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세
번째 시간 (4-5장) |
1. 목표: 요한이 환시를 통해 본 천상 궁전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고 하느님의 계획이 적혀있는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는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안내: 여정에 의하면 4장에서부터 묵시록의 마지막까지는 동일한 메시지를 일곱 번 반복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다른 해설서(200주년 주해 성서 등)에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이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이 모든 사건들이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금부터 공부할 열 여덟 개의 장들은 기분 메시지를 일곱 차례 반복해서 제시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정) 세부적으로는 일곱 차례의 제시 절차가 서로 매우 다르지만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본 바와 같은 동일한 형식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통된 주제는 명확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악이 여러 가지로 변장을 하지만 그 중 어떤 것도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배울 4장과 5장에서는 하늘나라의 궁전의 모습과 그리고 일곱 봉인이 있는 두루마리가 소개됩니다. 6장에서부터 이 봉인이 하나씩 떼어지면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즉 4-5장은 아직 봉인을 떼기 전의 상황으로 2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언)의 서론이 됩니다. 묵시록의 이 대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지배를 받고 있던 로마 황제의 세력이 어떠한 것이었는가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로마 황제는 힘과 위엄에 있어 짝이 될 만한 자가 없는 존재로 간주된 까닭에 그가 신으로 숭배 받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막강한 권세와 당당한 위풍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황제의 권세가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요 황제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멸할 존재임을 믿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로마 황제가 누리는 부와 권세가 하느님의 권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늘나라 궁전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4장 천상의 모습 4,2: 그러자 곧 나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는 ...- 새로운 현시를 보여주기 위한 초대의 말로 실제로 요한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열린 천국의 문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로 천상 모습을 볼 수 있었음을 밝힙니다. 4,3: 하늘에는 한 옥좌가 있고 ...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옥 같았으며 - 요한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하느님을 묘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4: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스물네 명의 원로- 흰옷과 금관이 상징하는 바는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스물네 명의 원로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을 상징한다는 설과 선택받은 사람들, 지상에서 고생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그들의 하는 일은 하느님과 어린양에게 찬미를 드리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요한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을 천사라고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서 재판하실 때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도와드리는 원로 천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10,9; 시편 89,8; 이사야 24,23 참조) 그러나 이들 24명의 원로를 천사나 위대한 사람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천상 하느님 백성의 상징적 모습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즉 24원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가 합하여진 숫자로 하느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구약의 12지파)으로 부터 12사도를 통해 온 세상에 퍼지게 된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4,5a: 옥좌로부터는 번개가 번쩍였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 200주년 주해에서는 출애굽기에서와 같이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모습을 나타내실 때 따르는 표지라고 설명합니다. (출애 19,16) 4,5b: 하느님의 일곱 영신 - 지난 시간 해설 참조 4,6a: 유리바다 같았고 수정같이 맑았습니다. - 옛 유다인들은 바다가 불투명하여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므로 악의 세력이 숨어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연히 악의 세력이 없는 천상에서는 바다가 유리로 되어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4,6: 앞뒤에 눈이 가득 박힌 생물이 네 마리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 이 네 마리 짐승에 대한 해석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이 네 마리 생물은 에제키엘서에 언급되는데 요한이 에제키엘서를 인용한 것이라면 이 짐승은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에제키엘서에서 말하는 세라핌과 게르빔과 오판임이라는 세 천사의 모든 특성을 네 구분하여 생물로 표상한 것입니다. 사자는 용기로 왕권을, 송아지는 힘과 충성을, 사람은 지혜와 영성을, 독수리는 속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생물은 힘과 충성, 지혜,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좌하며 수중듭니다. 눈이 많다는 표현은 무엇이든지 다 볼 수 있다는 뜻이며 앞뒤로 있다는 것은 한쪽이 잠을 자더라도 반대 편 눈은 떠있을 수 있으므로 하루 종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이 네 생물은 하느님의 창조물 중 가장 강하고 고귀한 존재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자는 야생동물 중에서, 송아지는 가축 중에서, 독수리는 날짐승 중 가장 가하고, 사람은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편 영성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 네 생물이 네 복음사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즉 마태오는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므로 사람, 마르코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사자후 소리로 시작하므로 사자, 루가는 즈가리야 사제의 제사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제물로 사용되는 소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창세기에 하느님의 말씀이 위에서 떠돌다가 그 말씀에 의해 세상이 창조된다고 했으므로 독수리의 모습으로 상징된다는 것입니다. 4,8b: 그 생물은 각각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고 - 이사야 6,2절의 인용인 것 같습니다. 본래 날개는 속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신속하게 이행함을 뜻합니다. 눈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을 말합니다. 늘 깨어있음, 각성, 부단한 통찰력 등을 말한다고 합니다. 4,8c: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 - 이사야 6,2-3에 있는 세라핌의 노래 첫마디의 인용문입니다.
5장: 봉인한 두루마리와 어린양 여정에서는 5장이 뜻하는 바가 요한이 본 환시가 바로 그 자신이 아니라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여기에서 묵시록을 끝내도 전체의 내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200주년 주석에는 이 5장이 하느님의 계획이 담긴 두루마기의 봉인을 뗄 자격이 있는 자로서의 어린양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7개의 봉인을 떼면서 생기는 일들의 시작부분이라고 설명합니다. 4장에서는 하느님께 경배하던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어린양께 찬양과 경배를 합니다. 5,1b: 일곱 인을 찍어 봉하여 놓은 두루마리 - 일곱 인을 찍어 봉했다는 데에 관해선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째, 로마법에 따라 유언장에 일곱 명의 증인들이 봉인한 사실을 들어 본문이 ‘증거나 확증’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의견과, 둘 째, 일곱 교회와 일곱 영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일곱이 완전수를 상징하므로 책의 내용이 완전하며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내용이어서 오직 하느님만이 스스로 밝히 보이실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두루마리를 들고 나타나시는 모습은 에제키엘 2,9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5,4a: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 요한의 울음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것, 분명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들어있는 그 두루마리를 읽을 자가 없음은 그 당시 신자들이 당하는 고통이 언제 끝나게 될지, 어떻하면 심판의 고통의 당하지 않을지 알 도리가 없으므로 슬퍼 울었다고 해석합니다. 여정에는 '실제로 두루마리 안에 고통의 신비, 즉 모든 시대 사람들이 피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고통의 신비가 들어 있다'고 적혀있지만 그 근거를 밝히고 있지 못합니다. 5,6: 어린양 -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표현하는 것은 묵시록의 한 특성으로 묵시록에서 29번 언급됩니다. 여기서의 어린양과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어린양은 그 어휘가 다른데 묵시록에서는 능력과 노여움을 가지고 적대세력에 대항하는 모습의 아르니온을,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깨끗하고 거룩한 모습의 암노스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둘 다 어린양이지만 원래 뜻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5,6b: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야훼의 종처럼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과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5,6c: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숫자 일곱과 뿔, 그리고 눈이 상징하는 바를 염두에 두시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첫 번째 시간 해설 참조) 5,9-10: 구약성서, 특히 시편에서 "새로운 노래"는 하느님이 신 백성에게 베푸신 "새로운 호의"에 대한 감사가 입니다. 어린양께서 두루마리를 받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음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러 모든 사람을 구해내셔서 하느님께 바쳤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5,11: 그들의 수효는 수천 수만이었습니다. - 천상에 있는 천사와 사람들의 수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4장의 24원로는 천상의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의 12 성조와 12사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6장에서는 두루마리를 받으신 어린양께서 봉인을 떼기 시작하십니다. |