서라고 추정할 수 있다. …두 플롯(표면 플롯 + 비밀 플롯) 사이에 중대한 모순이 있는 경우, 심각한 갈등, 불안정, 의심, 정력 낭비가 생기게 되는데, 그 결과 눈에 띌 정도의 증세들이 많이 나타난다. 내적 모순의 자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의심에 시달리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굉장한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는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유일한 대안책은 그 언짢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거나, 아니면 깊게 억눌려 있는 체험 층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인데, 커다란 불안에는 후자의 과정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에릭 프롬, 최승자 역, 《존재의 기술(The Art of Be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